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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l 09. 2023

우리 아이만의 계획을 세우세요

불안해하지 않고 '아이의 때'를 기다려줄 수 있는 힘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을 듯 넘지 않으면서 오지랖을 부릴 때가 있다. 우리 아이를 키우며 속이 타들어가는 순간들을 굳이, 굳이 이야기하면서까지 어머님의 마음에 나의 이야기가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수학에 좀 흥미를 붙여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너무 안 하려고 해서요.     


이제 초등학교 2학년, 곧 교과 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3학년을 앞두고 학부모님은 불안해하셨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걱정에 찬 물을 끼얹듯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OO 이는 공부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뜬금없이 뱉은 나의 말에 수화기 너머의 부모님은 말씀을 멈추셨다. 선을 넘을 듯 말듯한 오지랖이 또 발동한 것이다.     



학교에서 주로 하는 것이 수업이에요. 교과서를 펴고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거나 답을 적는 활동들이 많죠. 초등학교 2학년 까지는 그래도 통합교과가 있어서 아이들 숨통이 트이는데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교과 수업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해야 할 것이 더 많고 그래서 더 불안하신 것도 이해해요. 오죽하면 초3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다고 하겠어요.

그런데요 어머님, 지금 OO 이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구구단 외우는 것보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유능감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먹으면 나도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지, 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는 경험을 해 보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공부 잘해서 인정받는 아이들은 솔직히 자존감이 높아요. 자기 스스로도 알아요. 내가 교실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말이죠. 공부를 잘하는 편인지 아닌지요. 특히 수학시간에 두드러져요.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고, 수학을 잘 못 하는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게 현실인건 맞아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 아이들은 부캐가 있는 아이들이에요. 학교생활 잘하는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자기만의 존재감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능력들이 있어요. 어떤 아이는 달리기를 잘하고요, 어떤 아이는 그림을 잘 그려요. 또 어떤 아이는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는 유머가 있고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는 비록 이해도 잘 못 하고, 공부하는 것을 잘 따라가지 못해서 유능감을 느끼지 못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 ‘나는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잘하는 아이야!’ 하는 존재감, 자기 유능감이 아이가 교실에서 살아있게 만들거든요.

제가 관찰해 보니 우리 OO 이는 작고 아기자기하게 만드는 것 좋아하더라고요. 집에서도 이런 미니어처나 만들기를 푹 빠져서 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물론 지금 당장 공부에는 도움이 안 돼요. 그래도 뭘 배울 수 있냐면, ‘내가 마음먹고 노력하면 할 수 있어!’라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어요. 미니어처 만들기가 처음에는 잘 안 될 거예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좋아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렇게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아이를 살리는 부캐를 키워보면 좋겠어요.


저도 아들이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어요. 이렇게 단정 짓기는 싫지만 실제로 그래요. 그런데 종이접기 하나는 푹 빠져서 하루종일 접어도 지치지 않고 접더라고요. 주말에 유튜브 볼 수 있는 날이면 꼭 종이접기 영상을 보고 종이를 접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또래보다는 더 야무지게 종이접기를 하는 아이가 됐어요. 친구들이 너도 나도 아들한테 종이를 접어달라고 하니까 아이가 종이 접기로 존재감을 느끼더라고요. 이걸 통해서 이 아이는 ‘아, 내가 처음에는 부족하고 잘 못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잘할 수 있게 되는구나!’를 배울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아이가 공부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록 늦게 시작해서 조금 더딜 수 있지만 ‘해내는 힘’을 키워두었기 때문에 노력해서 이룰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알고 실천하게 될 거라고 저는 믿어요.

공부를 하겠다고 시작했을 때, 기본 바탕이 하나도 없으면 아무래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은 ‘독서’였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책과 제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 당연히 다르죠. 그래서 저는 제가 그냥 읽어주기로 했어요. 아침 먹을 때, 자기 전에 매일 30분에서 한 시간씩 꾸준히 읽어주고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그러면서 공부그릇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거든요.

또 누군가는 그러더라고요. 책육아 필요 없다고요, 그냥 교과공부 열심히 하면 된다고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또 마음이 흔들흔들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그 사람 의견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독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보는 거예요. 거기에서 아이를 키우는 기준이 생기고 소신이 생겨요. 저도 아이가 교과공부 열심히 하면 굳이 독서 안 시켰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 관심이 없잖아요. 그러니 좋아하는 책, 독서로 시작해 보는 거죠.

또 누군가는 말해요. 수학동화, 과학동화 같이 공부를 넌지시 시키려는 동화는 절대 읽히지 말라고요. 그런데 나는 그런 동화를 읽히고 싶은, 읽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단 말이에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면 비로소 엄마의 육아 소신이 생기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만의 계획을 세워보세요.


남들이 말하는 ‘해야 한다’ 말고요, 지금 우리 아이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이요. 저는 그 첫 번째가 ‘나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아이의 부캐를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다양한 부캐를 만들어 주면서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이에게 생기게 도와주세요.

지금 당장 구구단 잘 못 해도 괜찮아요. 지금 OO 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요. 아직 곱셈구구를 외울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잖아요. 그러면 또 걱정이 돼요. ‘아휴, 이 엄마는 애 공부도 안 시키고 뭐 하는 거야.’ 하고 선생님이 생각하시면 어쩌나..., 하고요. 저라고 왜 걱정이 안 되겠어요.

그런데 엄마가 불안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되어서 아이를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하는 순간 아이와 관계가 틀어지더라고요. 세상이 욕해도 엄마는 꿋꿋하게 '내 아이만의 플랜'을 가지고 있을 때, 불안해하지 않고 아이만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다다다, 말을 쏟아내고 나니 ‘아뿔싸! 내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구나!’ 싶었다. 조용했던 수화기 너머로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선생님, 오늘 나눈 이야기가 저에게는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하고 통화하고 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여서 자꾸만 상담하는 요일을 기다리게 되는 것 같고요. 감사합니다. OO이가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볼게요.     



아...., 다행히도 건너야 하지 말아야 하는 선 까지는 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사실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이 얘기가 상대방 부모님께 하는 얘기인지, 나의 다짐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특히 요즘같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참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 하나 놓치지 않았을까, 이게 맞는 걸까 전전긍긍하게 되는 마음에 부모는 더 불안해진다. 그럴 때일수록 아이를 관찰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도 우리 아이에게 어떤 것이 맞는지, 어떤 것을 가져다 활용해야 할지는 ‘아이’라는 기준이 제대로 섰을 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함을 넘어 부모가 아이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키우려면

세상이 말하는 플랜 말고, 우리 아이만을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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