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이야기
한국에서 겪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려동물 이름으로 가명을 사용했다.
한국에 머무르면서 임상에 대한 감을 잃지 않고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이틀 정도 경기도 남부에 있는 24시간 동물병원에 출근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24시간 동물병원이 골목 마다 하나씩 있고 많은 병원에 그 비싼 CT/MRI 의료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과도한 경쟁이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나는 다행히 밤을 새지는 않고 저녁부터 근무를 시작해서 자정이 조금 넘어서 퇴근을 한다.
시간이 시간인만큼 저녁에 퇴근을 하고 반려동물의 이상을 확인하고 찾아오거나, 밤중에 갑자기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단 미국과 응급 환자가 발생하는 이유와 증상들은 조금 다르다. 미국의 경우는 다른 동물들과 싸우거나 교통사고를 당한 응급외상환자가 많고,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내분비나 심장문제가 일으키는 증상이 악화되어서 죽기 직전에 진짜 응급한 환자들이 많이 도착했다. 그래서 응급환자들이 도착할때마다 미드 하우스나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것과 같이 심폐소생술을 한다거나, 오자마자 수술에 바로 들어가는 등 자주 소란이 벌어진다. 반면 한국의 응급환자들은 먹지말아야할 음식인 쵸콜릿이나 슬리퍼 같은 것들을 잘못 먹거나, 갑자기 설사나 구토를 하고, 단순히 기운이 없어져서 방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행히도)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응급 상황이 미국에 비해서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한국 보호자분들은 마음씨 따뜻하고 예의바른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어디나 마찬가지로 가끔 황당한 보호자들을 만나는 경우도 생긴다. 가장 최근에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소동이 일어난적이 있었다.
밤 11시쯤 갑자기 한 중년여성분이 반려견을 안고 울면서 병원으로 들어왔다. 하얀색 스피츠였는데 보호자 품에 안긴채 축 늘어져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구토를 했는지 거품을 잔뜩 물었었는지, 입 주변이 끈적한 액체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간호사가 반려견을 안아들고 처치실로 데리고들어왔고 반려견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런 경우 제일 먼저 확인해야하는 것은 숨을 쉬는지, 심장이 뛰는지, 그리고 의식이 있는지 이다. 심장 청진을 했을 때 큰 문제는 없었고 숨도 헐떡이지만 쉬고 있었고, 동공도 빛에 반응했다. 발가락 사이를 비롯해 피부를 꼬집었을 때도 통증에 대한 반응이 있었기에 일단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숨을 쉬게 만들어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입원장 안에 산소튜브를 틀어주고 반려동물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보호자는 밖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추스러질때까지 말을 걸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잠시후에 마음의 정리가 되었는지 어떤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를 들을수가 있었다.
보호자는 맞벌이로 살고 있는 부부였고 자식들은 아직 어렸다. 회사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던중 다들 반려견을 키운단 사실을 알았고 관심을 가지면서 다니다가 하얀색 스피츠가 너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을 설득해서 반려견을 입양하기로 했는데 남편은 그렇게 탐탁치 않아했다. 하지만 아이가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부인이 모두 전담해서 키운다는 말에 남편도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인터넷을 통해 스피츠를 가정 분양 한다는 사람을 만나고 몇번 연락을 하고 장장 2시간을 운전해서 데리고 왔다. 스피츠의 이름은 구름이로 이제 1살이 막 지난 암컷이었다.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애교는 좀 적었지만 사람을 잘 따르고 짖지도 않고 너무 착하게 지냈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도 퇴근 후에 남편과 함께 반려견을 산책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반려견이 특정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계속 냄새를 맡으면서 머물러 있었다. 빨리 이동하고 싶었던 남편은 리드줄을 몇번 당겼지만 반려견은 꿈쩍도 하지 않고 빤히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반려견을 껴 안은 뒤에 옮기려서 손을 뻗었는데 갑자기 반려견이 남편의 손을 물어버렸다.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남편은 반려견을 발로 강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한대가 아니라 강하게 배와 가슴을 가리지 않고 가격했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보호자가 채 말릴 새가 없었다. 온몸을 걷어차인 구름이는 자리에 주저 앉은채로 몸을 부르르 떨면서 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무 깜짝 놀란 보호자는 남편을 보지도 않은채, 개를 안아들고 평소에 봐두었던 근처 24시간 동물병원으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장에 들어간지 대략 1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니 개는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아보였다. 머리를 들면서 좌우를 살피고 앞발을 이용해서 상체를 들면서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순간적으로 큰 충격이 가해지면서 뇌진탕이 왔거나 쇼크가 와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외부에서 강한 충격이 가해지는 경우 가장 상처받기 쉬운 부위는 근골격계 혹은 횡경막, 폐, 비장 같은 내장장기가 이다. 그래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어느정도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진단을 하기전에 가장 중요한것은 환자의 상태를 안정 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상태가 조금만 더 좋아졌을 때 엑스레이를 찍기로 했다. 보호자는 환자의 상태도 걱정되었고 집에 가면 남편이 다시 화를 내고 돌변하면서 반려견을 때릴까봐 하루 정도 입원을 시키면서 통증관리도 같이 하기로 했다. 지금 이대로 회복하면 큰 문제가 없을거라고 보호자를 안심시킨 뒤에 보호자는 집에 돌아갔다. 어느 정도 상황이 일단락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의 새벽 1시가 다 되서야 일이 터졌다. 퇴근시간이 다 왔기에 엑스레이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중년 남자분이 터벅터벅 동물병원으로 들어왔다. 반려동물과 같지 오지 않았기에 사료나 용품을 사러 들어온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아까 반쯤 기절해서 들어온 구름이를 찾는 것이 아닌가? 테크니션이 어떤일로 오셨나고 물어보니 반려동물을 데리러 왔단다. 이 사람이 남편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국 동물병원 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대부분 동물병원의 규정은 반려견을 맡기고 간 보호자가 오거나 전화로 미리 연락을 취한뒤에 위임을 해야지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병원도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남자는 카운터 직원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내 개를 내가 데리러 왔는데 왜 이렇게 따지는게 많냐며 욕을 했다. 내가 언어폭력의 직접적인 대상은 아니었지만 사용하는 언어들도 굉장히 거칠었기 때문에 기분이 계속 언짢아졌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원래 보호자에게 전화를 해야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거니 통화연결음이 되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받으면서 우리가 아무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자기도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 사이 아저씨는 계속 언성을 높이면서 아프지도 않은 개에게 과잉진료를 한다고 신고한다는 말도 하면서 삿대질을 하고 목소리르 높혔다. 개에게 물렸다는 상처를 슬쩍 보니 피가나게 문 것도 아니고 그냥 자국이 남을 정도로 물린 상처였다. 아마 구름이도 물려고했다기 보다는 갑자기 깜짝 놀라서 물었다가 거의 바로 놓았던 것 같다.
