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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춘희 Feb 18. 2023

1958년생 김 선생

(회상 - 새미)

김 선생이 교직에 입문한 지 25년째 되던 해 일이다.    

 

그해 3월 그녀에게 온 친구들은 37명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이었다. 37명 모두 수업태도 좋고, 학교 규칙을 칼 같이 지키며, 담임 말에 순종하는 양 같은 친구들이겠는가? 그런 기대보다 지구의 자전을 거꾸로 돌게 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담임을 맡으면 아이들을 가장 임팩트하게 다루어야 할 시간은 입학식 이후 일주일이다. 근처 여러 중학교에서 갓 올라온 친구들은 고등학교 담임이 어떤 인간일까? 중학교 시절 개차반 쳤던 친구라도 일단 탐색전에 들어가 일주일을 살핀 후 담임과 첫 단추를 어떤 식으로 끼우고 일 년을 지낼까 결정한다. 서로 모르는 그 일주일이 앞으로의 일 년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님을 김 선생은 오랜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일주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김 선생은 일단 무게를 있는 대로 잡았다. 목과 언어에 힘을 주고 눈빛에 부드러운 듯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뿜어대며 17세 피어나는 꽃들에게 빳빳하게 풀을 먹이고 있었다.  

   

빳빳한 풀 들이기 넷째 날 5교시에 말없이 새미가 사라졌다. 새미의 짝 수현이가 별 이상한 아이가 제 짝이란 듯이 빈정 상한 말투로 점심 먹고 주섬주섬 가방 싸더니 그냥 갔다고 했다. 김 선생은 즉시 알려주지 않고 종례 시간 알려주는 수현이가 야속했다. 김 선생이 새내기 시절 무단이탈은 담임을 능멸한 죄가 크므로 머리 뚜껑이 열렸을 것이다. 25년 경력의 김 선생은 빈정 상한 말투로 새미를 무시하는 짝 수현이 태도가 더 맘에 걸렸다. 새미가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을까? 김 선생에게로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새미지만 걱정이 앞섰다.

     

새미는 3월 2일 입학식 날 교복 치마 길이 단속에 미니스커트 착용으로 생활지도부 교사에게 걸려 교무실 한쪽에 벌서고 있었다. 미니스커트 길이로 지나는 교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었다. 예쁜 다리를 맘껏 뽐내며 겁도 없이 생글거리며 서 있는 미를 담임인 자신이 지도하겠다고 건져온 친구였다. 교복을 여미며 복도로 나오는데 담배 냄새를 맡은 김 선생이 ‘너 흡연하는구나!’ 하니 세미 왈 ‘금연침 맞고 있어요’ 했다. 등교 첫날에 미니스커트를 장착하고 나타날 배짱이라면 정색하면서 아니라고 딱 잡아떼며 앙큼한 태도를 예상하던 김 선생은 어라! 흠! 속으로 웃었다. 금연침 맞은 지는 얼마나 되었냐고 물어볼까 하다 새미의 이목구비를 자세히 살폈다. 쌍꺼풀 없이 움푹 파인 눈이 예쁘다.


 첫 대면이 끝나고 다음 날 새미는 출석부에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결석인가 했더니 2교시가 끝나서야 훌쩍거리며 나타났다. 지각의 이유를 물으니, 새미 왈 ‘ 어제 남자 친구가 제 문자를 씹어서 헤어지자고 아침에 문자 보냈더니 정말로 헤어지자고 답신이 와 속상해 울다가 늦었어요’ 김 선생이 물었다. ‘결혼할 친구냐?’ 했더니 훌쩍거리던 세미는 쿡쿡 웃었다.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할 줄 아는 미가 김 선생은 어쩐지 밉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다음 날 미는 앞머리를 사선으로 자르고 몽골 스타일로 가운데 정수리에 분수처럼 머리를 묶고 나타났다. 사선의 앞머리로 눈을 가리고 하이에나 같은 모습으로 교실에 앉아 있었다.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시그널 헤어스타일치고는 매우 저항적이다. 가려진 머리 사이로 어정쩡한 불안과 사랑 고파 출렁이는 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무단이탈이라는 태클이 있을 땐 교사는 우선 부모님께 알려야 한다. 김 선생은 새미의 상담기록 카드(구 가정환경 조사서)를 뒤적거린다. 부모란에 아빠만 있다. 아빠만? 에 김 선생은 알리는 것을 일단 보류해 보기로 한다. 한 번의 실수는 인간이면 누구나 하는 거니 내일 학교에 오면 왜 그랬는지? 묻고 담임을 능멸? 한 죄를 용서하리라 마음을 가다듬었다. 말없이 사라진 다음 날 조회 시간 8시 정각에 학급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새미를 보고 김 선생은 내심 기뻤다. 어쨌거나 학교는 다녀야겠다는 세미의 마음이 읽혀서일까? 기특하기까지 했다. 조퇴라는 정식 절차 없이 새미를 강력하게 밖으로 끌어낸 게 무엇이었을까?


