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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화 Jun 24. 2024

입사 2주년 소회와 원코

  “눈 딱 감았다 뜨면 2년이 흘러 있으면 좋겠다”. 회사 입사 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굳이 2년이라는 시간을 산정해 둔 것은, 그때쯤이면 고점에서 산 아파트 빚을 다 갚고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가장 길게 다닌 직장이 1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2년 동안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꽤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눈을 딱 감았다 뜬 것처럼, 어느새 2년이 흘렀다. 결심만 서면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을 정도인 지금이, 그간의 경험을 정리해 보기 좋은 시점인 것 같다.


  첫 6개월은 여러모로 힘들었다. 같이 일하기로 한 분들과는 입사 2개월 만에 별개의 팀이 되어, 대부분 주니어만 있는 팀에 나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플랫폼과 유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 유명 IP 홀더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에 맞춰가며, 짧은 텀으로 쏟아지는 ‘미니게임’ 프로젝트를 단기간으로 맡아 쳐내기에 급급했다. 입사 6개월 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여 출시한 월드가 3개이니, 어떤 호흡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알 만 할 것이다. 나의 커리어와 무관한 가상 공연 프로젝트까지 갑자기 떠맡게 되자, 집이든 회사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닌지 후회가 밀려들었고, 스트레스에 속이 안 좋아져 장기간 위장약을 먹었다. 게다가 직전에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동료들끼리 매우 가깝게 지내던 나에게, 대기업 특유의 자기 할 일만 하고 가는 개인적인 문화는 아주 낯설었다. 대기업의 (복지의) 따스함과 (인간적인 관계의) 차가움이 공존한다는 느낌이 회사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 내에서 진행하던 스터디에서 게임 개발자로서의 내 삶의 여정을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예전에 종종 특강으로 써먹었던 약 1.5시간짜리 긴 발표였다. 발표를 들은 팀원 중 하나는 “그런데 (왜 그런 분이) 여기 오신 거예요?”라는 질문을 했다. 여러모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사실 이곳이 게임을 만드는 곳도 아니고, 어쨌거나 그들만의 리그인 플랫폼에서 어떤 성과를 올리든, 그것은 게임 개발자로서의 내 경력에는 없는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생각은 마음 한편에 늘 불편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보고 “좋은 게임을, 좀 더 착하게 만들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다섯 손가락에도 안 드는 이전 회사들의 경험이 여러모로 굉장히 '매운맛'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사람을 혹사시키지 않고 게임을 좀 더 건강하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다음 프로젝트를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할 시기가 됐다. 단기간에 쳐내기에 급급한 식이 아닌, 힘을 모아 제대로 된 게임 프로젝트를 만들어보자는 데에 팀의 의견이 모아졌다. 주어진 시간은 6개월. 규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정말 간단한 모바일 게임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게임 회사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기에는 아주 빠듯한 시간이다. 게다가, 그간 지켜본 바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실력이 하나같이 매우 뛰어났지만, 제대로 기획이 잡힌 프로젝트를 만나지 못하는 듯했다. 이들의 마음을 모아줄 정도에, 당장 작업을 들어갈 수 있는, 안정적인 기획의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개인적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만들어 지긋지긋하지만, 내가 가진 IP의 게임을 회사에서 제작하기로 했다. (물론, 이번에는 계약을 제대로 했다.)


  하지만 이를 따로 알리지 않은 것은, 회사에서의 프로젝트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정 외에도, 창작자로서 (또 그거 만드냐는) 부끄러움이 앞서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 이상 이 게임은 나에게 창작의 영역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회사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이자, 다음 스텝으로 빨리 가기 위한 땔감의 역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뭔가 긍정적인 의의가 필요했다. 마침 게임 개발 프로세스에 관한 책을 번역 중이었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프로세스를 실무에 적용시켜 확립하는 것이 이번 회사에서 개인적으로 달성할 중요한 목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프게나마 책의 프로세스를 적용하며 주니어 기획자와 함께 빠르게 기획을 했고, 약 한 달간의 아이데이션과 프리프로덕션을 거쳐, 게임은 곧바로 풀 프로덕션으로 들어갔다.