몇 분 뒤 보호자가 도착해서 남편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되려 아주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풀을 툭툭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호자도 화가 나는지 평소에 남자가 얼마나 무능력하고 폭력적이었는지 말을 하면서 자기를 때려보라는 말을 계속 했다. 혹시나 하면서 뒤에서 부부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부인의 배와 가슴을 세게 쳐서 부인이 땅바닥에 철푸덕 넘어졌다.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폭력이 더 이어지면 말리기 위해 물리적인 개입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호자분은 소리를 더 크게 냈다. 밖이라서 이렇게 살짝 때리냐고, 원래 때리던것처럼 때려봐, 술 쳐 마시니까 힘이 안 나네? 하면서 오히려 악을 쓰기 시작했다. 가정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분위기에서 나올 수 있는 반응과 행동들이었다.
그러자 남편은 현관 옆에 소파를 발로 걷어 차면서 아내를 다시 때리려고 손을 계속 위로 올렸다. 부부싸움을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저렇게 감정적인 상황이 계속 되면 둘 중 하나는 끝장 날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것 같았다. 살인이 괜히 나는게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내 손을 떠났기에 경찰에 먼저 신고를 하고 병원 대표원장분께 연락을 했다. 곧 경찰이 도착했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남편을 따로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내 퇴근시간은 훌쩍 지났기에 퇴근 준비를 했다. 퇴근 전, 구름이를 보니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자기 힘으로 일어서기 시작했으며 호흡도 어느정도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잘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단 엑스레이는 보류하기로 했고 인수인계를 했다. 그 와중에 아저씨는 경찰들 어깨너머로 구름이를 치료하지 말고 내놔라, 하면서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 상황을 뒤로하고 퇴근을 했다. 다음 날은 내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기에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구름이는 다행히 잘 회복하고 오후에 퇴원을 했다고 했다. 개가 될 수 없기에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게 좋은일일지, 나쁜 일일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편하진 않을것이다.
구름이는 눈에 맺힌 두 사람은 어떤 잔상으로 남아있을까. 폭력에 광기어린 병든사람과 피해자일까, 그저 다른 종류의 보호자일까.
동물이 문다고 화가 나는걸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동물에게 가장 많이 물리고 할퀴는 직업을 꼽으라면 동물병원 수의사들과 테크니션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동물에게 물린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에게 감히 조언을 할 자격이 어느 정도는 있다. 동물들은 솔직하다. 그렇기 때문에 물고 할퀴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긴장감, 화남, 혹은 약함을 표시한다. 당장은 아프고 물리적인 해를 입었을 지언정 피부와 뼈에 난 상처는 곧 아문다. 심지어 내가 언제 상처를 입었는지 조차 금새 잊어버린다. 동물들이 왜 이렇게 물고 할퀴는지에 대해 조금의 공부를 하고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한다면 우리는 강자로써 관용을 베풀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반려동물이 사람을 무는 것은 사람이 그렇게 만든 셈이다. 누군가에게 상처입고, 버려졌고, 잘못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인과응보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동물들끼리 무는 것보다 더 심하게 상대에게 상처를 낸다. 살다보면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이 오면 나도 모르게 남이 상처입고 괴롭길 바라는 마음이 들면서 못된 말이 입밖으로 나온다. 말로써 난 생채기는 평생을 간다. 마음의 언짢음과 상처는 곧 육체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 자기보다 강자는 때릴 수 없기 폭력의 화살은 약자로 향한다. 이런 악순환이 가정폭력을 만든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자식에게, 사람이 반려동물에게, 폭력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자존감이 부족하다거나,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설득력 없는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불완전성을 약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반려동물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때리고 버리는 것은 비정상이다. 최근 한국의 언론도 반려동물을 잡아서 패대기 친다거나, 새끼 고양이를 건물 밖으로 집어던진다거나 하는 소식들을 예전보다 비중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예전같았으면 뉴스에 나오지도 못할 사건들이었을텐데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점차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져 가는 과정인 듯 싶다. 반려동물에게 상해를 가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는 선례들도 점차 나오고 있다. 반려동물 역사가 100년, 200년 된 반려동물 선진국과는 다소 갭이 있을지언정 변화하는 속도는 어느 곳보다 빠른 것 같다. 긍정적인 변화이다.
인도의 간디는 요즘 여러모로 재평가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동안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위인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인도인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인도인의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 아프리카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자행했으며,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인도의 독립투사들을 돌아보지 않고 비폭력, 불복종만을 주장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향하는 화살을 피해가는 기회주의자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간디가 어떤인물이든 이 말 하나는 참 잘 남긴듯 싶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