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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착한 레몬 Aug 16. 2022

차곡차곡_글6

*차곡차곡은 양혜리작가와 내가 함께 쓰는 글이다

 2013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외롭거나 쓸쓸했다. 뭔가 일은 잘 풀리지 않았고 돈도 없었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다. 떠나온 사람들이 그리워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베를린에서 알게 된 어떤 이는 몸이 멀리 떠났고 어떤 이는 마음이 떠났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이 전자책으로 읽었던 한국 책들이었다. 독일어가 어려워 ‘내가 원래 언어 해독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실망감에 집으로 돌아와 한국어로 된 책을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래 나는 지금 이 문장들을 이해하고 있다’ 안도하며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 다짐하기도 했다.


  ‘베를린 리포트’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었다. 한인 커뮤니티라 할 수 있는 이곳에는 구인, 구직, 각종 정보, 칼럼 등등 다양하고 실용적인 내용들이 가득했다. 독일에 살면서 이 사이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를 얻으러 들어가는 사이트였건만, 하루는 직접 글을 올릴 각오를 했다. 


 정확히 뭐라고 올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내용은 이랬다. 베를린에도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문학 모임이나 독서 모임이 있는지? 있다면 나도 함께하고 싶고, 없다면 함께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나는 내 메일 주소를 올리고 연락을 기다리겠다 했다.


 얼마 후, 박소은이라는 이름으로 도착한 메일을 받았다. 박소은 씨는 독일에서는 꽤 지냈지만, 베를린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혹시 그런 모임을 찾았는지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함께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어떻게 모임을 이끌어 가면 좋을지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더불어 같이 요리도 하고 밥도 먹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마침 그런 모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베리에 쓴 내 글을 읽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구나 하면서 반가웠다 했다. 


 나도 기쁜 마음에 답장을 썼다. 연락이 많이 오지도 않았고 모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우리 둘일 거라고. 우리는 둘이어도 괜찮으니 일단 만나서 인사도 나누고 이야기도 나누자 했다. 그렇게 독서 모임이 어찌어찌 시작되었다. 첫 번째 함께 읽을 책은 한병철의 <피로사회>로 정했다. 우리는 이 책을 각자 읽고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당시 나는 늦깎이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어딜 가나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래서 편지를 주신 분께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도 놀라지 말아 달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박소은 씨는 메일로 저도 나이가 많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우리는 샬로텐부르크의 한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분을 박소은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박소은 선생님은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하여 얼마나 많을까 궁금했는데, 내 나이는 선생님의 큰아들보다도 적었다. 나는 멋쩍었고 선생님은 재미있어하셨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책을 함께 읽기도 하고 빌려주고 빌려 읽기도 했다. 만나서 함께 요리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사진도 찍으며 모임을 이어 나갔다. 간혹 특별한 행사도 맞이하게 되었다. 베를린 한국문화원에는 해마다 한국 작가들이 방문했다. 우리는 김애란, 신경숙 작가와 심보선 시인이 왔을 때 함께 한국문화원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재미있게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박소은 선생님은 특히 김애란 작가를 좋아해 종이책을 들고 와 사인도 받고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옆에 있던 나도 덩달아 악수했는데 그녀의 손이 너무 작고 여려서 손이 큰 나는 어쩐지 부끄럽기도 했다. 


 김애란 작가는 아침에 커다란 공동묘지를 산책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공동묘지가 여느 공원만큼 좋았다고. 그리고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쓰레기통에는 누군가 방금 먹고 버린 샌드위치 포장이 버려져 있었다고. 베를린은 죽은 자들이 있는 공간에서 산 자들이 벤치에 앉아 음식을 먹고 가는 공존의 공간인가 했다고. 그것이 베를린의 첫인상이었다고.


 신경숙 작가는 추운 계절에 왔기 때문에 베를린이 무척 추울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왔다며 첫인상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추위가 한국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좀 색다른 느낌이었는데 땅을 디디고 있는 발바닥부터 깊숙하게 파고드는 강력한 추위였다고 했다. 


 심보선 시인은 새로운 시집이 발간된 후 베를린에 왔기 때문에 새로운 시집의 시들을 낭독했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죽음이 자주 인식되고 등장하고 반복되는 것이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잘 모르겠다’라는 것이 자신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로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사람에게 가장 큰 두 사건이 탄생과 죽음인데, 정작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거나 인식할 수 없다고.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고민과 시에서 나온 아이, 즉 탄생에 대한 고민은 결국 ‘모르겠다’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그 시집의 제목은 <오늘은 잘 모르겠어>다.


 박소은 선생님은 이후 모 신문사에서 칼럼을 청탁받기도 했다. 정말 ‘베를린 리포트’를 쓰시려나 했다. 선생님은 이미 어떤 내용들을 쓰면 좋을지 구상을 끝내 놓은 상태였고 시절 별로 베를린의 이런 공간, 이런 역사, 자신의 이런 이야기에 관하여 쓰면 좋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칼럼은 어찌 된 일인지 취소됐다. 선생님은 머릿속으로는 이미 쓰고 있던 내용을 갑자기 그만두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보낼 곳이 없어졌어도 그냥 글을 계속 쓰기로 했다. 한참 후에 다 쓰인 글들은 잘 묶여서 한국에서 책으로 발행되었다.


 그 책은 내가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해에 출판되었다.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다량의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박소은 선생님이 좋아해 주었던 우리 엄마의 된장과 함께 독일로 몇 권 보내드렸다. 그 책의 제목은 <어느 베를린 달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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