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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n 12. 2021

고집 세고 우는 아이 어린이집 적응기

작년 이맘때 즈음을 떠올리며


2020년 둘째가 3살이 되던 해. 

드디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던 그때, 코로나19가 내 발목을 잡았다. 어영부영 3월이 지나가고 4월에는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5월이 끝나가도록 코로나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마지막 날 즈음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님! 혹시 집 근처 산책하실 일 있으면 원에도 잠시 들려주세요! 은수가 어린이집이 이런 곳이구나 관찰하면 적응할 때 도움이 되거든요."



알고 보니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에서는 친구들 몇 명 빼고 다른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고 있었다. 아직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하던 가정보육을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코로나가 장기화될 것 같아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먼저 등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 주신 것이었다.


큰 맘먹고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 구경을 갔는데 생각보다 더 많이 어린이집을 좋아해서 다음날부터 바로 등원을 시작했다. 또래보다 말이 빨라 워낙 자기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아이고 평소에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노는 아이라 그냥 잘할 거라고만 생각했지, '잘할 수 있을까?'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아이는 초스피드로 어린이집에 적응해갔다. 선생님께서도 은수가 야무지게 잘 적응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뒤에 이어서 어떤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 아이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나고 그다음 주가 되면서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더 좋다고 매미처럼 다리를 꼭 감싸 안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떼어놓고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한 시간이 꼬박 하루같이 느껴졌다. 그토록 바라던 안전한 자유시간이건만, 어린이집 근처 벤치에 앉아 귀는 쫑긋 어린이집 안을 향해서는 들리지도 않는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조금이라도 '으앙' 하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 아이 울음인지 판단하느라 머리가 바빴다. 아이가 들어간 지 한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딩동' 초인종을 누르고 다급하게 아이를 불렀다. '엄마~!' 하면서 살짝 흐느끼며 나오는 아이를 보며 위험한 곳에서 구해낸 듯이 꼭 안았다.



"어머님, 은수가 처음에는 그냥 잘 모르고 어린이집에 왔는데 이제 엄마랑 떨어져야 하는 걸 알게 되고 울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려면 아이가 울지 않고 의사 표현을 하면 들어주는 연습이 필요해요. 울고 고집을 피운다고 무조건 들어주면 그게 습관이 되어서 아이가 원에서도 울고 떼쓰는 일을 반복하게 되거든요."



이런 선생님 말씀이 꼭, '어머님~ 그동안 아이가 울고 불고 떼쓰면 다 들어주셨어요? 그러니까 아이가 원에서도 이렇게 적응을 못 하죠~'라고 들렸다. '내가 그동안 울고 떼쓰면 들어주는 엄마였나...., ' 하는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너는 왜 제대로 적응도 못 해서 나를 못난 엄마로 만드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밖에서 그렇게 종종거리며 아이를 기다려놓고는 '엄마~'하면서 안기는 아이의 손길을 나도 모르게 뿌리쳤다. 아이를 잘 못 키운 못난 엄마라는 생각에 하루 종일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 다녔다.  




진짜 나는 애를 잘못 키운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어떤 한 가지 현상으로 너무 많은 것을 결정 내리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 당연히 적응 과정을 거친다. 아이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울고불고하는 것이 그동안 가정보육을 하며 삼시세끼 챙겨 먹이고,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며 책을 같이 읽고, 아이와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바리바리 도시락을 싸들고 근처 모래놀이터가 있는 공원으로 부지런하게 다녔던 그 노력들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면한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 '과정'을 도울 수 있는 일을 떠올려 보고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적응 실험이 시작되었다.




어린이집 적응 첫 번째 실험, 등원 시간보다 30분 일찍 어린이집 가기

등원 시간보다 조금 일찍 어린이집으로 가서 어린이집 주변을 살피며 아이가 조금 더 이 공간에 대해 알고 익숙해져서 어린이집을 안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아이의 울음은 낯선 곳에 대한 불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엄마와 떨어져서 혼자 있다 보면 엄마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을 잘 달래 주었다.



"괜찮아. 은수가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더 재미있게 놀라고 엄마는 잠깐 나와있는 거야. 은수가 재미있게 놀고 나오면 엄마가 짠! 하고  은수를 다시 만나러 올 거야. 걱정 마, 약속해!"



울면서 어린이집 문 앞에 도착했지만 30분 동안 아이의 울음을 진정시키고 어린이집 주변을 돌면서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울면서 등원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담임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 중에서 희망적이었던 것은 아이의 울음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울면서 하는 말이 달라졌다고 하셨다. 


"콧물 닦아주세요, 책 읽어 주세요, 나가고 싶어요." 처음에는 떼를 쓰며 자기 요구 사항만 얘기했다면 "엄마랑 오빠가 보고 싶어요." 자기 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인정하기 시작했으니 적응을 훨씬 잘하게 될 거라는 담임선생님 말씀에 울지 않고 아이가 원에 들어갔다 나오는 날이 머지않았구나! 희망을 갖게 되었다.





어린이집 적응 두 번째 실험, 단호하게 하지만 사랑한다고 더 많이 표현하기


아이가 어린이집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이상한 행동이 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를 찾고 안아달라는 얘기도 많이 하고 말도 안 되는 엄한 투정 같은 것을 부렸다. 아이의 그런 행동이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행동해도 엄마는 나를 사랑할 거예요?' 


