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 진 Nov 26. 2022

"손을 씻으면 00에 더 좋아요"

쓸데없는 거에 신경 쓰지 좀 말고

쓸데없는 거에 신경 쓰지 좀 마!
그런 거 상관없으니까, 그냥 빨리 해!
연말이잖아,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야.



툭 내뱉는 말에 가슴 한편에서 '지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부장에게 한 소리 듣고 자리로 돌아오면, 자기 비난이 시작된다. 


'내가 또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시간이 더 오래 걸릴 텐데... 어떻게 빨리 해서 내지? 나 때문에 일이 늦어지면 안 되는데...'


이런 내면의 비판자에 신경 쓰느라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는 실체적 손실보다 더 큰 정서적 손실이 발생한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굶는 게 낫겠다. 늦어진 속도만큼 일도 빠르게 처리하기도 해야지만, 좀처럼 신경이 쓰여 속으로 끙끙 앓다 보면 소화가 안되기 일쑤다. 아무래도 나는 부장님의 말보다 스스로에게 주는 스트레스로 더 힘든 사람이다. 


자기 비난을 하는 동시에 일도 대충 처리하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누군가는 '완벽주의'라고 이야기해서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대충 일처리를 했을 때... 집에 돌아가서도 한참이나 머릿속은 업무로 가득 차 있는다. 


'이렇게 해도 되나? 너무 대충 한 거 아닌가? 내일 결제 회수하고 다시 올려야 하지 않을까?'


나는 퇴근 후에도 회사에 접속된 채 로그아웃이 잘 안 되는 사람이다. 


'혹시 업무상 실수는 없었을까, 아까 박 대리님이 한 말에 제대로 맞장구 쳐주지 않았는데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일 뿐만 아니라 관계에서까지 하나하나 집에서 곱씹기 때문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그런 내 패턴을 잘 알기 때문에 차라리 일처리 속도가 느리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낫다. 

그게 누군가가 보기에는 쓸데없는 짓이라 하더라도.


'줄 바꿈 위치가 딱 맞으면 보기도 좋고 기분도 좋아.'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잖아. 내가 일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어떤 평가에서도 드러나지 않고, 다른 사람 눈에는 답답해 보이는 사소한 문서작성이라도 나는 내가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가 중요하다. 집에 돌아가서도 두고두고 내가 처리한 일의 부족한 부분이 나를 둥둥 따라다니느니, 차라리 일을 더 오래 하더라도 마음이 편한 게 낫다.


예민한 나는 마음에 조금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바로 몸에 탈이 나기 때문에, 내 몸과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촘촘하게 일을 처리하는 편이다. 그게 나에게 맞는 정답이다.



쓸데없이 꼼꼼하게 일을 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업무에 써야 한다. 

바보 같은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점심시간마저도 일하는 데 사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 때문에 팀 전체에 피해를 줄 수는 없으니까...'



이렇듯 내 나름의 명확한 이유가 있으니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의미 있진 않을까...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치지 않는다면, 나만의 기준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까.






내가 가진 쓸데없이 시간을 죽이는 습관은 문서의 깔끔한 줄 맞춤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나는 '결벽증'처럼 손을 자주 씻고 핸드크림을 꼭 발라준다.

일하다가 막힐 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거품을 가득 내어 손을 씻는다. 


손을 부드럽게 감싸는 거품,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하루 종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


"쏴아~"


거품이 물에 씻겨 내려갈 때는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귀에 들리는 물소리, 눈앞에서 깨끗해진 손에 집중하고 있으면 조금 전까지 탁했던 머릿속이 맑아진다. 


며칠 전, 명상 선생님께서 이런 것도 감각 모드에 집중하는 명상의 한 종류라고 하셨다. 

손을 닦은 후, 마음이 편안해지는 핸드크림의 향기를 맡으면, 10시간이라도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결 기분이 나아진 내 상태'를 알아차리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빨리 일을 해야 하는데, '이러는 동안 시간은 더 흘러가잖아'라는 걱정보다 오히려 일의 능률을 높여주는 자기 돌봄 방법이다. 


어찌할지를 몰라서 안절부절못하며 '내가 또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처음부터 쓸데없는 작업까지 나는 내 업무에 포함시켜버린다.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머리도 손도 내 업무에 따라 거침없이 움직일 테니, 

총 수행 시간을 보면 오히려 일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처음부터 일을 할 때, 내가 집착하는 부분에 드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된다. 


약간의 강박과 약간의 결벽으로 남보다 예민한 사람은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도록 

업무처리 방식에서도 나만의 기준을 세워두는 것이 좋다. 


결과적으로 나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방식이 업무의 효율성도 높여줄 테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