달리면서

저수지를 감아 돌면서

by 전우 호떡

한여름의 뜨거운 볕에 잠깐 노출되었을 뿐인데, 후덥지근한 공기와 끈적끈적한 기운이 온몸을 덮어 개운하지가 않았다. 젊을 때는 팔팔하게 뛰어다니며 이런 여름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이제 와서는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던 시절, 한강을 달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의 40도에 이르던 폭염 속에서도 머리 위로 놓인 도로가 처마 같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강물의 흐름을 벗 삼아 한여름에도 비교적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때처럼 지금의 무더위를 씻어 줄 그늘과 물줄기가 필요해, 인근 저수지를 달려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도로를 달리다 산으로 향하는 코스였다.


집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태양이 화가 난 듯 강하게 내리쬐며 나를 바짝 따라붙었다. 도로를 따라가다 마을로 접어들었고, 마을 어귀에서 산을 향해 가파른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는 동안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르막은 호흡을 아끼며 힘을 모아야 하는 구간이고, 내리막은 수월한 대신 방심하면 위험한 구간이다. 평지에서는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달릴 수 있지만, 가파른 길에서는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모아야 한다. 가파른 길은 마치 삶의 고된 길목에서 천천히 살피며 가라는 당부처럼 느껴졌다.


텁텁한 열기 속에서 달리다 보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소매로 얼굴을 훔쳤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전신의 힘을 끌어모으자 상의는 금세 흥건히 젖었다. 수백 미터 이어지는 가파른 길은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쿵쿵 디디기보다는 힘을 빼고, 툭툭 털어주듯 한 발 한 발 차곡차곡 나아갔다. 어려운 순간을 즐기기는 쉽지 않지만, 전력을 다하면 극복할 수 있다. 고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으며, 지나고 나면 성취와 보람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오르막의 끝에서 산 중턱에 이르자 평지가 나타났고,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세에 둘러싸인 저수지는 원형으로 넓고 깊었지만, 웅장한 산들 사이에서는 한 점처럼 아담해 보였다. 저수지와 마을을 가르는 길 위에서 나는 위로는 저수지, 아래로는 마을을 두고 달렸다. 산과 마을을 잇는 길, 그 중심에 놓인 저수지. 산과 마을, 저수지가 사방에서 나를 감싸고 있었고, 나는 그 한가운데서 저수지를 끼고 돌며 달리고 있었다.


낚시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저수지는 고요했다. 물의 흐름은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잔잔했지만,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물길은 분명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흐름을 따라 나 역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산은 저수지를 휘감고 있었고, 나는 저수지를 안으며 다시 산의 허리를 돌았다. 산과 저수지, 그리고 나. 우리는 서로를 품고 있었다.


정적으로 앉아 있는 낚시꾼들과 혼자 달리는 나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은 멈춰 있었고,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산기슭의 길 위에 있었고, 저수지는 그 아래에 놓여 있어 서로 다른 높이와 지대에 있었다. 사방을 조망하며 전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수확을 꿈꾸며 물속의 낚싯대를 응시하는 그들의 시선은 달랐다. 나는 내려다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고개를 들지 않는 한 나를 볼 수 없었다. 활동의 방식과 목적은 달랐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만족하며 이 순간에 몰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혼자 달리는 나에게는 말을 건넬 상대가 없었고, 그들 또한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각자의 취미에 전념하고 있었다. 산을 넘고, 저수지를 돌며 마주한 아늑한 풍경 속에서 그늘을 내어주는 수목과 잔잔한 물결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을 전했다. 내륙에서 만난 물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반가웠다. 메마른 땅 위에 초록의 산과 그 빛을 머금은 저수지는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정적인 풍경과 적막한 낚시터 한가운데서 나는 산과 저수지를 품으며 움직였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공통점은 묘한 동질감으로 이어졌고, 혼자 달리고 있음에도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산과 저수지, 흙과 물, 멈춤과 움직임이 대비되는 그 속에서, 저수지를 감아 돌면서 나는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이어 주고 있었다.



2023년 여름 남면에서

신암저수지를 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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