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셋 Nov 19. 2019

사주, 그래서 제 미래는요?  

내가 사주를 보는 이유


 미안한데, 너는 진짜 이 길은 안 되겠다.


 내가 가장 최근에 보러 간 사주에서 들은 말이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 다 잘 될 거야." 라고 들었던 무수히 많은 사주 집에서 한 얘기보다 이게 제일 속 시원했다.


 세 번째 시험을 보고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뒤에, 나는 다른 길을 가보기로 선택했다. 난 '내가 처음에 선택한 길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수많은 직업 중에서 그 길을 선택하면 평생 업(業)으로 삼으면 행복하겠다. '라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데, 난 완전히 그 길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어렸을 때 '포켓몬스터 빵'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때 난 정말로 피카츄가 가지고 싶어서 그 맛없는 빵을 꾸역꾸역 사 먹었었다. 잘 먹지도 않을 빵을 왜 자꾸 사달라고 하냐는 엄마의 가끔 가다 있는 핀잔을 들어가며 말이다.


 그걸 가지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서 그 맛없는 빵을 어렸을 때 참아가며 먹었지만, 결국 피카츄는 나오지 않았었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꿈이 전혀 손에 닿지 않는다는 게 딱 그때의 기분 같았다. 정말로 가지고 싶고 열망해서 정말로 노력했지만, 결국 운에 달린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난 이 길이 아니라고, 뽑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그 피카츄를 뽑지 못하고 사 먹기를 어느 순간 하지 않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난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이 길에 꽤나 재능이 없음을. 내가 열심히 바라고 노력하며 뽑아도 뽑기가 되지 않음을 인정했다. 누구나 그 뽑기를 뽑을 때는 당첨을 바라고 뽑겠지만, 내가 뽑은 그 판의 뽑기는 늘 꽝이었다. 뽑아서 계속 꽝이 나온다면, 그 뽑기판을 옮겨야 하는 게 맞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나약해서 자꾸 미련이 남았다. 그리고 새로 선택하는 길이 두려웠다. 또 실패할까 봐. 자꾸 꽝만 몇 년째 뽑아댔더니 새로운 뽑기 선택하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난 어느 뽑기를 뽑아도 꽝이 나올 것 같아서. 그리고 포기한 그 길에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친구와 시험이 끝난 뒤 참 많이도 사주를 보러 다녔다. 세 번 정도 본 것 같다. 처음과 두 번째 본 사주 집에서는 내년에 한번 더 도전해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새로 선택한 길은 맞지 않는 다며 한다면 경찰을 도전해보라고 했다.


 참 좋은 소리였다. 나쁠 것 없는 소리였다. 내년에 다시 도전하며 될 수도 있다고 하고 경찰이라는 직업도 정말 내가 가지기에는 벅차고 훌륭한 것이었니깐. 근데도 마음이 찝찝했다. 그래서 또 사주를 보러 갔다.


 세 번째로 보러 간 사주에서는 내 생년월일을 적더니, 처음에 꺼낸 말이 " 미안한데, 너 원래 준비하던 시험 그거는 넌 절대로 안 되겠다."였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오히려 시원했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나는 그 전에도 사주를 참 많이 보곤 했었다. 내 미래가 불안해서, 내 시험이 어떨지 그 미래를 살짝 들춰보고 싶어서. 그러면 반응을 대게 두 가지였다. 어떤 카드가 나오던 그냥 잘 될 것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게 아니면 잘 안 될 것 같아도 내가 간절히 원하니 된다고 하는 사람. 결국 늘 듣는 답은 "잘 될 거야. 이번에는" 이었다. 난 그 소리를 들으러 불안할 때마다 사주를 보러 갔었다. 내가 다음 뽑기에는 결과가 잘 될 거라는 그 응원이 듣고 싶어서.


 근데 시험이 다 끝나고 새로운 갈림길에 섰을 때는 그런 말이 별로였다. '다음 기회에' 라는 결론을 내놓는 게 전혀 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확실하게 '이 길이 아니다.' 아니면 '이 길이 맞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게 나약한 마음임을 알면서도. 그래서 차라리 안 된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게 좋았다. 그 전 것은 깨끗하게 청산하고 새로운 판을 열어볼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한동안 기사에도, 그리고 가끔 뉴스에도 뜨고는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미신에 기대면서 사주나 타로를 보러 간다고. 그게 불안한 젊은 사람들의 심리 때문인 것 같다고.


 난 이 말에 동의한다. 승승장구하고 손만 되면 잘 되는 사람들은 사주를 잘 보러 가지 않는다.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이 가는 비율이 대다수이니, 어느 곳에 가도 '요새 힘들지.'라는 말로 시작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를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사주를 보러 가는 이유는, 불안해서이다.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는 그게 뭐가 되었던 '잘 될 거야.' 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이다. 처음에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기어코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감사하다며 일어서니 말이다.


 아니면, 내가 새로운 길을 선택하려는 데 이 길이 맞다고 과거는 돌아보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가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러나저러나 불안한 내 심리를 가라앉히고 내가 선택한 게 맞다고, 이번에 열어볼 뽑기의 결과는 '당첨'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가는 것이다.


 미신이니 뭐니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믿고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본 수많은 타로와 사주는 다를 때가 훨씬 많았다. 적어도 80%는 틀린 셈이었다.


 사실 미래가 다 정해져 있다면 인간이 노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건데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태어날 때 타고나기를 운이 좋아서 각자의 출발점의 위치가 다를 지라도 노력해서 걸어간다면 어느 정도는 바뀌어야 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주를 보러 갈 때, 나는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다고 생각하며 간다. 정신의학과에 진료를 받자니 무섭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아가기에는 두려울 때  간다. 효과는 아주 좋다. 그게 진실일지 아닐지는 결국 마지막까지 가봐야 하겠지만, 그 어떤 것보다 당장의 심리 효과는 뛰어나다.


 내가 어떤 말을 하면 힘들었겠다며 위로해주고, 내 미래가 어떨지 물어보면 보이는 게 어떠하던 결국은 좋은 쪽으로 해석해서 말씀을 해주신다. 그러면 또 그 말을 듣고 잠시 불안한 생각은 접어두고 다시 나아가고는 한다.


 사주를 장려하는 것도, 미래가 꼭 정해져 있다고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사주를 보러 가는 이유는 당장의 불안함을 잠재우고 내가 선택한 길이 맞다고 자신감을 가지고 그래서 더 현재에 집중하는 효과를 갖고 싶어서였다.


 결국 사람들이 사주를 보러 가는 이유도 다 같은 이유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 미래는요?" 라는 질문에 나를 다독여주고, 좋은 그 얘기를 듣고 싶어서.  그러니깐, 혹여 가서 안 좋은 소리를 듣으면 그냥 흘러 보내고 좋은 소리를 들으면 그걸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정해진 미래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고 해도 당장의 위안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너무 얽매이거나 너무 자주 보러 가면 안 좋겠지만, 아주 가끔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서 사람들은 사주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원하는 대답을 얻었거나 아니면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다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또 충실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좋은 말만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작가의 이전글  죄책감을 줄이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