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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 Nov 16. 2019

"손님, 바닐라 라떼 시키셨지만 아메리카노 드세요."

어른이 된다는 것.

 "손님,  바닐라 라떼 시키셨지만 아메리카노 드세요." 실제로 듣게 된다면 황당해서 컴플레인을 걸어야 하는 소리겠지만, 난 내 인생에서 자유가 바닐라 라떼인줄 알고 시켰지만 아메리카노가 나왔는데도 컴플레인도 못 걸고 마셔야 했다.  


 난 대학교만 들어가면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세상에, 술도 마실 수 있고 뭐든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수업도 , 밥 메뉴도, 자유 시간도.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새로웠다.


 맨날 급식만 먹었던 시절에서 벗어나서 먹는 진정한 '바깥 음식'은 어린 시절에 처음 먹어본 페레로로쉐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충격적 일정도로 달콤했다. 곱창, 돈가스, 핫도그 등 다 급식보다 맛있었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디저트였다.


 특히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 학교 앞에는 2000원에 '바닐라 라떼'를 팔았었는데, 그게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수업 가기 전에 한 잔, 집 갈 때 한 잔 씩 사 먹었다. 거기에 빙수에 케이크까지. 입학한 지 몇 달새에, 살이 한 5kg가량 쪄서 그걸 빼느라 운동에도 돈을 꽤나 썼었다.


내게 처음 제대로 주어진 자유란 그 맛있었던 바닐라 라떼 같은 것이었다. 그저 문제집을 사고, 학원 끝나고 간간히 사 먹던 컵 떡볶이 같은 거에서 벗어나 주어진 용돈 범위 내에서 사 먹었던 그 2000원짜리 바닐라 라떼 같은 것 말이다.


 처음에는 그 2000원을 내고 바닐라 라떼를 사 먹을 때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디저트 같은 거에 2000원이나 써도 되나?'와 같은 생각 말이다. 사실 하루에 두 잔씩 먹었으니 4000원이나 쓰는 격이어서 더 그랬다. 하지만 불안함도 잠시 그것은 너무 달았다.


 그게 내가 처음 맛본 성인으로 주어지는 자유의 맛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짜야했던 수강신청도, 동아리도 다 불안했지만 그건 짧았고 그 맛은 달콤했다.


 초콜릿 음료만큼 달기만 하기에는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아메리카노처럼 쓰지만은 않은,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그러나, 그 달콤했던 자유는 2년 뒤에 내 진로의 선택을 기점으로 5kg의 지방 같은 무겁기만 한 것으로 남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뭘까?'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둘리가 아니라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그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난 그 말에 지금은 동감한다.


 고길동이 성인으로 책임져야 하는 그 삶의 무게가 이제는 '그래도 자유는 바닐라 라떼만큼 달콤한 걸!'하고 넘겨버리기에는 저울추가 '책임'에 너무 기울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걸 더 상세히 풀어보자면 그런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삶의 무게가 무거움을 알아버리는 것.


  난 내 전공이 너무 좋았다. 밤을 새우던 것도 힘들었지만, 알아가는 것이 더 즐거웠고 달콤했다. 심지어 학점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내 전공으로 밥 벌어먹는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 때 선택한 그 길에서 내 자유는 바닐라 라떼에서 아메리카노로 바뀔 그 위대한 시작을 하고 있었다.




  난 미래에 대해 그래도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짧았다. 내가 천부적으로 이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니, 생각을 해봐라. 그 과가 좋아서 들어오게 되었고, 학점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다니! 그래서 앞 뒤 길게 안재고 시험의 판에 뛰어들었다.


 노력과 열정이 있다면 못해낼 게 없다는 생각으로 파워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고, 어렸으며, 뭐 못하면 '한번 더 도전하면 된다!'와 같은 그런 생각들로 난 원래 준비하려던 공무원 학원을 한 달 만에 그만두고 그 다른 시험판으로 겁 없이 뛰어들었다.  내가 택한 길이 잘 다져진 하나뿐인 도로처럼 느껴졌으니깐.  그래서, 그때까지 내게 자유란 달콤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선택의 무게가 어떨지 몰랐다.


 첫해에는 두 달 공부한 것 치고는 딱 평균 점수가 나왔었다. 상관없었다. 지방으로 내려갈 생각도 안 했다. 두 달 공부했는데 이 정도면 더 높은 곳을 바라봐도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때가 내 바닐라 라떼가 아메리카노로 바뀌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내 점수로는 택도 없던 높은 곳에 딱 하나 지원하고 면접에서 낙방했던 그 해에 아직 내 자유는 조금 덜 단 바닐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달달했다. '뭐 제대로 준비한 거 아니었잖아~'와 같은 합리화가 가능했으니깐.


