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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an 07. 2021

조금은 불친절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내가 먼저, 생각과 행동의 거리가 짧은 저지르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우리 집에 TV는 없었으면 좋겠어.

 주말 아침이면 느즈막 하게 일어나 TV를 켜는 게 자연스러운 습관이었는데, 그렇게 아침을 시작하면 하루 종일 TV를 보게 되었고 저녁 즈음돼서는 이상한 허무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런 습관을 고쳐보고자 TV를 아예 사지 않기로 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TV가 없어도 괜찮았는데 첫째를 낳고 키우면서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너무 적막했다.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듣기 시작한 것이 라디오였다. 휴대폰으로 라디오를 듣자니 중간에 전화와 알림음 때문에 끊기기도 하고 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주방 싱크대에 붙박이로 붙어있는 라디오를 보고 이거다 싶어 라디오 추파수를 돌리다 선명하게 들리는 채널을 듣기 시작했다.



 코코코 코지마~ 코코코 코지마~  
연우야?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연우와 점심을 먹던 어느 날, 아이가 광고 음악을 그대로 따라 했다. 어디서 그 노래를 들었는지 물어봐도 아이는 구체적으로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라디오 광고가 아이의 뇌리에 박혔다는 것은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날 바로 채널을 바꾸었다. 광고가 없는 채널을 찾다 보니 듣게 된 것이 ebs 채널이다. 꼭 교육 목적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ebs 라디오를 하루 종일 듣게 되었다.      



 엄마, 협상이 뭐야?

 어느 날, 아침을 먹다가 연우가 라디오 뉴스에서 나온 처음 듣는 단어를 물었다.   “아, 협상은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얘기를 나누는 거야. 연우가 엄마한테 아침에 시리얼 먹고 싶다고 했지? 그런데 엄마가 빈속에 우유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니까 밥 먼저 먹고 간식으로 시리얼 먹자고 얘기했잖아. 그랬더니 연우가 밥 먹고 바로 시리얼 먹을 거라고 얘기했지? 그래서 엄마가 '그래, 그렇게 하자!' 했잖아. 이렇게 서로 얘기를 하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게 협상이야.”      



 이렇게 어려운 단어를 이렇게 쉽게 설명하다니!

 나도 내가 이렇게 설명을 잘할 줄 몰랐다. 적절한 예시까지 들어가면서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말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래...., 육아 경력도 경력인데,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말하는 건 이제 식은 죽 먹기가 되었구나!' 하면서 어깨에 뽕을 가득 장착했다. 아이는 새로운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알려주고 대답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 찾아보기도 하고 매번 설명을 해 주었다. 어느 날 산책을 하고 있는데 엠뷸런스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저기 왜 앰뷸런스가 가는 거지?”

 “글쎄, 앰뷸런스가 왜 저기로 가는 걸까?”

 “몰라”

 “앰뷸런스는 어떤 일을 하는 자동차더라?”

 “몰라”

 “연우야, 진짜 몰라?”

 “몰라~ 엄마가 그냥 말해줘”


 이 전에 설명해 주었던 것이라 가볍게 되물었는데 아이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아이의 질문이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것은 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아이가 물어볼 때마다 친절하게 알려주었던 순간들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기도 전에 나에게 먼저 답을 요구했고, 물어보면 친절하게 그 답을 알 수 있으니 생각하는 것이 점차 귀찮아졌으리라. 물어보면 하나하나 잘 가르쳐 주는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고정관념이 깨진 순간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친절한 엄마보다 아이에게 대답하기를 미루는 조금은 불친절한 엄마가 아이의 사고력을 키워주는 엄마였다.




엄마, 억지로가 뭐야?

 얼마 전 '신데렐라'를 읽어주다 아이가 '억지로'의 뜻을 물었다. "연우야, '억지로' 뜻이 뭘까?" 아이가 나에게 질문한 것을 똑같이 되물었다. 내가 다시 질문하면 그 질문에 대해 답을 곰곰이 생각해 볼 거라 상상했는데, 역시나 혹시나 역시나 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몰라!" 

 "연우야, '억지로' 뜻이 뭘까? 여기 신데렐라 언니가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을걸?" 아이는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몰라~ 그냥 알려줘~~" 조금 불친절한 엄마가 되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오래 아이를 편하게 해 주는 친절한 엄마였나 보다. 이번에는 전략을 조금 바꿔보았다. 똑같이 아이에게 질문하는 대신에 엄마가 너에게 다시 질문하는 이유, 그 속에 담긴 뜻을 알려주었다.




연우야, 사실 연우는 '억지로'가 어떤 뜻인지 이미 알고 있어.

 진짜 그랬다. 연우는 사실 알고 있다. '신데렐라'는 정말 여러 번 읽은 책이고, 옆에 낑낑거리며 신발을 신는 새언니의 모습까지 보이니 분명 '억지로'라는 것이 무엇을 뜻 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그 사실을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다시 "몰라!"라고 답했지만 그냥 기다려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조금씩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신발이 안 신어지는데 신으려고 하는 게 억지로 하는 거야?"

"연우는 그게 '억지로'하는 거라고 생각해?"

"......., 몰라."

"엄마도 연우 생각이랑 비슷해. 그런데 연우야, 가끔은 말이야 엄마가 말하는 게 틀릴 수도 있어. 꼭 엄마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야. 사실, 엄마는 연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거든, 그러니까 조금 더 자주 연우 생각을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


아이가 내 말을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그냥....,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세상에 내가 이런걸 해 보겠다고 이야기를 했을때 모든 사람들이 그게 맞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그래도 스스로 그게 옳다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즈음은 객기 부리듯 생각하는 대로 해봐도 괜찮다고, 네가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마음껏 저지르고 누렸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문득,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불친절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떨결에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저지르는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 눈이다!!!!

 신데렐라의 '억지로'에서 이어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창 밖에 눈이 내렸다. 그런데 그냥 눈이 아니라 완전 함박눈이었다. 창 밖을 보기 시작할 때 희끗하게 도로를 덮었던 눈이 순식간에 가득 쌓였다. 남편은 출근을 걱정하는데 작년 이맘때 즈음 맨 발로 눈을 밟아봤던 것이 생각났다. 어떤 분이 맨 발로 눈길을 걷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궁금해서 그냥 따라 해 봤던 것이다. '그래,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을 맨발로 밟아봐야겠다!'


 

다음날 새벽, 저절로 눈이 떠졌다. 어렸을 때, 밤새 눈이 오면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을 가장 먼저 밟고 싶어서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곤 했다. 오늘도 뽀드득뽀드득 눈길을 걷다가 맨발로 눈을 밟아 보았다. 맨발로 눈 밟아보니 발이 얼 듯이 엄청 차가웠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차가웠던 발이 집에 돌아오니까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뭔가 마음에도 뜨거운 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매해, 새해가 되어 내린 첫눈을 맨발로 밟기로 다짐했다. 무모한 줄 알지만,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조금은 불안하더라도 일상을 실험하고 모험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래,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 라고 말 하는 대신, 내가 먼저 그 삶을 살기로 한다. 아이들이 살았으면 하는 그 모습으로 내가 먼저 살아보기로 한다. 내가 먼저 생각과 행동의 거리가 짧은 저지르는 엄마가 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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