  기존 게임의 규모와 거기 더해지는 추가 모드를 생각하면, 꽤 큰 프로젝트였다. 게다가 아직 버그 투성이에 사용할 수 없는 기능이 많은 불안정한 개발 환경에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생각지 못한 변수가 계속 터졌다. ‘게임 개발자들은 종종 게임을 만들며 게임을 만드는 도구도 함께 만드는 상황에 놓인다’고 하는데, 딱 그런 상황이었다. 기획자가 연출을 직접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를 개발자가 만들어 주면, 더욱 디테일한 연출을 위해 이것저것 요구하며 도구도 함께 만들어갔다. 뛰어난 동료들과의 협업으로, 게임은 빠르게 잡혀 갔다. 게임은 약 7개월 만에 출시되었고, 놀라운 완성도로 유저들과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울 만큼의 완성도 외에도, 이 정도 규모의 프로덕션을 비교적 원활하게 빠른 시간 내에 디렉팅 하여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 내심 뿌듯했다.


  프로젝트 출시 이후, 약간의 자신감을 얻고 곧바로 다음 프로젝트 구상으로 넘어갔다. 이전 프로젝트는 퀄리티 면에서는 압도적이었지만, 꽤나 복잡하고, 플랫폼의 유저들의 성향에는 맞지 않아, 지표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얻은 교훈을 적용하여, 훨씬 캐주얼하고, 밝고, 소셜한 게임을 빠르게 두 명의 인턴과 함께 아이데이션 했다. 추후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과정은 진행했던 모든 프로젝트 중 가장 이상적인 프로세스에 가깝게 진행되었다. 아이데이션,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초기 프로토타입을 선출시하며 기획적으로 검증할 부분과 집중해야 할 부분을 확인했고, 원하는 아트 스타일과 톤 앤 매너를 정했다. 풀 프로덕션으로 들어가자 참여하는 모든 팀원들이 잘 얼라인되었고, 내가 이 정도면 됐다고 해도 오히려 팀원들이 더욱 욕심을 내어 퀄리티를 높이려고 했다.


  약 1달의 아이데이션, 1달의 프리프로덕션, 2달의 풀 프로덕션을 거쳐 약 4.5개월 만에 게임은 출시되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장기간 인기순위 1위도 찍고, 매출이나 지표면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유저들은 자기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 공략법을 공유하고, 버그를 찾아주고, 재미있는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비록 크레딧 한 자 올릴 수 없고, 어디에서 알아주지도 않을 그들만의 리그라지만, 나름 의미 있는 프로덕트를 내놓았고 이를 즐겨주는 많은 유저들이 있음에 뿌듯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이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존중, 신뢰, 동의를 바탕으로 동료들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별다른 크런치 없이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높은 퀄리티의 게임을 완성해 냈다. 번역한 책의 말미에 있는 ‘우리는 게임을 만들면서 게임을 만드는 게임도 한다.’는 말처럼, 게임을 만드는 게임에 좀 더 익숙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새 2년이 흘러 있었다. 지금은 입사 2주년을 맞아 얻은 긴 휴가를 사용하여 거의 5년 만에 2주 동안 해외여행을 나와 있다. 처음에 마음먹은 것처럼, 여기까지 끊고 다시 커리어의 변화를 주기에 여러모로 적절한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팀을 옮기고 이 회사에서의 시간을 조금만 더 연장해 보기로 했다. 어쩌면 그동안 이곳에서 일하며 쌓인 답답함을 근본적으로 갈아엎을 수도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리그오브레전드>를 하다 보면 ‘원코’라는 말이 있다. 본거지가 부서져 게임이 끝나기 직전 ‘원코’를 외치면, 옛날 오락실에서 코인을 넣어 게임을 계속하듯,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또는 준다는 의미이다. 2년까지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을 연습했다면, 2년 이후의 시간은 ‘원코'를 한다는 느낌으로 임해보려 한다. 이는 회사가 나에게 주는 원코일 수도, 내가 회사에 주는 마지막 원코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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