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렌 풋볼 Mar 27. 2020

현대 축구계에 흑인 지도자들이 필요한 이유

일반적인 축구팬들이 아는 가장 친숙한 흑인 감독일 웨스트 브롬의 전 감독, 대런 무어

축구계에서 말하는 '다양화'가 단지 '평등'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모름지기 가지각색의 다양한 재능들이 오직 '축구'라는 순수한 틀 안에서 최대의 기량을 끌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즐기고 있는 축구계는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나 열리 있을까? 스카이 스포츠의 아담 베이트가 필드의 각종 전문가들 및 흑인 지도자들을 찾아 오늘의 주제에 대해 짚어 보았다.


지난 6월, 잉글랜드는 스위스를 꺾으며 네이션스 리그 3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당시 잉글랜드의 라인업에 흑인 및 소수 민족 선수들이 차지하는 수는 무려 일곱에 달했다. 그렇다. 이들은 오히려 소수가 아닌 다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미어리그에서 흑인 지도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선수들의 배경은 다양한데 왜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는 그간 심심찮게 거론되어 왔지만, 아직 깊게 진단되지는 못한 문제다.


사실 이 문제의 쟁점은 '지도자'들에 관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문제가 '선수들'의 문제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특히 흑인 선수들한테는 더더욱 말이다.


이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전 프리미어리거이자 현재는 축구 협회(FA) 규제 위원회 소속으로 축구계 내 인종차별 등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마빈 로빈슨이다. 그는 축구계에 나타나는 백인, 흑인 선수 간의 벽은 생각보다 아주 뚜렷하다고 장담했다.


"단순합니다. 백인 선수가 조용한 성격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아주 신중한 프로의식을 가진 선수라 생각할 것이고, 흑인 선수가 조용하다면 사람들은 그를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 왕따라 생각하겠죠" "그렇다면 반대는 어떨까요? 백인 선수가 말 많은 성격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열정적인 선수로 보겠지만 흑인 선수라면 그저 팀 내 균열의 축으로 보겠죠. 과장이라구요? 전혀요. 이건 지금 이 순간에도 적나라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라힘 스털링이 본인의 기량을 과시하는 듯한 인터뷰라도 할 때면 대중들의 반응이 어땠죠? 제 말이 과장된 듯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아마 더 할 거라 장담합니다."

더비 카운티 시절의 마빈 로빈슨

로빈슨은 더비 카운티에서 머물던 시절을 떠올리며, 당시 자신은 좋은 보드진들을 만나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더비 카운티의 감독직에는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이, 그리고 골키퍼 코치와 유스팀 코치에는 각각 에릭 스틸과 스티브 라운드가 있었다. 사실 이들 모두가 나중엔 맨유로 떠나갔지만 끝까지 로빈슨의 곁을 지켜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피트니스 코치 데인 파렐이었다.


"데인 파렐은 당시 저희 팀의 피트니스 코치이자 저와 같은 흑인이었죠. 그가 팀 내에서 지도를 맡은 부문은 테크닉이나 전술적인 롤이 아닌, 피지컬적인 롤이었어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무의식적인 편견이 바로 '흑인은 타고난 피지컬을 지녔다'라는 관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흑인을 생각했을 때 감독이나 지도자 자리를 쉽게 떠올리지는 않죠. 이는 실제 지금의 축구판을 보아도 여실히 나타나는 현상이구요. 파렐의 경우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단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부분이란 건 확실합니다."


"저는 그간 선수 생활을 해오면서 여러 은사들과 롤 모델들을 만나왔지만 역시 그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바로 파웰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저와 같은 흑인이었다는 것이 큰 역할을 했죠. 저는 어떤 문제가 생길 때면 그와 논의하고 풀어가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저희는 같은 배경과 공감대를 지녔으니까요. 그리고 이는 비단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흑인 선수들도 확실히 그와는 잘 통하는 부분이 있었죠."


로빈슨에게 파렐이라는 존재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에 특화된 특별한 지도자였던 것이다.

