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을 배우면 배울수록 글쓰기라는 것도 기술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장르마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장르에 맞춰서 글쓰기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웹소설은 순수문학보다는 가볍고, 2000년대 인소보다는 무거운 느낌이다. 최근에는 순수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있고, 웹소설 전공도 있다 보니 과거보다 능력치 자체가 올라간 듯싶다. 아무튼 웹소설은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웹소설도 소설이다보니 지문이 많다. 그렇다고 한 페이지 모두 지문을 쓰라는 건 아니다. 웹소설은 기본적으로 스낵컬처이기 때문에 절대로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안 된다.
웹소설 쓰기를 강의할 때는 지문을 2-3줄 내외로 작성하라고 한다. 너무 길 때는 그 사이사이를 대사로 끊는 스킬을 쓰기도 한다. 웹소설에서 지문의 역할은 상황묘사, 인물묘사, 인물심리, 작가의 전지적 관점에서 보는 생각 등이 모두 들어간다.
지문의 역할이 없는 듯해도 생각보다 아주 중요한 게 웹소설이다. 거기에 대사까지 잘 쓰면 첨상금화다. 즉, 웹소설에서 지문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70% 정도라고 본다.
드라마 대본 집필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웹소설 작가님이라서 대본이 웹소설스럽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인 즉, 대본에 지문이 엄청 많다는 소리다. 근데 난 겨우 2-3줄 밖에 안 넣었는데도 다 줄이라고, 다 빼라고 한다.
웹소설스럽게 쓴다는 말이 족쇄가 돼서 발목을 잡을 줄은 글을 쓰면서 단 한 번도 생각도 해본 적 없어서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다. 그런데 어쩌랴. 그쪽에서는 피디와 배우가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비워줘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 대본 작가에게 중요한 건 지문이 아니라, 대사다.
웹소설과 달리 드라마는 협업의 산물이다. 작가, 피디, 제작사, 투자사, 배우. 모든 사람의 생각과 입김이 드라마에 작용한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드라마 대본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대사뿐이다.
나는 드라마작가는 대본의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특히 신인작가는 그저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수준으로만 써야한다. 즉, 뼈대만 만들어줄 뿐이다.
그래서 드라마 대본을 쓰면서도, 웹소설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 내 맘대로 캐릭터들을 굴리고, 내 맘대로 캐릭터에 빙의해서 살아가는 걸 쓰고 싶은데 말이다.
종종 드라마를 쓴 웹소설 작가들 인터뷰를 보면 다시 웹소설을 쓰고 싶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 게 그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