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함께 써야 할까
1. 처음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을 때에는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고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고, 경험의 한계는 결국 사유의 한계로 이어졌다. 내 글은 자기 복제를 할 뿐,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고인 물이 된 '나의 언어'가 또 다른 표현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타자의 경험과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2. 혼자서 글쓰기를 하다 보면, 자신의 글 습관이 보이지 않는다.
부사, 형용사를 남발하는 경우, '그리고, 그러나'와 같은 접속사가 필요 이상으로 쓰이는 경우, 익숙한 단어를 자주 꺼내 쓰는 경우 등.
비슷한 예로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말 습관이 들린다. "아...", "인제...", "음..."이라는 불필요한 소리가 들어가는데, 글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은 모두 알아차리지만 정작 본인은 가장 늦게 알아차리게 되는 부분이 바로 익숙해져 버린 글 습관이다. 이 부분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합평'이다. 타인의 시선을 통한 객관적인 피드백을 통한 퇴고의 과정이 없다면, 글은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다.
3.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면에 쌓인 이야기를 토해내다 보면,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아픔이 되어 혼란스럽고 힘겨운 순간이 찾아온다. 글쓰기는 더 이상 즐겁지 않고 고통스러운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시간이 흐른다고, 글로 적는다고 하여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때는 나에게 선택을 고민할 힘조차 없었다면, 지금은 선택권이 나에게 있음을 알아차린다.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이 고통을 또 덮어두고 회피할지, 이제라도 마주할지.
마주하기가 지금도 버겁고 힘들다면, 다음으로 미루어도 좋다. 이제는 직면할 힘이 생겼다면, 글로 풀어내보자. 덩어리로 뭉쳐진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듯 납작하게 억압했던 나의 목소리를 활자로 펼쳐 써 보자. 어렵게 써 내려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 주고 토닥여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몸부림치던 그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
집단 상담이 있듯이,
상담활동을 하는 힐러 분들도 슈퍼비전을 받듯이,
치유의 과정에서 "함께"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동적 사고, 편견, 인지 오류를 손가락질하지 않고 오롯이 품어주는 공동체.
그리고 글을 쓰고 사유하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아진다면... 다시 숨 쉬는 법을 배우고 살만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돌보는 여백을 선물하고 싶다면,
지금 글쓰기를 시작해보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과 다른 사람과의 연결,
그리고 다른 문제 해결 방법을 통해
불현듯 떠오르며 숨 막히게 하는 내면아이를
잘 흘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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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고민에서 시작한 치유의 글쓰기가
바로 <그저 작가>이다.
https://blog.naver.com/healerjin04/223008436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