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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Jan 20. 2024

배낭 속 비움을 책으로 채우다.

딱 한권 들고가서 인도여행을 한다면 이 책을 가져가고 싶다.

배낭 속 짐 싸는 일이 쉽지가 않다.

'배낭이 가벼울수록 여행이 가벼워진다. 그래, 알겠어. 알겠는데... 그래도 괜히 이거 안 챙겨갔다가 꼭 필요하면 어쩌지? 그래도 우리나라 물건 품질이 좋으니까. 인도는 못 미더워. 이것만 챙기자. 이거 하나 챙긴다고 크게 무겁겠어? 이거랑, 저거랑, 이것도, 저것도 일단 넣어봐.'

머리의 이성은 비움을 계속 외치지만 마음의 욕망은 계속 채움을 부르짖는다. 현관 앞에는 택배상자들이 쌓이고 배낭 옆에는 택배물품들 쌓이고 있으니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섭다. 하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얼마 전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책 좋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오늘 여기에서 얘기하고 싶은 건 책 '' 말고 책 '바깥'에서 눈에 띄는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책 띠지에 있는 유시민 작가의 홍보문구였다. 지금은 너덜너덜해진 띠지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어 포탈에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그 문구를 찾을 수 있었다.  


딱 한 권 들고 가서 무인도에서 내가 죽는 날까지 살아야 한다면 이 책을 가져가고 싶다.


무인도라는 극단의 환경에 처할지라도 이 책 한 권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의미일 테다. <코스모스>를 어렵게 완독하고 나름대로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무인도에 덜렁 떨어진다면 나는 어떤 책을 가지고 갈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질문해 보았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뭐 저런 일이 일이 나겠어? 이 세상에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꼭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

재미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책을 잃고 감흥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아마도 후자일 테다. 이 책이 바로 내 인생책이야 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홍보문구의 유시민 작가처럼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환경이 며칠 뒤면 나에게도 닥친다. 솔직히 무인도라는 극한의 환경은 아니겠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책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은 무인도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는 충분하다(과연 그럴까?). 하지만 읽을 책이 없다. 인도에서 내가 원하는 책을 살 수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배낭에 책을 한가득 채워 갈 수 도 없는 노릇이다. 배낭에서 하나라도 짐을 줄이는 마당에 그 무거운 책들을 짊어지고 다닌다는 상상만으로도 입이 쩍 벌어지고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한 가지 의견을 제안했다.


책 한 권만 가지고 인도로 가는 건 어때?


"응?"

가족 모두가 하나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동시에 항의가 밀려왔다.

"아빠, 나는 책 한 권으로는 안된다고."

"아니, 왜 배낭이 무겁다면서 책을 가져 가려 그래? 종이책이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물론 책 없이 여행을 즐기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다. 요즘 세에 종이 책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유시민 작가무인도에서의 <코스모스>처럼 인도여행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골라 가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한 달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두고두고 볼 수 있는 단 한 권의 책. 선택된 책도 책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책들 중 어떤 책을 선택해서 가져갈지 결정하는 그 과정이다. 그 한 권은 나만의 인생책일 수도 있고,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못 읽었던 책, 아니면 인도여행 맞춤형 책도 될 수도 있겠다.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한 달 동안 함께할 책을 선택한다는 것, 이 얼마나 멋지고 자유로운 일인가! 배낭의 비움으로 자유를 쟁취한다면 책을 통한 배낭 채움으로 의지를 창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의지의 무게는 본인이 결정하고, 본인이 짊어져야만 한다.




한 권의 책을 골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두 권의 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아쉽게도 코스모스는 아니다). 그중 하나는 내 인생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월든>과 얼마 전 읽었던 읽었 <바가바드 기타>였다. <월든>은 군대에서 창고를 정리하다 기증받은 몇십 권의 책 무더기에서 골랐던 여러 책들 중 하나였다. 그 이후로 나의 독해력 부족으 세 번을 읽었으나 여전히 완독 하였다고는 단언할 수는 없는 그런 <월든>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여러 힌두교 경전 중 하나이다(참고로 나는 가톡릭 신자이며 힌두교에는 관심만 아주 많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유독 <바가 기타>가 반복되게 눈에 띄었다. 이것은 그 책을 읽어야만 하는 신의 계시였을까? 비록 종교 경전이지만 아무 거리낌 없이 책을 구매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전하는 거대하고도 심오한 메시지는 흔들리는 내 인생의 나침의 자침을 조금은 진정시켜 줄 수 있었다.

두 가지 책 중 <바가드기타>를 선택했다. 인도인들의 80% 이상이 믿고 있는 힌두교의 경전이라는 점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아내는 <이반일리의 죽음>, 첫째 딸은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 둘째 딸은 <용기의 땅>을 선택했다. 모두 각자의 기준으로 각자의 책을 선택했다.

이 책들은 배낭 속 비움이라는 공간과 맞바꾸는 소중채움이다. 그만큼 달 동안 인도에서 각자곁을 지켜줄 의미 있는 책들이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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