 그다음 해에는 학원 같은 것 필요 없다면서 스터디를 꾸려서 공부를 시작했다. 뭐 나름 열심히 했었다. 이제 학교 수업을 들을 일도 없었고, 거의 하루의 모두를 시험에 투자했다. 근데 점수는 첫해에 봤던 것보다 더 떨어져서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좌절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는 있었다. 따져보면 제대로 준비한지는 이번 1년이 처음이었으니깐, 내년에 더 열심히 도전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몇 달간 다독여서 그다음 해에 다시 도전을 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 도전에서 난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내 모든 걸 투자한 1년이었고, 내 직업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던 그 결과의 성적표가 내 노력을 비웃었다. 아니, 노력이라는 게 매번 보답을 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결과는 나와야 하지 않는가. 근데, 그 해의 내 노력의 성적표는 반의 반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내 1년의 노력이 1/4 토막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내 자유는 한순간에 아메리카노, 아니 에스프레소가 되었다. 밤마다 남몰래 울었다. 고작 시험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결과가 너무 처참했다. 내 자존감이 바닥 끝까지 내려졌다.




 그렇게 노력이 1/4도 안 되는 결과로 돌아왔을 때, 난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우울해하는 그런 나 자체가 싫었다. 뭘 잘했다고 우울해하는지, 그까짓 시험이 일생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몰아세웠고 낮에는 웃다가도 밤마다 울곤 했다.  과거의 과거로 돌아가다 보니, 일생을 잘 못 선택한 것 같았다. 전공을 선택한 과거의 내가 싫어졌다. 내 길은 이 길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스펙도, 그 흔한 아르바이트도 안 하고 달려왔었다. 주변에 취업을 대비하는 동기들을 보며 불안해졌지만, 내가 가진 역량과 열정을 믿고 버텼다. 그래서 충분할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난 취직이라는 게, 내 역량과 꿈과 가치관을 다 때려 부어서 하나의 정화되는 결과로 나오는 여과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으리라라고 장담했었다. 남들처럼 세세한 조약돌로 여과기에 넣지 않아도, 난 열정이 있고 그 꿈을 사랑했으니 남들보다 더 공부하는 그 길에 서있다 생각했다.


 내 가치가 세세한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도 다소 투박하지만 다소 허술한 거름망을 거쳐도 정제되어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했었으니깐. 3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다짐으로 노력했으니깐.


 하지만 난 내 꿈을 이루기에는 , 내 노력을 보답받기에는 부족했다. 애초부터 잘 다듬어진 정제된 물 같은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세세하게 내 가치가 결과로 나올 만큼 조약돌 같은 역량을 가지지도 못했다.


 그걸 노력이라는 명목 하에 잘 거르고 걸러서 꿈을 이루고 싶었지만, 실패했었다. 이걸 인정하기까지 참 힘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것 같았다.


 내가 그리 엄청나게 대단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 말이다. 내가 엄청나게 노력해도 걸러지는 건 고작 넣은 것에서 양만 토막 난 몇 방울의 물 같은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힘들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그리 대단치 않다는 걸 깨달으니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이 변변치 않은 어른이라는 걸 인정하니깐, 내가 가진 현실과 나아가야 하는 길 그 사이가 명확해졌다. 이건 나중에 더 얘기해야겠지만, 난 이 실패 속에서 내 위치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 바닐라 라떼 같은 자유와 그로 인해 생기는 순전히 나의 몫인 결과물에서 그 자유가 우유와 시럽을 타서 달아 보였던 것일 뿐 사실은 달지 않은 아메리카노 같은 것인 걸 깨달아 버린 그 순간에 난 어른이 되었다. 


 내가 달달하다고 느껴서 시킨 바닐라 라떼지만, 아메리카노가 나와도 원래 내가 아메리카노를 시킨 것임을 깨닫고 겸허히 받아드리게 되는 그 순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 어른이 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난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겪는 실패와 어려운 인간관계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 어려움에서 한 나름의 생각 끝을 적어나갈 것이다.


" 내가 실패했는데, 지금은 다 괜찮아졌어. 그러니깐 너도 나도 나중에는 다 괜찮을 거야." 같은 끝이 아니라 여전히 힘들고 불안한 한 사람의 생각의 끝에서 아주 작은 위로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내가 수없이 밤마다 울었던 그 밤들에서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나도 그랬는데, 뭐 지금 딱히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와 같은 것이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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