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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착한 레몬 May 16. 2022

차곡차곡_글1

*차곡차곡은 양혜리작가와 내가 함께 쓰는 글이다.

 나는 스스로 멍청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언젠가 어디선가 이런 소리를 들었다.

 “불이 뜨겁다는 것을 꼭 불에 손을 넣어 봐야 아니?”

 누군가 나에게 던졌던 말은 아니지만, 나는 때때로 불에 손을 넣곤 한다. 그리고는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스스로 한다. 불에 손을 넣으면, 따스함이 순식간 뜨거움으로 바뀌면서 손에 잡히지도 않는, 눈에는 보이나 형체는 차마 잡히지 않아 어떤 놈이 내 손을 건드렸는지도 모르게 앗! 뜨거워! 데인다. 찬물에 어서 손을 진정시키고 손이 쪼그라들었나 두려운 마음으로 확인하면 다행스럽게도 아니다. 처음에는 손 전체가 벌겋게 되어 여기가 데었나 연고라도 바르려면 저쪽에도 물집이 잡혀 있다. 물집을 터뜨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조금 기다려 본다. 그냥 그렇게 지내다 어딘가에 쓸렸는지 물집은 저 혼자 터져 있다.

그러게 왜 그랬니? 그게 뜨거운 줄 몰랐어? 하고 묻는 사람들, 혹은 자기 자신.

그러다 또 불에 손을 넣게 된다. 처음에는 또 같은 실수 말아야지 하다가 또 데인다. 물집은 저번보다 좀 작게 잡히기도 하고 더 크게 잡히기도 한다. 좋은 약을 알고 있다. 어쩌다 물집이 터져버리기 전에 먼저 터뜨리고 소독하고 약 바르고 패치를 붙인다. 불은 뜨겁다. 살이 상하고 머리카락은 오글오글 타들어가면서 매캐한 냄새를 피운다. 매번 불이었지만 같은 불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자. 손에는 여기저기 그을렸던 살들이 상처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유감스럽게도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찰스 부코스키의 어느 밤을 상상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우체국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셈을 하고, 두려움을 물리치고, 용기를 물약처럼 마셨을까? 아니면 어차피 선택은 선택이니 단호박처럼 단호했을까?

시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에서

그리고 창밖에

발걸음들이 오갈 때

이 구절이 유독 눈에 밟혔다.

찰스 부코스키를 검색하면 그의 묘비명 ‘Don’t try’가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오래전에 학원에서 국어 선생님을 2년 정도 했었다. 그때 가끔 피시방으로 학생들을 잡으러 출동하곤 했는데, 일이 끝나면 나도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 하루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어떤 게임을 추천했는데, 그날 저녁 피시방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바로 그 게임을 시작했다. 학원 원장님은 종종 일 열심히 하고 경력 쌓이면 강남 어디로 대치동으로 나아가라 했지만, 게임이 더 하고 싶어 학원을 그만두고 피시방 알바로 일자리를 바꾸었다.


2008년인가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캐치 프라이즈 또는 슬로건은 ‘이번 생은 망했어요’였다. 덕분에 이번 생은 망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선물로 나누어준 비닐 배낭에는 스테이지별 지도와 라인업을 볼 수 있는 안내책자와 다양한 굿즈들과 스티커와 콘돔이 들어 있었다. 멀리 보이는 무대에서 어떤 밴드가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점점 그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가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많이 이끌었다. 나와 친구도 그들이 그렇게 재밌다던데! 기대하며 잔디밭을 뛰어갔다. 그때 내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다 찍고 다녔던 것 같다. 그때는 아마도 최선을 다해 삶을 살며 사진을 찍었다. 친구는 나의 사진을 좋아해 줬지만, 공부를 한다며 찍기 시작한 사진들은 좋아해 주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어떤 장면들이 보였고 눈을 뜨면 뜬 대로 장면들이 보였다. 문장을 읽으면 새로운 문장이 생성되었고, 좋은 글을 읽으면 생각이 계속 펼쳐져 생각하느라 글을 더 읽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머릿속의 문장들, 흘러가버린 장면들은 모두 기록되어지지 못한 채 시간과 함께 흘러가거나 떠내려갔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만 같아 몸이 쭈그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 전, 르네라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나와 성질이 반대인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내 안경은 안경을 통해 눈을 보았을 때 눈이 작아 보였지만, 그의 안경은 눈을 더 크게 보이게 했다. 그는 베를린 자유대 학생이었는데 내게 필요한 독일어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하나의 단어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적었지만, 그는 내가 알려주는 한국어 문장을 하나도 적지 않았다.

 “너는 적지 않네?”

 “응, 나는 적지 않아,”

 “그러다 잊으면 어떻게 해?”

 “걱정 마, 잊지 않아. 모두 덕지덕지 묻어있을 테니까.”

그 말을 하며 르네는 자신의 팔과 몸을 덕지덕지 만졌다.

 “그럼 사진도 찍지 않아? 여행을 가도?”

 “응, 나는 그다지 사진을 찍지 않아. 하지만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은 모두 내 거야. 어떻게든 남아 있어.”


- 양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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