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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화 Jul 12. 2022

절대적이고 순수한 삶에 대한 열망

<알피니스트: 마크-앙드레 르클렉>을 보고...

'프리 솔로'는 거대한 절벽을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혼자 맨몸으로 오르는 클라이밍의 한 장르이다. 힘이 떨어지거나, 한 순간 발을 헛디디거나 미끄러지면 높은 확률로 사망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게임이자, 아무런 보조장비 없이 자신의 기량만으로 벽을 오르는 가장 '순수한' 방식의 클라이밍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알피니스트: 마크-앙드레 르클렉>는 그런 프리 솔로를 동네 뒷산 오르듯 하고, 위험하기로 소문난 빙벽마저 프리 솔로로 등반해버리는 한 클라이머, 마크-앙드레에 대한 이야기다.


프리 솔로 여정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수직거리 약 1km에 달하는 엘 케피탄 암벽을 프리 솔로로 올라가는 한 클라이머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리 솔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눈과, 얼음과, 암벽이 번갈아 나오는 거대한 설산을, 때로는 바일(빙벽 등반 시 얼음을 찍어 오르는 도끼 같은 장비)을 사용하며, 때로는 맨손을 사용하며 오르는 프리 솔로는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적어도 암벽은 단단하기나 하지,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얇은 고드름에 아무런 줄도 없이 온몸을 지탱하며 등반하는 장면은 전혀 다른 차원의 긴장감을 줬다.


하지만 그의 프리 솔로 등반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등반을 대하는 그의 자세였다. 아마도 '왜 저런 짓을 할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정상적인 생존 본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소위 '스폰받는' 유명 클라이머가 되길 바래서일 수도 있고, 어떤 개인적인 성취나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라면 당연히 그 과정을 누군가가 기록으로 남겨주기를 원할 것이고, 후자라고 해도 굳이 그걸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하는 클라이머들의 여정이 다큐멘터리로 여럿 만들어졌고, 그들은 꽤 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마크-앙드레는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그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도중 몇 달간 잠적해 버린다.


초조해하는 제작진들에게, 그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기념비적인 프리 솔로 등반을 여럿 성공해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어렵사리 그에게 연락이 닿았을 때, 자신은 사실 영화든 뭐든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등반 과정을 스스로 해내는 모험의 과정 그 자체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모험에 동행하는 순간,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경험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일부러 제작진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볼더링 문제를 하나 풀 때마다 영상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좋아요를 받기를 기대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물론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일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욕구 중 하나지만, 클라이밍이 줄 수 있는 경험은 그보다 훨씬 큰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인간이 경험할  있는 최고의 감정  하나는 거대한  세상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자연 속에 너무나 작은 자신의 모습을 인식함으로써, 내가 거대한 무엇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  같았다. 물론 그와는 비교도   없는 수준이겠지만, 나도 가끔 자연 암벽을 오를  그가 말하는 감정의 힌트라도 얻을  있던  같다.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암벽의 모서리와 틈을 손끝과 발끝으로 딛고 위까지 올라갈 때면 거대한 자연의 시간과 공간 속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때면 굳이 누군가에게 뽐내기 위한 영상거리를 남기지 않아도 괜찮았다.


클라이밍을 깊이 파면 팔 수록, 이것은 단지 취미나 스포츠가 아닌, 한 가지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높은 곳을 오르는 행위를 넘어, 그곳에 어떻게 다다를 것인지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죽을 가능성을 무릅쓰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모한 도전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절대적이고 순수한 삶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무모하고 순수한 열망을 추구하는 이들은 보는 이를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물론, 내가 이번 생애에 프리 솔로를 할 만한 실력이 될 수도, 설사 된다 해도 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클라이밍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먹먹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의 반응을 찾아봤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할 때는 마크-앙드레의 선택에 대해 질문하지만, 끝나고 나서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유튜브의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그처럼   없을 것이고, 그것만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는 결코 말할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울림이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순수한 삶에 대한 열망마음 한편에라도 간직해두는 일이 살아가는  분명 필요할 것이라 믿는다.


마크-앙드레가 프리 솔로 등반한 파타고니아의 Torre Egger 봉우리 (출처: https://twitter.com/jimk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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