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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Apr 05. 2023

쾌락, 에피쿠로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쾌락

책은 두껍지 않다. 100페이지 남짓 되는 얇은 책이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책을 웬만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나는 책 중간 부분부터는 내가 책을 읽는 건지 글자만 보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이전에도 이런 책이 몇 권 있었는데 이 얇은 책에서도 난독 때문에 헤매고 있으니 아직도 독서의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책은 총 5 챕터로 구성된다. 그중 힘든 부분은 깔끔하게 건너뛰기로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에피쿠로스의 메시지는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챕터, 더 작게는 하나의 문단, 하나의 문장 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책을 감히 인생책이라 논하기 이전에 인생챕터, 인생문단, 인생문장을 포함하고 있는 대단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집중해서 읽은 부분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인생책으로 선정하고 싶다.




얼마 되지 않은 부분이지만 기억에 남기고 싶은 부분이 꽤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p.47이다. 이 페이지의 마지막 문단의 한 문장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일치한다.

내가 말하는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쾌락의 또 다른 말은 p.87의 평안(antaraxia)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쾌락은 육체적이고 순간적인 동적 쾌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지칭하는 쾌락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우리가 아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에피쿠로스가 정의하는 쾌락은 정적 쾌락, 즉 평안과 평정이다.  평안과 평정은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이자 해방이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혼란의 제거가 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고통과 혼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과 맞닥뜨릴 필요가 있다. 고통과 혼란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고 있는 고통과 혼란을 명확하고 선명하게 인지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고통이 안 좋은 것이나 부정적인 것이라 하여 마냥 회피하려 한다면 진정한 자유로운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힘들다.

고통을 마주하고 그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고통을 인지하고 잊어버리면 되는 것일까? 망각만이 답이 될까? 내가 생각하는 고통의 제거는 고통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 고통이나 혼란의 원인을 저격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고통과 혼란은 선명해지고 원인 또한 명료해진다. 선명하고 명료해진 혼란은 더 이상 혼란이 아니고 고통도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문장을 특히나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두 개의 단어 때문이다.

고통, 자유


고통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있기에 우리는 자유라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고통과 자유의 조화로움은 마치 하나의 완성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다니다 결국 찾은 이 빠진 동그라미처럼 말이다.

나라는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좋은 것을 찾아 쫓아가려는 노력보다는, 존재하는 나쁜 것을 찾아 없애려는 노력이 에피쿠로스의 핵심 메시지라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소위 말하는 행복이라는 단계에 좀 더 빨리 다가가는 방법이리라.




쾌락이라는 책으로 에피쿠로스가 전하는 메시지의 전부가 무엇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책을 다 안 읽었으니까. 아마도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이 에피쿠로스가 의도한 메시지의 절반도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느끼는 건 좋은 글이란 단 하나의 문장,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누군가의 인생의 방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내가 읽은 것보다 더 많은 부분이 남아있다. 이것이 에피쿠로스가 더 기대되고 설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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