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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Aug 20. 2022

직장인의 이유 Part1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feat. 직장인의 하루)

새벽

새벽 4시 55분,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새벽의 내려앉은 새까만 정적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소리. 알람벨은 정적 상태에서 동적 상태로, 수평 상태에서 수직 상태로의 변화를 계속적으로 요구한다. 언제나 그렇듯 변화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5분만 더~ 5분만 더~'

불혹을 넘겨도 이불속에서의 내적 갈등은 끊이질 않는다. 한쪽은 더 자고 싶은 마음, 다른 한쪽은 일어나야겠다는 마음. 짧디 짧은 5분이라는 시간을 두고 각 진영에서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격렬한 전투가 한바탕이다. 그 짧디 은 5분 동안, 변화로 인한 내적 갈등을 뒤로하고 5시 즈음 큰 결심을 하고 직립보행을 시도한다. 사피엔스의 위대한 직립보행이 매일 새벽 5시 우리 집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향하고 칫솔을 꺼내 든다. 새벽의 칫솔은 볼 때마다 특별한 감정을 일으킨다. 분명히 조금 전(자기 전) 양치를 했는데 또 해야 하다니... 화장실 거울 앞에서 꺼내 든 칫솔이 야속하기 그지없다. 애꿎은 칫솔을 해 한마디 탄식과  함께 토로한다.

"지겹다. 지겨워~"

잠이 덜 깬 나는 화장실 거울 앞 양치를 하면서 시나브로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이제야 입안 가득 묵혀두었던 더운 공기가 민트향 시원한 공기로 환기되면서 무거운 눈꺼풀이 한결 가벼워진다. 혹여나 아내와 세 딸들이 깰까 봐 조심스럽게 방문을 연다. 곤히 자고 있는 얼굴을 문밖 멀찌감치 바라만 보고 고양이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평화롭게 자고 있는 가족들을 보니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나는 세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이야. 오늘도 화이팅해보자!'

여는 때와 똑같은 출근길이지만 오늘의 새벽 공기가 나쁘지만은 않다.




출근

5시 56분,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으로 가기 전 역 천장 모니터가 열차 운행 정보를 알려준다.

"도착하기 2분 전"

2이라는 숫자가 나의 마음을 요동친다. 2분이면 슬슬 걸어 내려가다 보면 열차를 놓칠 거라는 것은 출퇴근러로서 경험으로 터득한 바다. 나만이 이런 생각은 아니였으리라.

옆 사람이 스타트를 끊었다. 내 뒤에서도 타닥타닥 누군가 달려온다. 10분 뒤에 도착하는 다음 열차를 타도 늦지는 않지만 이번 열차는 무조건 타리라는 마음은 변함없다. 동시에 나의 발걸음도 빨라진다. 빨라진 발걸음은 어느새 달리기로 변해있다. 새벽 5시 57분 느닷없는 지하철역 달리기가 한창이다. 다행이다.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자동문이 닫혔다. 제시간에 지하철을 탔다는 안도감은 짜릿한 쾌감으로 이어진다.

'아싸~ 역시 달린 보람이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꽤나 이른 시간이지만 앉을자리가 없다. 잠깐 동안의 쾌감은 금세 풀이 죽어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어쩔 수 없이 적당한 자리 찾아 벽에 기대어 서서 책가방 속에서 책을 꺼내 펼쳐본다(이직을 한 이후로 독서 습관이 어느 정도 잡혀 출퇴근 시간은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책은 그 유명한 스티브잡스 관련 책이다. 스티브잡스가 살아생전 얘기한 명언들이 쏟아진다. 그중 혁의 원칙  첫 번째로 얘기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명언 하나가 직장인인 나의 눈에 띄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아침이 기다려지는 일을 찾아라."

이 문구를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 괜히 마음 설렌다. 출근길의 지하철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그것도 잠시.

"지이이이잉~"

핸드폰의 알람이 울린다. 문자가 도착다는 알람이다.

최*필님 마이너스대출(3558)의 이자출금일은 2022.08.22입니다.
최*필님의[전세론[주택보증]주택임차(120350*******)]대출납입기일은08월29일,금리3.88% 적용예정입니다.

마음속 스티브잡스의 명언으로 설레었던 마음은 덜컹 가라앉는다. 지하철 안의 공기가 턱 하니 숨통을 죄어오고 막힌다. 

'젠장, 이번에도 통장잔고 마이너스 뜨면 어떡하지? 아내한테 또 한소리 듣게 구나. 이번 주도 초과근무랑 출장이랑 빡세게 해야겠구나.'

워라밸을 찾겠다고 이직을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돈 대신 시간을 선택했다고 자부하던 나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최소한의 월급으로 다섯 식구 입에 풀칠하는 것도 역부족이다. 마흔두 살이나 먹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이루지 못한 거 같아 출근길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졌다. 스티브잡스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다.

"이눔아~ 그러게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라니까!"

"잡스형~ 저도 좋아하는 일 당연히 하고 싶어요. 아침이 기다려지는 일을 찾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하는 일 관두고 좋아하는 일 찾아서 한다고 쳐요. 근데 만약 지금보다 월급이 적으면 어떻게 하죠? 지금도 겨우겨우 먹고사는데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그러니 그렇게 사는 거야! 평생 그렇게 살아라!"

스티브잡스의 명언은 직장을 갖기 전 사회초년생 또는 대학생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애 셋 달린 가장, 직장인인 나는 평생 이렇게 살다 죽어야 한다는 말가? 아니면 현실을 방패 삼아 자기 합리화이며 용기와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인가?

