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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n 26. 2021

엄마의 자존감이 높아야 아이의 자존감이 높은가요?

취조를 하는 형사도, 판결을 내를 판검사도 그만두기로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ㅡ^ 연우는 요즘 어때요?"

"어머님, 연우가 어린이집에서 활동할 때 자리에 잘 앉아있지 못하더라고요."

"네?"

"아, 그게..., 뭔가 곧 어디를 갈 것처럼 엉덩이를 들고 활동을 해서 바르게 앉도록 지도하고 있거든요..., "

"아! 그렇구나.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선생님. 가정에서도 잘 지도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어머님^ㅡ^"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어린이집 문 밖을 나왔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엄마의 눈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해맑게 내 손에 가방을 쥐어주고 놀이터로 돌진했다. 엄마의 자존감이 높아야 아이의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지만 사실, 아이의 자존감엄마의 자존감을 결정짓는 날이 훨씬 더 많았다. 


5살이 되어 처음으로 어린이집 교육을 시작한 연우에게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린이집은 집과 다르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들어주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원 시간마다 선생님의 피드백을 들으며 어깨는 한 없이 움츠러들었고 어느 날은 아이를 데리러 가기도 전에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들으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고는 했다.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날이면 영락없이 취조를 시작했다. "연우야!! 이리 와봐!! 수업시간에 뭐 했어? 자리에 앉아 있었어? 선생님이 바르게 앉으라고 하셨지! 그러면 바르게 앉아야지~"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시선은 놀이터에 있는 친구에게 향해있는 아이를 보며 내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 백 마디 말 보다 실천이 중요하지! 차라리 집에서도 바르게 앉는 연습을 시켜보자!' 생각해 보니 집에 있는 좌식 책상이 아이들에게 살짝 높아서 자꾸만 무릎을 꿇고 상 위에서 무언가를 하고는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게 습관이 된 모양이었다. 그날 바로 아이들 의자와 책상을 검색했다. 바로, 맘 카페에서.


맘 카페에서 물건을 사기 시작한 것은 말 그대로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다. 아이들 물건은 사용기간이 짧아서 쓰다가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침 필요한 물건을 만나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후다닥 댓글을 달고 물건들을 사러 다녔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동네를 산책할 겸 물건을 찾으러 가는 시간이 나에게도 힐링이었다. 굳이 밖을 나오지 않아도 되는 아이와의 하루 중에서 일부러라도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는 같이 산책을 하면서 동네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그렇게 물건을 받으러 오가는 길에 꽃도 보고, 개미도 만나고 놀이터에서도 놀고, 간식거리를 사 먹고 돌아오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맘 카페에서 책상과 의자를 검색하니 아니나 다를까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들이 나와 있었다. 첫째가 아토피라 플라스틱보다는 원목이 좋을 것 같아서 재질을 잘 살펴보고 남편 차에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인지 크기도 확인했다. 어떤 물건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정해지고 나서는 해당 물건 판매자에게 몇 시에 통화 가능한지 문자로 물어본 후 통화를 했다. 우리 집 아이들의 나이를 말씀드리고 혹시, 몇 살까지 쓸 수 있는지 확인하면서 그 물건을 팔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판매자가 물건을 팔게 된 이유를 알게 되면 물건의 상태를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들어온 책상과 의자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유난히 중고로 물건 사는 걸 좋아하는데, 필요 없어져서 버려질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쓸모 있는 것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그 물건에 새겨진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좋다. 오래된 물건은 그 안에 많은 추억이 담기는데 필요 없어졌다고 버리면 그만인 물건이 누군가에게 가서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다시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그 느낌이 좋다. 새로 산 책상이 너무 깨끗해서 흠집이 나거나 아이들이 낙서라도 하면 마음이 아플 텐데, 색칠을 하다 종이 위를 삐져나가도 괜찮은 것도 중고물품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함이다. 게다가 같은 물건을 원래 가격에 비해 아주 저렴하게 사고 나면 무언가 돈을 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 집에 온 책상과 의자는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중에는 보기 힘들 장면들임을 알기에, 가만히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두 아이 손을 꼭 잡고 다닐 때면 지나가는 어른들이 항상 '지금이 가장 좋을 때예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가장 좋은 때를 추억해 줄 물건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의 추억에 우리 아이들의 추억까지 더해진다니 책상이 마냥 책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이 책상 또한 보내줘야 할 때가 오겠지만 좋은 원목으로 만들어진 책상이니만큼 살뜰하게 잘 써서 또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얼룩은 닦고 고장 난 부분은 수리해서 물건의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정성스러운 마음, 맘 카페에서 중고물품을 사면서 엄마 삶의 태도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유치원으로 향하며 아이의 엉덩이를 바닥에 딱 붙일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정성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어 잘 떠오르지 않았던 재미있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어린이집 앞에서 무릎을 굽혀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우야, 어린이집에서 어떤 활동을 할 때는 엉덩이에 딱~~~ 딱풀을 붙이는 거야. 알겠지?"

"딱풀? 종이접기 할 때 쓰는 딱풀?"

"응! 종이에 풀칠하고 붙이면 어떻게 되지?"

"붙어서 안 떨어져."

"맞아! 연우 엉덩이에도 엄마가 딱풀 칠해줄게! 자!"


아이의 엉덩이를 문질문질, 토닥토닥 그리고 꼭 안아준다. 이렇게 했다고 지금 당장 아이의 행동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취조를 하는 형사가 된다고 해도, 아이 행동의 잘잘못을 결정하는 판검사가 된다고 해도 아이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도 나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의 자존감을 키운다는 말의 진짜 뜻은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엄마가 자존감이 높아서 아이의 자존감도 높다기보다는, 아이를 키우며 낮아진 엄마의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이 엄마의 자존감뿐만 아니라 아이의 자존감도 같이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오늘도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한 뼘씩 성장해 나간다.





매주 토요일, 브런치 먹기 좋은 시간

서툴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일상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선생님도 엄마는 처음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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