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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착한 레몬 Aug 01. 2022

차곡차곡_글5

*차곡차곡은 양혜리작가와 내가 함께 쓰는 글이다

1. 뼛속까지 서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나는 지금은 서울에 살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서울을 나갈 일이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여긴 이게 유명하고, 이게 맛있고!’ 하는 것처럼 서울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서울의 구석구석을 다 알기라도 한 것처럼. 서울의 한 거리를 걷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편하고 고개가 자연스럽게 조금은 올라가는 것. 이게 고향이라는 어떤 기댈 곳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일 것이다. 이제 서울은 내게서 조금 멀리 있고, 매일 걷고 보는 주변의 풍경도 이전과는 다르다. 그 사실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 조금 슬프기도 혹은 후련하기도 하지만, 누군가 나를 떠올렸을 때 나와 연결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게 서울 같은 도시라면 더 좋을 것 같다.


2. 아주 오래간만에 잊고 지낸 서울거리와 단골 카페의 분위기를 다시 추억할 만한 연락이 왔다. 내게 수줍게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던 한 작가님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연락을 받자마자 그 작가님의 얼굴과 정성껏 정리한 그림들 그리고 조금 굳어있었던 어깨와 말투까지도 모두 소환되었다. 작가들끼리 스터디를 만들어서 미술에 대해, 전시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임을 하고 있었던 성실한 작가였다. 이와 함께 오래된 시장의 쌀집을 개조해서 만들었던 당시의 전시공간과 앞집, 옆집 사장님들, 지금은 볼 수 없는 연남동의 골목 풍경도 덩달아 따라왔고, 기뻐서 이미 만나기도 전에 이미 내 마음은 많이 들떠 있었다. 마음은 이미 저만치 달려서 날아가고 있을 때쯤, 내게 새 전시의 글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미술비평을 하고 싶어 했던 과거의 글 쓰는 나와 기획자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나 사이에 큰 간격이 있어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스스로 한참을 머뭇거렸다.  


*올 해만 4건의 개인전 글을 부탁받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동시에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써주세요.‘라는 작가님들의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모두 수락했다. 결국 머리를 쥐어뜯지만, 적어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글은 쓰지 말자는 나만의 다짐 같은 것들도 생겼다.   


3. ‘서촌에서 만날까요?’라고 했을 , 우리는 같은 카페를 떠올렸다. 얼마만의 단골 카페인가. 대부분의  단골 카페들은 문을 닫았지만,  집만은 여전했다. 우리는 mk2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 전날까지 나는 최대한 많은 기억들을 떠올렸고, 작가의 홈페이지도 천천히 살펴보았다.  신기하게도 1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카페 문이 열리고 내게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기억들까지 모두 떠올랐다. 워낙 더운 날씨에   시원한 커피를  잔씩 마시고, 자연스럽게 사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우리는   엄마가 되어있었고, 1 터울의 아이들은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의 시간들이 폭넓게 펼쳐졌다.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 등등 여느 여자들처럼 수다가 오고 갔다가 우리는 다행히도 우리 자신으로, 서로의 작업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어쩌면 앞에 나눈 이야기들은 모두 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서로의 지나온 시간들이 모두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4. 결국엔 몇 번 울기도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카페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테이블이 만석이었는데,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훔쳤다. 미술 하는 여자들의 운명처럼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을 하다가 우울증 약을 먹었던 이야기, 공황이 왔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엄마로 살게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며 눈을 조용히 내려 감기도 했다. 거침없고, 더할 것 뺄 것이 없었던 대화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 자신으로써의 이야기들을 충분히 들려줬다. 그 끝엔 작업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모든 이야기들이 이 이야기를 하려고 꺼내진 것처럼, 작업 이야기를 할 때쯤엔 조금도 날 선 감정이 없이 차분하게 질문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5. 대화를 나누며 나는 몇 번이고 어떤 장면들을 떠올렸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온 그녀가 남편을 따라 시골로 이사를 하고, 전혀 다른 생활과 마주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남편 집에 있는 작은 창고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말은, 과거의 많은 작가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도시를 떠나 낯선 풍경을, 새로운 장면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에 놓였고,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고 했다. 더없이 행복한 생활처럼 보였다. 작은 창문이 하나 있고, 문이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그냥 뚫려 있는 작은 창고가 사람을 그렇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했다. 작가는 매일 그 창고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고 했다. 작가의 창고 맞은편으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밭일을 하고 계셨는데, 그분들이 밭일을 하시는 동안 똑같이 작가도 서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창고의 문이 빠져 버린 게 다행인 걸까.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풍경은 한없이 목가적이고, 낭만적이다. 생활이라는 것을 제거하면 이렇게 낭만적인 부드러움이 찾아들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에게 어느 날 시댁 어르신들이 “네가 그림을 그리는 게 우리가 밭일을 하는 것과 같구나. 정말로 너는 매일 뭔가를 계속해서 하고 있구나.”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 작가는 보이는 것 너머로 이해되는 우정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켜 세워 캔버스 앞으로 자신을 데려가는 것, 그게 작업이라고 말이다.


작가란 어떤 사람들이냐 혹은 작가는 어떻게 탄생하냐는 말에(탄생이라는 말은 늘 너무나 거창해서 멀게만 느껴진다.) 모여 있던 기획자들과 ‘스스로 자기 자신이 작가임을 느낄 때, 그래서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작가이고, 그렇게 작가가 되는 것이다.’라고 내 입으로 했던 이 말을 나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스스로 ‘나는 작가가 되어야겠어.’라고 결심하는 순간, 우리에겐 가장 강력한 창작의 동기가 부여된다. 그러고 나면 작가로 사는 삶을 스스로 증명하듯, 다른 이들은 모르는 계획들을 세우고 실행한다. 오롯이 본인만 아는 야심 찬 혹은 비밀스러운 계획이다.(이 계획들이 비밀스러운 이유는, 세상에 보여 질지 말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몸을 세워 책상 앞에 앉을 때, 몸을 세워 그림을 그릴 때, 몸을 세워 무언가를 만들어 나갈 때, 그 순간이 우리를 작가로 만든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작가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혹은 ‘가치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쓸모 있음과 없음을 내포한)’라는 세상의 여러 질문들과 마주한다. 그 질문들을 만나고, 때로는 상처받고, 후회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또다시 자신의 위치로 몸을 일으켜 세워야만 한다.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존재들과 만나는 일, 그리고 서로의 위치에서 성실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 작가는 탄생한다. 이건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나를 모르고,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각자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가끔 문이라도 하나 열려있으면(아니 떨어져 없더라도) 서로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어렴풋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위치에 나의 몸을 오롯이 세우는 일을 게을리 해선 안 되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해서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것, 이 의지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여자도 아닌 기혼녀, 이혼녀, 미혼녀와 같은 수많은 딱지들이 우리 등 뒤를 지나가는 순간이다. 오롯이 남는 건 내가 세워 둔 내 몸과 마주하고 있는 나의 모습뿐이다. 이 모습이 모여 하루, 한 달, 일 년을 이루고, 결국에는 ‘나’라는 그림도 완성될 것이다.  


- 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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