책의 명언과 알림 문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쌍한 직장인이여. 스티브잡스가 얘기한 "좋아하는 일"란 단어에 잠깐 동안만이라도 설레었 기분에 만족할 수밖에.

'~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뭐지? 맞다! 나도 좋아하는 게 있긴 하지~ 그건 바로 독서야!'




오전, 오후

팀장급 진급 발표가 있었다. 인사 발표가 있는 당일은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어수선함, 시끌벅적이 공존한다. 누군가는 축하받고 누군가는 위로마저도 못 받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일 잘하기로 소문난 우리 팀장 진급은 본인도 마찬가지겠지만, 다른 부서 인원들도 따놓은 당상으로 내심 예상하고 있었을 터였다.  당연히 모두에게 축하를 받을 준비를 마치고 모두가 축하를 할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러나저러나 중요한 패가 나올 때는 항상 귀추가 집중되기 마련이다. 드디어 모두가 인사 명령 문서를 확인한다.

어라? 그런데 우리 팀장 이름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지만 마찬가지이다. 갑자기 우리 팀 주변 분위기가 싸해진다. 모두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를 일이지만 그 누구도 입을 떼지 못한다. 만사에 열정이 넘치고 카리스마 넘치던 팀장도 아무 말 없이 사무실을 조용히 나간다.

인사명령. 이것 참 모를 일이다. 실적도 좋고 일 잘하기로 모두가 인정하는 팀장이었지만 이번 진급에는 누락되었다. 직장에서의 인정은 꼭 객관적능력만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닌 게 분명하다. 그다음 날 팀장은 연가를 냈다. 이것저것 일이 밀려있었는데 팀장답지 않은 돌발행위였다. 하루 쉰 다음 날 팀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별 표정 없이 출근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을 보며 탄식과 함께 한마디 내던진다.

"이 일들은 언제쯤 끝나나? 그만두면 끝나려나?"

"아니요. 팀장님. 아마도 죽어야지만 끝나지 않을까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차석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농담을 던진다.

"그래.  말이 맞네. 하하하."

이것은 웃는 것인가, 우는 것인가. 마냥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직장인의 인생이란... 어쩌면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 죽을 때까지 고통의 연속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직장인뿐만이 아닌 보통 사람이 사는 인생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내에서 팀장이나, 차석이나, 나, 신입사원이나,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고달프다. 누군가가 그랬다. 직장이 진짜 힘든 이유는 모두가 나 같은 생각을 하고 어서라고. 너도나도 직장 다니기 짜증 나는 사람들이 모여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라고.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이렇게 직장에 자유롭지 못하고 징징대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제일 크다. 이런 것이 빠져나올 수 없는 숙명의 굴레인 것인가. 가장이라는, 직장인이라는 가면에 종속되어 내 맨 얼굴을 나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을 거 같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눌러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잡스형처럼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떠나야 하는 걸까? 아니면 현재하고 있는 일에 가치부여라도 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하루 24시간 중, 직장생활로 최소 8시간과 이동시간 3시간으로 하루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직장생활이 짜증 나고 힘들다고 징징댈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직장인으로서 할 수 있는 첫 번째 마음 부림이었다.




퇴근

오늘도 직장에서의 하루가 만만치 않았다. 밀려오는 업무와 이해관 계속에서 사람들과의 줄타기는 퇴근시간, 나의 멘탈을 털기에 충분했다.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터벅터벅 지하철에 올랐다. 오늘은 책 읽기고 글쓰기 건 간에 그냥 머리를 기대고 바보처럼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럴 때는 그냥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지하철의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보니 오늘도 어김없이 맹인 안내견이 등장한다. 항상 같은 역에서 타는 그 녀석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다. 비록 동물이지만 인간의 동반자로서 자기 역할에 충실히 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몽글몽글해진다. 그에게 느껴지는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군대에서 느꼈던 다소 전우애 같은 느낌이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측은지심과 동정심과는 차원이 다른 다른 슬픔이 느껴진다. 그의 눈에서 '숙명의 슬픔'이라는 알듯 말듯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맹인 안내견은 개라는 동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인간들로부터 온갖 설움을 받으며, 항상 비하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만큼 동물적 본능을 주체하지 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개'처럼 살아온 그들일 것이다. 그런 동물이 자신의 본능을 자제하고 한 명의 인간의 삶에 들어와 사회적 소명을 수행한다는 것이 살아있는 존재로써 존경심마저 생긴다.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개'답지 않은 의젓함에 슬픔이라는 감정이 우러나오기도 했다.

숙명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리네 직장인의 모습은 흡사 맹인 안내견과의 모습과도 크게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직장인으로서 삶이 맹인 안내견보다 크게 나아 보이지도 않는다. 맹인 안내견처럼 충성스럽지도 못하고 충실하지도 못하다. 우리네 직장인은 숙명이라는 놈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인정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마치 현실이라는 족쇄에 묶여서 족쇄의 열쇠를 손에 꽉 진채 자유를 갈망하는 죄수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직장인으로서 직장인을 죄수로 비유하는 것이 썩 반갑지만은 않지만 직장인들에게 죄를 굳이 씌운다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고 해야만 할 일만 죽어라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테다. 나 역시 여전히 족쇄의 열쇠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 열쇠를 돌리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자기 합리화의 이유일 수도 있다), 나는 아내의 남편이자, 세 딸의 아빠, 한 가족의 가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보살펴야 하고 삶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나는 직장에서 버티고 버텨야 한다. 이것이 나의 숙명이리라(아직까지는).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일 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나는 직장이 짜증 나도 그만둘 수 없는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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