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3 글쓰기 모임 세번째 글. 익산에 살던 날의 기록
20대 초반 서울에서 자취하다 첫 함박눈을 본 날이었다. 땅과 건물의 하늘과 닿는 모든 면들이 하얗게 변하고 도시의 소음이 눈송이에 먹혀서 고요해진 광경은 부산에서 온 내게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어떤 충동적인 이끌림에 못 이겨 다짜고짜 근처의 운동장으로 가서 눈 공을 만들어 굴렸다. 아무도 없는 새하얀 운동장에서 눈 공을 굴리다 보니 묘한 쾌감이 있어서 점점 크게, 거의 지름 1m 정도의 눈 공을 만들어 골대에 넣고 왔다. 아무 쓸데없는 일이었지만 왠지 모를 충만함을 느꼈던 즐거운 기행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강의 일 때문에 잠시 전라북도 함열이라는 곳에 잠시 머무르고 있다. 높은 건물 하나 없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농촌이다. 낮이면 양 옆으로 핀 코스모스 너머로 노랗게 익어가는 논이 펼쳐진 한적한 시골길이 밤이 되면 가로등 하나 없어 캄캄한 길로 변하는 그런 동네다. 근처에 언젠가 교과서에서 봤던 백제의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게임 만드는 일을 하며 나름의 인정도 받았지만, 사실 요즘 들어 점점 창작 에너지가 떨어지고 있음을 확연히 느끼고 있다. 뭔가 기행을 하면 새로운 영감이 차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내심 있었다.
이곳에 오고부터 줄곧 달이 뜨지 않는 날을 기다려 왔다. 밤 12시, 쓰레기를 버리러 나와 무심코 쳐다본 하늘에 검은 스케치북에 바늘 끝으로 콕콕 찍어 놓은 듯한 흰 점들이 보였다. 그래, 오늘이 그날이다. 아파트 단지의 가로등에 가려도 이만큼이나 보이는데, 빛이 전혀 없는 시골길에서는 어떨까? 밤에 집에 오는 길이면 약간의 무서움과 함께 괜히 하늘을 한 번쯤 바라보게 하는 설렘을 줬던 그 시골길에서, 그리고 그 길 너머 오랜 백제의 유적지에서 별빛 가득한 하늘을 사진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이 이 정도까지 미치자,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을 끝자락의 새벽 공기는 싸늘했다. 다짜고짜 차를 몰고 시골길로 향했다. 가진 거라고는 휴대폰 카메라밖에 없는데 뭘 찍을 수나 있을까? 차 보닛을 삼각대 삼아 사진을 찍어보니 별빛이 그럴듯하게 나왔다. 기대에 부풀어 캄캄한 시골 밤길을 달려 미륵사지에 도착했다. 역시나 이 야밤에 천 년도 넘은 석탑을 보러 이곳까지 오는 이상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혹시나 어디선가 경비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고요하게 잠든 석탑에 조용히 다가갔다. 허허벌판에서 휴대폰을 땅바닥에 놔두고 거의 눕다시피 하며 8초에서 30초까지, 장시간 노출 셔터를 눌렀다. 결과물은 한 밤 중에 서리 맺힌 차갑고 눅눅한 땅바닥에 누울 가치가 있었을 만큼 꽤 만족스러웠다.
별빛을 배경으로 서 있는 석탑을 보니, 문뜩 어디선가 읽었던 <므두셀라 나무의 짧은 이야기>라는 글이 떠올랐다. 므두셀라 나무는 약 5000살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짧은 이야기라니, 처음 봤을 때는 뭔가 역설적인 제목 같았다. 하지만 130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5000년의 시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 짧은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약 1500년 정도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이라지만, 그 오래됨이란 수십억 년 전부터 빛을 발하던 별들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오래됨이라는 시간의 길이는 먼 하늘의 빛보다 눈앞의 이 돌덩이를 통해 더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가? 모순된 감정이 느껴졌다.
거의 무한한 우주의 공간과 시간. 다큐멘터리나 책을 통해 알고는 있다지만 차마 체감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실이다. 알알이 박힌 밤하늘의 빛 하나하나가 언제나 그 광대한 시공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도시의 불빛과 소음에 가려 우리 대부분 그 존재조차 잊고 산다. 하지만 가끔씩 조금이나마 이를 체감할 기회를 얻을 때면 우주 먼지에 불과한 내 존재의 덧없음에 슬픔마저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이루는 물질들 또한 저 별들로부터 왔기에 나는 그저 우주의 작은 한 먼지가 아니라, 내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광대한 것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인식할 때 슬픔은 황홀함으로 변하게 된다.
그런 경험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때가 있었다. 유학 시절 졸업 작품을 만들며, 내가 우주를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들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었다. 나에게 우주는 상상의 놀이터이자 수많은 별들이 빛과 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오케스트라와도 같았다. 특별한 목표나 제한 없이, 사람들이 그저 우주 공간 속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었다. 첫 전시 날 밤, 약 3층 정도 높이 건물의 한쪽 벽 전체에 작품을 투사했다. 작품 속에서 사람들은 춤추듯 몸을 움직이며 우주 공간의 가스 구름을 끌어 모아 형형색색의 악기 소리를 내는 별들을 만들며 자신만의 은하를 채워나갔다. 황홀한 표정으로 작품을 플레이하고 “영적인 경험이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나는 전달하고자 한 것이 전달됐음에 크게 기뻐했다.
그 후로 벌써 6년,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졸업 이후 군 문제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2년 동안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구청의 초록빛 책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편물 접기, 서류 배달 같은 자질구레한 업무와 늘 불만에 가득 찬 민원인들과의 실랑이 속에서 우주를 향하던 나의 시선은 점점 무뎌졌다. 군 복무 이후에도 시장에서 실패한 다른 게임을 되살리느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유학 시절 만들던 작품을 더욱 발전시키지 못했다. 도시의 불빛과 소음이 가득한 일상 속에서 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도 온전하게 마무리하지 못한 그 작품을 생각하면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애초에 나는 너무 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일까? 어느 영화감독의 말처럼, 젊은 시절 뭔가 큰 주제를 다루는 이야기를 하려는 설익은 창작자의 무모함 같은 것이었을까? 지금도 그 작품을 계속 만들자면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때만큼 힘이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현실의 제약에 조금 더 뒤엉켜버린 지금은 그때만큼 순수한 감정을, 열정을 오롯이 작품에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는 말처럼, 작품을 만드는 일에도 다 때가 있는지도 모른다. 별빛을 닮은 작품을 만들 수 있던 때가 있고, 석탑을 닮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때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빛을 그리든, 석탑을 쌓든, 지금 이때의 이끌림에 충실한 작품을 만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수십억 년 전 별빛을 배경으로 한 천년 전 석탑의 사진처럼, 동떨어져 보였던 것들이 나중에 한데 모아 보면 하나의 작품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