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 진 Nov 16. 2022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낄 때,

공황장애 치유의 시작, 00이 중요하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광장공포증, 피해망상증 등 


5월의 사건 이후, 나는 몇 달 동안 많은 약에 취해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


단지, 한 순간의 고통만 참으면 너무나 편안한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죽음에 대한 욕구를 겨우 참고 있었다는 것만 분명히 기억한다.


매일 매일 악몽을 꾸면서도 살이 쭉쭉 빠져가면서도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던 날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긴 시간을 약에 취해 잠을 자며, 


좀비처럼 숨만 쉬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병가를 내고 아픈 동안에도 학교에서는 여러 차례 업무관련 연락을 받아야 했고 나의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혼자서 육아와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던 남편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세탁실 문에 발가락이 끼어 부러지고 발톱이 잘리고 살이 심하게 찢어진 것이다.


남편이 다치는 순간에도 나는 방에서 자고 있다가 


큰 아이가 아빠가 피를 많이 흘린다고


 울면서 나에게 찾아와서야 


겨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움직였다.




생각보다 상처가 너무 심했다. 당장 꼬매야 할 것 같은데 발톱이 애매하게 들뜨고 잘려나갔다. 우선 동네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붕대를 감고 반깁스를 한 후 집에 왔다.




공황장애로 인해 광장공포증이 생긴 나는


외출이 많이 힘든 상태였지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남편을 혼자 병원에 보낼  수 없는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외출을 해야 했다.


그런데, 12시간이 지나도록 피가 멈추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발톱때문에 꼬매기 애매하다고 붕대를 감아 주었었는데, 피는 붕대를 흠뻑적시고 단단한 깁스 밖까지 세어나오고 있었다.




눈앞에서 어린 아이들과 피흘리는 남편을 보고


지금 내가 이렇게 멍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떠올랐다.


아픈 이후로 어떤 이유에선지 운전이 두려워져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되었던 나는,


시속 30km로 비상등을 깜박이며 응급실로 남편을 데리고 갔다.




그런데, 


이 사건이 바로 내 병의 전환점이 되었다.





남편에게만 의지하고 있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의 전환, 관점의 변화.


당장 다음날 부터 걷지 못하는 남편으로 인해 아이들의 등하원을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그렇게 운전도 못하고 집밖에 나가지도 못해 


우울증이 심하게 온 내가


이렇게 상황이 닥치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내 남편과 아이들이, 




내 가족이 나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리고 내 희미한 기억 속에 남은 그 시절의 나는 


내친구의 블로그에 기록 되어있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같이 아파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이대로는 안되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