 김 선생은 새미를 교무실로 불렀다. 헤어지자 했던 남자 친구의 호출로 앞뒤 가릴 시간 없이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그런 새미의 마음을 이해하기로 했다. 진부한 훈계가 먹히지 않는 새미라는 걸 입학 첫날부터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는 무단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새미의 말을 믿은 것 또한 아니었다. 김선생은 새미가 학교를 등지지 않게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세상에 나가면 네 맘에 안 드는 인간이 더 많을뿐더러,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지키기 싫은 공중질서도 엄청 많으니 학교에 다닌다는 거? 꼭 공부 잘 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 나가서 맘에 들지 않은 일들을 잘 참아내고 견디는 훈련기간이라 생각하고 나랑 올 일 년 학교 잘 다니자'. 로 마무리했다. 새미는 사이다 같은 목소리로 냉큼 ’ 네 ‘ 하며 대답한다. 교과 내용에 별 재미도 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미가 궁둥이 붙이고 7교시까지 학교에 있고자 하는 끈기는 칭찬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김 선생은 새미의 등을 토닥거려 교실로 보냈다.     


 아이들은 변한다. 무궁무진한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정이 없다면 그녀가 있는 정글엔 희망과 생명이 없다고 김 선생은 생각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그건 하루 수업을 연장 20시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

     

변화하기엔 아직 이르긴 하다. 새미가 말없이 다음날 3교시에 다시 튀었다. 김 선생은 자신의 훈계가 마르기도 전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남자 친구 호출일 것으로 생각했다. 반복되는 태클이 예상될 때는 학부모에게 알려야만 한다. 학교에 맡겨진 상태로 밖에 나가 사고라도 나면 책임은 오롯이 학교에 있음이 새삼 각성이 된 김 선생은 새미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전화 건너편 새미 아빠는 공손한 어투로 굽신굽신 인사하는 모습이 느껴질 정도로 깍듯하시다. 새미가 무단으로 튀었다는 내용에도 놀라지 않으시고, 내일 새미와 함께 학교에 오시라는 통고에도 죄송하다고 답하신다. 새미의 중학교 시절이 보였다. 새미 아빠께서 오셨다. 주황색 와이셔츠에 회색 바탕의 하얀색 물방울 타이 그리고 하얀색 구두, 바글바글 파마머리를 무스로 빳빳하게 한껏 세워 멋을 낸 신세대 아빠였다. 선생님이라고 지나치게 깍듯하게 대하는 태도가 많이 굽신거리는 것에 익숙한 몸짓이었다. 새미의 무단이탈 이유로 담임의 호출을 받고 한걸음에 오신 것이 아이에 대해 관심은 많으신 듯하다.

 

 김 선생은 당분간 새미를 학교에 데리고 왔다 수업이 끝나면 데리고 갈 것을 주문했다. 학교 다니기가 싫은 게 아니고 무언가 강력한 유혹으로부터 차단이 필요한 새미에 대한 카드였다. 새미 아빠께서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고 하시며 흔쾌히 '예 알겠습니다' 화답하신다. 이런 주문에 순응하는 아빠를 향해 새미가 미소를 보낸다. 아빠의 관심이 싫지 않은 듯 부녀지간의 소통이 일방적이지 않은 듯했다.    

  

새미 아빠가 다녀간 그 이튿날 새미가 등교하지 않았다. 새미와 새미 아빠에게 연락했으나 모두 불통이었다. 김 선생은 '새미야~' 이름을 문자로 불렀고 잡히지 않는 불안으로 종종거렸다.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새미에게서 어젯밤 아빠의 몽둥이를 피해서 지금 남자 친구와 함께 있다는 문자가 왔다. 도망칠 데가 여기밖에 없었다는 문자 뒤에 저도 저를 잘 모르겠다는 절규인 듯 자조 섞인 문자였다.     


 한참 동안 김 선생은 자신이 느꼈던 부녀의 의사소통이 위력에 의한 복종임을 간과한 자책감에 마음을 둘 데 없이 황망했다. 아버지 몽둥이를 피해 다급하게 도망치며 두려웠을 새미의 마음과 겹치면서 김 선생의 마음은 자책으로 얼룩졌다. 새미가 아버지 몽둥이를 피해 도망간 건 잘한 일이라 생각한 김 선생은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새미의 강력한 무단이탈의 유혹 범인은 남자 친구니 그 녀석을 새미와 함께 불러 놓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김 선생은 새미에게 문자를 보냈다. ‘새미야 샘이 퇴근해서 5시에 학교 앞 만리장성 중국집서 기다릴 테니 남자 친구와 함께 오너라.’ 새미에게 피임법을 먼저 알려줘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퇴근해서 나오는 길 10m 전방 만리장성 중국집은 짙은 황사로 간판이 보일 듯 말 듯 하였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 약간 쌀쌀한 봄날 오후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PS.  새미는 3년간 출석 일수를 무사히 채우고 학교를 마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새미는 지금 건강한 마음으로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며 나름을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삶 과정에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는 걸 안다면 우리의 심리적 공간에 기다려 줄 수 있는 보다 더 큰 여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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