축구계 미래의 일부분을 책임질 흑인 유망주들에겐 흑인 지도자들의 존재가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 유망주들에게 좋은 지도자들의 케어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가진 통념이지만, 로빈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흑인 유망주들은 설자리가 비교적 좁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가공할 만한 재능을 지녔지만 좋은, 혹은 기댈 수 있는 멘토를 찾지 못해 그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안타까움이 몰려오겠지만, 이것이 단순한 상상이 아닌, 지금 현재 축구계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에 대한 로빈슨의 생각을 들어보자. "기량 외적인 부분 때문에 묻히는 재능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단순한 예를 하나 들어보죠. 실제로 어린 흑인 선수들은 백인 선수들에 비해 트레이닝에 지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이들을 경기장에 데려다주는 보호자들의 존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 말고도 크고 작은 차이들이 많겠죠. 이렇듯 유스 시절부터 여러 방면에서 혼자에 익숙해지는 흑인 선수들은 갈수록 소외되어 가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을 같은 공감대로서 케어해줄 수 있는 흑인 지도자 및 코치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라벨 모리슨 같은 선수를 한번 보십쇼. 제가 개인적으로 그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그는 주변 동료 및 코치들과의 트러블, 그리고 여러 사생활 문제로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만년 유망주입니다. 물론 그를 이 문제와 엮어 일반화 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자라온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그의 인격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도 맞지만, 어쩌면 그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혹은 자신이 그렇게 되기까지 누구도 바로잡아주지 않는 환경 속에서 자라왔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퍼거슨이 인정한 최고의 재능이었지만 갖가지 구설수들로 순식간에 몰락했던 라벨 모리슨(오른쪽)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아약스는 유망주 공장답게 어린 선수들의 육성에 중점을 두는 몇 클럽들 중 하나다. 명색에 맞게, 이들은 이른바 '크루이프 플랜'이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코치들로 하여금 '경기'와 '결과'보다는 '선수'와 '과정'을 더 중시하게 하여 이들의 성장 가능성에 해가 가지 않도록 지도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코치와 선수의 관계는 축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다. 이번에는 아약스에서 유망주 육성을 맡고 있는 루벤 욘카인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만약 코치가 공격수 출신이라면, 분명 공격적인 부분을 지도하는 데 있어 전문성이 높을 겁니다. 그렇다면 수비수 출신인 코치는 어떨까요? 분명 수비 지도에 능할 겁니다. 이렇듯 같은 선수이더라도 그를 지도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고, 또 판단하는 데에도 여러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거죠. 바로 이러한 면에서 봤을 때, 각각의 선수들에 알맞는 적절한 코치진 배치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브라이언 테브레든이란 흑인 코치는 저희 유스 선수들 중에서도 참 안 좋은 형편과 배경을 지닌 선수들을 케어하며 육성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고, 이 부문에 대해서 만은 그를 따라올 코치가 없었죠. 실제로 다른 코치 밑에서는 부진하던 몇 선수들이 브라이언 하에서는 눈에 띄도록 달라진 모습이 있었으니까요."

지난해 유에파 U-17 챔피언쉽 우승을 차지했던 네덜란드 선수들의 배경은 참으로 다양했다.

우리들 대부분이 의식하고 있듯, 흑인 선수들이 사회적으로 비교적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브라이언 코치가 힘든 아이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의 배경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저 또한 상당히 어려운 시절을 지내왔습니다. 제 어머니는 혼자서 저를 포함해 4명을 부양하셨습니다. 투잡을 뛰시면서 말이죠. 그래서 저는 제가 지도하는 선수들이 트레이닝 시간에 지각을 하는 일부터 교육적으로 고전하는 일, 또 가난한 형편까지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적잖은 친구들이 가정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죠."

"이렇듯 불안정한 선수가 어린 나이에 코치와 자주 부딪히게 된다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화를 내는 코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 저라면 조용히 자리를 마련해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물론 오래 걸릴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분명 언젠간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줄 겁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형편이 어려웠던 저의 배경을 말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공감대가 생기고 저의 진심이 그 아이에게 닿게 되겠죠. 이렇듯 심적으로 가까운 관계가 형성된다면, 비로소 그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제가 현재 아약스에서 하는 일은 단지 선수들의 기량을 발전시키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수들을 볼 때 훈련이나 경기 시간을 벗어난 외적인 시간들에 주목합니다. 그러한 시간들에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마음 상태가 어떤지를 파악하려 노력하죠. 그렇게 그들은 물론, 그들의 부모님과도 관계를 형성해 나갑니다. 저는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선수들에게 가정, 혹은 사적인 상황에서 문제가 있다면 기량적으로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선수들이 부모님께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더라도 저한테는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의 끈끈한 관계를 쌓으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선수들의 성장에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끼곤 하죠."


반가운 소식이 있다면, 최근 영국 축구계에서도 이러한 지도 방법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축구는 지난 2017년부터 이른바 '루니 룰'을 시행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위에서 소개한 아약스의 '크루이프 플랜'과 비슷한 맥락의 정책이다. 이 정책은 최근 들어 점점 다민족화되고 있는 영국 대표팀의 내부 분위기를 위해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아약스 유스 육성에 큰 힘이 되었던 브라이언 테브레든 코치

지난 2017년 열렸던 U-17 월드컵에서 우승한 잉글랜드 U-17팀의 스쿼드에는 총 21명의 선수들이 있었고, 이 중 무려 13명이 토종 영국인이 아닌, 흑인 혹은 다민족 선수들이었다. 이렇듯 점점 불어나는 다민족 선수들의 육성을 위해서는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서라면, 이러한 현상은 아주 긍정적인 기회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이러한 정책이 단지 유스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인팀에까지도 뻗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월드컵 무대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은 스털링의 부진으로 고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PFA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 가레스 크룩스는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내 흑인 코치의 부재를 원흉으로 꼽았다.


축구 협회(FA)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지, 최근 국가대표팀에 흑인 및 소수민족 코치들을 전보다 많이 유입시키고 있다. 단적으로 잉글랜드는 월드컵 이후 브라이튼의 1군 코치였던 폴 네빈을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밑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현재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의 코치진으로 부임 중인 흑인 코치들인 솔 캠벨, 이피 오누오라, 테리 코노어 모두 잉글랜드 U-21 대표팀 코치 출신이다. 이외에도 현재 유수의 팀들에 흑인 코치들의 자리가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 다룬 문제의 핵심은 단지 흑인 코치들을 위함이 아닌, 자라나는 흑인 선수들을 위하는 것이기도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수들의 배경은 다양한데 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배경은 단색이라니.., 확실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 문제는 축구계를 이루는 모두를 위해서라도, 벌써부터 이루어졌어야 할 개혁이 아니었을까..?



https://www.skysports.com/football/news/11096/11795464/why-black-coaches-can-help-nurture-the-next-generation-of-young-talent


번역 : 글렌 풋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