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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로 가는 시냇물 May 25. 2021

집밥 루틴의 힘

코로나 시대 불안을 이기는 방법


나는 요리똥손이다.


친한 친구들에게 '나는 지중해풍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우겨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이게 재료를 먹는 거지 요리냐?' 다. 지중해풍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스테이크를 굽고 생야채에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뿌려 곁들이고, 혹은 토마토에 모짜렐라 치즈를 올리고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뿌려 먹는 것.


그래도 딱히 불편함이나 집밥에 불만은 없었다.  회사 다닐 때는 온갖 맛있는 것을 먹고 다녔고, 학교 다니면서는 학생식당과 주변 식당에서 하루 세끼를 먹었으니. 내가 만든 집밥을 먹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일까. 정말 코로나로 인한 집콕 & 집쿡이 몇 달 이어지기 전까지는 불만이 없었다.  


학생식당 아줌마 손맛이 그립고, 내가 만든 지중해풍 요리가 지겨워 가출을 생각할 즈음인 작년 9월. '목금토 식탁'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가 카카오 프로젝트100에 '1인가구 매일 한끼 집밥먹기' 프로젝트를 개설했다. 그야말로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해, 10-30분이면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올려서 가이드를  주고, 뭐든 그날 먹은 집밥 한끼를 100일동안 인증하고 서로 응원하는 프로젝트였다.


매일 한끼 밥해먹는 게 뭐가 어렵겠냐 싶었지만 인생은 역시 예측불가. 가을에는 윗집 공사 때문에 제주도에도 가 있어서 인증사진을 올리지 못하는 날들도 있고, 대충 때운 날이면 마땅히 집밥이랄 것을 먹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남들은 어떤  것을 해 먹고 사는지 엿보기도  하고, 식탁 위 대화가 그려지기도 하고, 와인 한잔을 곁들여 먹는 사람을 보면 나도 오랜만에 한잔. 그래, 스테이크엔 와인이지 하면서. 점차 내가 차리는 식탁에 대해 마음을 쓰게 되었다.


사실 애초에는, 요리법에 대한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고, 코로나 와중에 타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그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인증사진 너머로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채썰기'가 뭔지 모르는 나보다 심한 요똥손이 열심히 레시피 따라하다 망한 요리를 올리고, 코로나로 등교 못 하는 애들을 돌보느라 지쳐 빵이나 과일로 때우는 사진, 늦은 야근 후 돌아와 간신히 덥혀먹은 죽 한 그릇의 사진. 그들에게 '괜찮아요, 나도 망했어요!' 라던가 '화이팅' 이라던가 '오늘도 수고했어요' 라던가 말을 건네며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패턴을 추구하고 익숙한 루틴화 된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단순히 4계절 사진을 뒤섞어 보여주는 것과 계절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에 차이를 느낀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예측불가한 시기에 뭔가를 꾸준히 남들과 같이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사람의 멘탈을 든든히 잡아준다. '루틴'이 주는 안정감이고 힘이다. 친구의 집밥플젝은 어려운 시기에 내게 따뜻함과 맛있는 밥과 '혹시 나는 요리천재인가?' 하는 의문을 선사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한 끼를 정성껏 차려먹는 습관을 남겼다.  


오늘부터 프로젝트100이  새 시즌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집밥프로젝트가 없어서, 대신 다른 것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100일의 노력 후 습관으로 남기고  싶은 것에.

 


202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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