자기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시험해 보고 싶은 아이처럼 온갖 짜증과 떼가 참 많이 늘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이집에 갈 때 우는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아이가 참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에 그냥 다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았고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 보겠다고 마음먹었기에 조금 단단하게 행동했다. 최대한 아이에게 엄마가 여전히 너를 많이 사랑한다고 표현하되 어린이집 선생님 말씀처럼 무작정 울면서 떼를 쓰는 경우에는 울음을 그치고 의사 표현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은수야. 엄마는 은수를 사랑하지만, 은수가 이렇게 울면서 떼를 쓰는 이야기는 들어줄 수가 없어. 은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은수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원하는 게 뭔지 천천히 얘기해 줄래?"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온몸으로 짜증과 화를 표현했지만 이 방법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물론 엄마의 마음은 까맣게 애가 탄다. 아이의 짜증스러운 울음을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하기 위해서 마음속에 참을 '인'을 수 만 번 새겨야 했다. '그래, 이번만 잘 버티면 다음에는 아이가 울지 않고 등원할 거야.' 이게 나를 버티게 하는 문장이었다.





어린이집 적응 세 번째 실험, 선생님과 엄마는 한 팀! 담임 선생님을 믿고 조언을 구하기

어린이집 적응 기간, 아이가 많이 울고 힘들어해도 엄마는 선생님과 한 팀이 되어 최대한 아이의 우는 기간이 짧아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울면서 나오는 아이가 안쓰러워서 덥석 구해내듯 안았는데 그 행동이 아이에게는 '어린이집은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선생님이랑 꼭 안거나 악수를 하거나, 배꼽손 인사를 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인사를 하면서 충분히 헤어지는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엄마인 나도 오늘도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엄마는 선생님을 좋아하고 믿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매번 담임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꼭 전했고 적응에 도움이 되도록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없는지 여쭈어보았다.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내용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바로 '체력'이었다.



" 어머님, 무엇보다 아이 체력이 참 중요해요. 왜, 어른도 아프면 아무것도 하기 싫잖아요. 은수도 아침을 제대로 못 먹는다거나, 첫 기관 생활로 감기 기운이 있으면 더 짜증도 많이 나고 그럴 거예요."



기관을 처음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감기에 걸리기 시작했다. 5~6월에 감기가 걸려서 콧물이 나고 열이 나기도 했던 아이를 보니 아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몸도 마음도 참 애쓰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양제도 꾸준히 챙기지만 무엇보다 아침밥을 잊지 않고 먹였다. 건강하게 먹는 한 끼가 보약만큼 내 몸을 튼튼하게 하는 걸 알기에 식판에 가득 챙긴 화려한 식단은 아니지만 소박하게라도 아침을 꼭 먹고 어린이집으로 출발한다.





어린이집 적응 네 번째 실험, 개인적인 물건은 엄마가 먼저 가지고 가지 않도록 하기

울지 않고 잘 가려나 싶던 어느 날, 아이가 이불 하나를 부여잡더니 어린이집에도 가지고 가려고 했다.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면 우선 가지고 오고  교실 들어가기 전에 가방에 넣고 들어가는 방향으로 해 보면 어떨까 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그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이는 가방에 넣기 싫어할 테고 선생님은 가방에 넣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았다.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시기에 선생님과 아이의 불편한 상황은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울더라도 집에서 가지고 나온 이불이나 인형은 차에 두고 가거나 될 수 있으면 집에서부터 놔두고 어린이집에 가도록 헸다. 



어린이집에 거의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눈물바람 시작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처음 적응할 때 보다 훨씬 빨리 상황을 받아들였고 어린이집에 개인적인 물건을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 아이와 나 사이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이런 부분은 아이마다 상황이 다르고 원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엄마와 선생님이 한 팀이 되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 적응 초반에는 이렇게 30분 ~ 1시간 정도만 있다 오는 거고 아이도 우는데 그냥 집에 데리고 있는 게 나으려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에는 익숙해지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빨리 결과가 나오기만 바란다면 마음은 조급해지고 아이를 다그치게 된다. 


아이 어린이집 적응을 마치며 나도, 아이도 한층 더 성숙해졌다.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힘을 배웠고, 아이의 문제 상황을 '나'의것인양 받아들이는 태도도 고칠 수 있게 되었다. 거리를 두고 조금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록 문제가 또렷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해결의 실마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나의 일상 속에 널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커 갈수록 더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겠지만, 매번 우리는 일상을 실험해 나가며 조금씩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그런 날들도 있겠지만, 그 또한 성장의 과정 이리라 믿는다. 좌충우돌하겠지만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걸까?'라는 식의 죄책감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 죄책감이 나를 못난 엄마로 만든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누구의 잘못으로 생긴 '문제'라기보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 믿으며 완벽한 엄마가 되어 완벽하게 아이를 키우려 하기보다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 그런 성장 파트너가 되어야겠다.





**매주 토요일**

서툴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일상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선생님도 엄마는 처음입니다' 다음주 토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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