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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n 05. 2021

아이에게 듣기 무서운 말이 생겼다


엄마! 색종이 접어주세요!

못 들은 척하고 싶었지만, 바지를 꼭 부여잡고 똘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하는 그 말이 귀에 콕콕 박혔다. 어린이집에서 몇 번 색종이 접기를 하더니 급 색종이 접기에 흥미가 생겼는데, 색종이를 접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스스로 색종이 접기를 하는 게 아니라 엄마에게 접어달라고 하는 것!



엄마! 나 이거 사람 접어줘. 사람 접어서 손에 방패랑 칼 끼울래!

 왜 이렇게 어려운 색종이 접기를 책에 실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냐며 아무 잘못 없는 색종이 접기 책 저자님이 미워졌다. 어떻게든 아이가 고른 것을 접어내고 싶어서 모양새를 비슷하게 만들려고 색종이를 찢었다.





아니!! 이거 아니잖아!! 이렇게 생긴 게 아니란 말이야!!
연우야. 너무 어려워. 어떻게 접는지 엄마도 모르겠어. 엄마가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거니까 이걸 가지고 놀던지, 아니면 말던지 마음대로 해

떼쓰고 성화인 아이 앞에서 불쑥 화가 올라왔다. 내가 나름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을 어떻게든 해 내라니!! 내가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했건만! 아이 앞에서 버럭 소리를 지를 것 만 같아서 우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아이가 색종이를 접어달라고 얘기해서 하지 못했던 설거지를 벅벅 시작했다. 잠시 그 상황과 떨어져 있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색종이 접기가 재미있고 잘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지? 엄마인 나 인가? 아니지! 아이잖아! 그럼 아이가 색종이를 접게 하면 되겠네! 왜 그동안 내가 다 접어주고 있었지?' 화가 나고 짜증이 났던 이유는 아이가 할 일을 엄마가 대신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색종이 접기 영상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아직은 영상을 보여주기에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색종이 접기 책을 샀다. 그걸 보고 아이가 접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아이 대신 접어주고 있었는데 거기에서부터 문제였던 것이다.






연우야, 엄마는 정말 너무 어려워서 잘 못 접겠어. 연우가 접어볼래?
응! 내가 접어 볼게요!

신기하게도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그치고 색종이를 손에 쥐었다. 조금 창피하지만 속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너도 이제 알게 될 거다!' 하는 고소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비슷한 순서로 접어 두었던 것을 다시 펼친 덕에 초반에는 조금 수월하게 종이접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딱! 내가 막혔던 13번에서 멈췄다. 색종이를 들고 이렇게 저렇게 해 보더니 마음대로 안 되니 아들도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동생이 가만히 보더니 자기가 해 보겠다며 색종이를 줘 보라는 것이 아닌가? 첫째는 냉큼 색종이를 동생에게 내밀었다.


작은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접는 시늉을 하는데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그래도 어려운 상황을 그냥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동참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그 마음이 참 예뻤다. 그래, 우리 이대로만 쭈욱 크자! 하는 마음으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첫째가 다시 현실로 나를 데리고 왔다.





엄마, 나 이거 꼭 접고 싶어요.
그래, 아무리 해도 모르겠으니까 여기 큐알코드 다시 찍어보자.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우여곡절 끝에 접은 사람 모양을 보고 흐뭇해하기도 잠시, 그 사람이 들 칼과 방패를 접어야 한다는 아이의 말에 '연우가 한 번 직접 접어봐!'라고 답했다. 아이는 기꺼이 책을 펼치고 접기 시작했다. 잘 모르고 막히는 부분만 살짝 알려주고 아직 한글을 읽을 줄 모르니 화살표와 접기 기호를 보면서 종이접기를 알려주었다.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손이 야물었고, 종이를 훨씬 더 잘 접었다.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아서 한 번 접었던 것은 일정 부분까지 외워서 접기도 했다. 아이가 접어달라고 하는 것을 매번 접어주기만 하다가는 몰랐을 능력이었다.


'초등 자존감의 힘'과 '초등 엄마 말의 힘'을 쓰신 김선호 작가님은 아이의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수준보다 살짝 더 높은 단계의 과업을 해 볼 것'을 추천하셨다. 살짝 도움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주변 사람들과 같이 의견을 나누며 해결해 나가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자기 중심성'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난 아이는 말 그대로 교우관계가 좋은 아이가 된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되고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종이접기를 하면서 올바른 학교생활의 시작이 가정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 있음을 절절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결국 첫째는 스스로 칼을 만들어 냈다. 처음 만들었던 것보다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서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관절까지 접히는 사람 손에 꼭 끼웠다. 손에 낀 칼을 보면서 흐뭇해하더니 한 마디 했다.






엄마! 방패도 접어주세요!
연우야, 앞으로는 '~ 접어주세요!'라고 말하지 말고 '~ 같이 접어요!'라고 말하자! 관절이 접히는 사람도 엄마 혼자는 잘 못 접었는데 연우가 같이 접으니까 잘 접었잖아.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는 색종이 접기 같이 하는 거야!
응! 엄마! 방패같이 접어요! 작은 걸로!
그래! 몇 페이지더라? 연우가 먼저 접고 있을래? 엄마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아이가 부리나케 종이책을 펼쳤다. 휘리릭 페이지를 넘기더니 기똥차게 방패 접기 부분을 찾아냈다. 연우가 여러 번 접어달라고 해서 방패를 접을 때마다 엄마인 내 손으로 그 부분을 꾹꾹 누른 탓 일 거다. 같은 페이지를 이제 연우가 스스로 활짝 편다. 엄마인 내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 스스로 종이접기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서 해 보다가 생각처럼 잘 안되면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그때 정말 살짝 다음 단계에 대한 힌트만 알려줘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 아이의 손길로 꾸욱 눌려지는 페이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매주 토요일**

서툴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일상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선생님도 엄마는 처음입니다' 다음주 토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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