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의 동행
1년 전부터인가, 한강을 달리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고민과 갈등이 많았던 시기였다. 바람의 저항을 온몸으로 맞으며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내려놓기 위해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답답한 가슴을 열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건강관리를 위해 체력을 단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예민한 성격인 나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기대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라는 사람은 나에게는 관대하지만, 가깝거나 주위의 만만한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곤 해서 주변에 화를 부르는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나는 자신에게 좀 더 엄격해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관대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도록 절제하면서 내 힘으로 가슴 속에 문제를 풀어내고자 했다. 그런 결심으로 주말에 한 번씩 꼭 한강을 뛰기로 했다. 출장이 있어도 주말에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간 바빠서 오랜만에 시작한 달리기는 처음에는 무릎 통증으로 무리가 있었으나, 다행히 처음과 달리 달리기를 시작하고 얼마 후에는 적응이 되었는지 통증은 깨끗이 사라졌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운동할 수 있는 시기와 운동을 할 수 없는 시기로 구분되었던 것 같다. 대부분 주말 없이 항상 평일처럼 달려왔었고 여유를 갖고 가정을 돌보며 살았던 때가 많지 않았다. 이제는 의지를 갖고 이런 상황과 관계없이 운동할 수 있는 여유를 찾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도 없이 혼자 달릴 때 주변 경치만을 바라보며 고독과 싸우게 된다. 무슨 일이든지 혼자 할 때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배로 힘들기 마련이다. 학창시절, 태권도장에 다닌 적이 있는데 때때로 태권도가 끝나고 더 강해지기 위해 혼자 뛰던 기억이 있다. 진이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오르막을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때 혼자 뛰는 게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곁에 누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달리지 않는다. 매번 나의 옆을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물결을 느끼게 되었고 그 이후로 한강을 동행하며 강물의 흐름과 함께 달린다. 쉬지 않고 잔잔하게 움직이는 물결과 동행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외롭거나 힘들지 않게 앞을 향해 즐겁게 한발 한발 내딛게 된다.
달리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혼자 걷는 사람,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 다정하게 연애하는 연인, 체육기구로 운동하는 사람, 축구공 차는 청년, 야구장에 운동선수, 족구 경기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한강을 마주하는 벤치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에게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심각한 표정도 더러 보이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웃고 즐거워한다. 한강은 이들의 모습을 담고 비추어져 한강의 활력은 넘쳐 흐르게 된다.
한편, 불편한 몸을 이끌면서 온 힘을 다해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정상적인 걸음도 아니고 해서 굉장히 힘들어 보인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럴진대 본인들은 얼마나 힘이 들지 새삼 숙연해진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쉽지 않지만, 온 힘을 다해 내딛는 발걸음은 건강하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면서 생의 한 자락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철한 자기 관리의 의식이 반영된 본보기라 하겠다. 한강에서 만나는 이들의 모습은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깨우쳐 주기에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하게 된다.
어느 날, 앞에서 달리는 젊은 남녀 한 쌍을 보았다. 남성은 앞에 뛰고 여성은 뒤에서 따라 달렸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란히 옆에서 뛰면서 같이 호흡하고 속도를 맞추면 힘이 덜 들지 않을까?” 왜 그렇게 따라서 뛰어가냐고 물었더니 따라서 뛰는 게 힘이 덜 든다고 했다. 답변을 듣고 이내 세상사를 나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해석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이 더 들고 안 들고는 객관적 기준이 아닌 개인적인 차이일 뿐임’을 깨달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앞에서 이끌어주고 뒤에서 받쳐주듯이 서로를 의지하며 뛰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달리기는 유산소운동으로 혈액순환을 도울 뿐만 아니라 신체의 모든 기능을 원활하게 해 준다. 내부에서 외부로 열이 발산되고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달리면 노폐물이 자연히 분비되는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땀이 내 안의 노폐물을 씻어내듯이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이 정리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탁한 기운이 걸러져 맑아지는 기분이다. 또한, 모든 신경조직과 근육들이 깨어나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나의 감각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내 안의 꿈틀대는 활력은 달리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달리는 여정에 구간을 나누어 중간목표를 정해 놓는다. 중간목표에 하나씩 도달하며 목적지가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은 가벼워진다. 특히,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는 여유를 갖게 되면서 목적지를 얼마 앞둔 기대와 설렘으로 심장이 뛰어오른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돌아올 때는 좀 더 가볍게 빨리 달리게 된다. 일을 시작할 때의 부담감이 일을 마칠 때의 기대와 희망으로 상쇄되는 것과 같이 코스의 반을 지나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진 듯하다.
달릴 때의 느낌처럼 우리 삶도 지나간 길을 돌아보기보다는 앞날을 향하는 데 더 즐거움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돌아온 길에 대해 무게를 두고 ‘이제 반 밖에 못 뛰었네!’라고 생각하는 것과 출발하면서 ‘시작이 반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라고 다짐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이다. 목적지를 몇백 미터 앞두고부터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과 더 건강해지는 듯 보람을 느끼며 웃음 짓게 된다. 그냥 달렸을 뿐인데 뭔가를 하나 이뤄냈다는 성취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반가운 사람들은 나랑 반대 방향에서 오는 같은 시간대에 함께 뛰는 사람들이다. 손을 흔들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것 또한 정겹다. 때론 나를 향해 밝은 미소를 보내는 사람에게는 주먹을 불끈 쥐며 힘차게 파이팅을 전한다. 가장 기분이 좋은 때는 무리 지어 뛰는 젊은 팀을 만나는 순간이다. 10대, 20대의 남녀들이 함께 먼발치에서 달려온다. 그들은 ‘하나, 둘’ 구호도 넣으면서 파이팅을 외친다. 한 명이 먼저 외치면 나머지 사람들은 답례로 복창한다. 한 명씩 돌아가며 선창하고 답례한다. 달리는 동안 청춘 남녀의 구호와 함성은 한강 둘레를 맴돌고 한강의 물결과 어우러진다. 그들의 외침은 주변에 퍼지고 있어 듣는 사람 모두에게 밝은 기운과 함께 에너지를 선사한다. 나에게도 파이팅의 응원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면서 젊음을 느끼게 되고 그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달리는 청춘남녀들을 보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인생을 살면서 무언가 하나 더 배우려 하는 성장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복장은 머리띠며 옷에서 신발에 이르기까지 가장 잘 뛸 수 있는 모습으로 준비되어있다. 준비된 복장은 준비되어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갖춰져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그들은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미래세대의 주역임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전망도 어둡지 않다’라는 확신이 든다. 달리는 목적이 하나 더 생겼다. 젊은 남녀들이 무리 지어 뛰는 이유일 것이다. 바로 미래를 살아갈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혼자 달리는 중에 귀한 인연을 만났다. 달리는 동반자로서 함께 하는 한강! 달리는 자체만을 놓고 보면 하나의 큰 고역일 수 있다. 한강과 함께 달리지 않았다면 체력적인 수고만이 따르는 괴로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한강은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 열정과 에너지를 품고 이를 전해주고 있다. 달리면서 체력적으로 향상되었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통해 인생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와 삶의 여유를 배우고 있다. 앞으로도 한강의 도도하지 않은 잔잔한 물결 위에 나를 맡기고 그 흐름을 따라갈 것이다. 함께 하는 한강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9년 봄 동빙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