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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Mar 12. 2024

초등자녀가 수술 시작 직전 엄마에게 건넨 말

수술해야 합니다


"마취 시작합니다!"




수술실 특유의 냉기 속 정적이 흐르는 공간, 

수술도구를 정돈하는 분주한 사람들 틈으로 마취 선생님의 목소리가 퍼진다.



 "엄마, 약 들어가고 있어?"

 "응, 엄마가 안 아프다고 했지? 원래 수액주사 맞은 선에 연결해서 마취약 들어가서 그래."

 "엄마, 뭔가 느낌이 이상해..."



"조금 뻐근할 수 있어요."

아이의 말을 들은 마취과선생님께서 설명해주신다.



 "맞아. 수액 말고 다른 약이 들어가니까 그 느낌이 ..."

 "엄마, 사랑해."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불쑥 털어놓았다.


 "엄마 사랑해? 엄.마.도. 슬.비. 사.랑.해..."


아랫배에서부터 뜨거운 피가 올라오는 느낌에, 한마디 한마디 끊으며 아이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 마취약이 모두 들어간 지 4초도 지나지 않았을 때, 아이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스... 르... 륵.....




수술 시작 직전, 수술 내용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이 멀리 배경으로 물러난 듯 현실감이 없다. 전경에는 아이와 나, 마치 우리 둘만 수술실에 있는 것처럼, 아이의 눈꺼풀이 닫히며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 슬로우모션처럼 떠오른다. 

첫 수술, 그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이의 고백에 먹먹한 감정을 몰려왔다. 



 "보호자분 회복실 앞으로 이동해 주세요."

 "네!"



병실에서 수술실까지 이동을 담당해 주신 Y 선생님께서 나 대신 씩씩하게 대답한다. 수술 준비로 바쁜 의료진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머릿속이 새하얗다.


수많은 단어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겨우 한 마디를 골랐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허리를 굽혀 엉거주춤 인사를 드리며 수술실을 나섰다.






울컥.


"엄마 수술받기 싫어. 수술 싫어. 무서워..."

수술 대기실에서 울먹이는 아이 앞에서 별일 아닌 듯 담담하게 위로했지만, 사실 엄마도 두렵기는 마찬가지. 수술실실을 나서며 눈물이 쏟아지는 것까지 눌러놓을 수는 없었다.



 "소아환자 보호자분들은 수술실 나서면 다들 눈물을 보이시곤 해요."



Y 선생님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일인 듯 빠른 걸음을 그대로 유지한 채 말씀하신다. 아이가 금식을 하며 같이 굶고 종일 긴장상태였던 내 몸은 Y 선생님의 걸음을 따라잡느라 애를 쓴다. 




수술 마치고 회복실에서... 아이의 최애 '아이브' 포카를 손에 꼭 쥐여 주었다.








아이는 2022년 10월 무릎을 다쳤다. 

물이 차고 퉁퉁 부은 다리로 병원에 갔을 때 의사선생님께서는 엑스레이상 문제는 없어보이지만 소아환자는 성장판이 다쳤을 수 있다는 미세골절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네?"

"교통사고 난 것도 아니고, 높은 데서 떨어진 것도 아니니 괜찮을 거예요."


너무 놀라 뜸을 들이며 되묻는 나를 의사선생님은 오히려 안심시키셨다. 이어서 성장판 손상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6개월에서 1년의 기간이 걸린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변형이 되었을 때 판단 한다고 하셨다. 


당장 큰병원에 가야하나 불안했지만, 무릎이 아프다며 엉엉 울고 있는 아이를 안정시키는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워낙 겁이 많고 얌전한데다 심지어 신체활동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운동장에서 미끄러진 것만으로 성장판이 골절됐을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많은 것을 판단하지 않는가. 

말괄량이 골목대장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 무릎에 딱지가 마를 날 없던 나도 이렇게 건강하게 자랐으니 아이도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다리에 부목을 하고 걷지 못하는 아이를 웨건(육아승용기구)에 태우고 달달한 초코라떼를 마시러갔다. 우리 아이의 눈물을 그치게 하는데에는 초코라떼가 최고의 명약이니까. 



'설마... 아닐거야....며칠 조심하고 통증이 가라앉으면 괜찮겠지...'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자는 평소 습관대로 나의 사고는 흘러갔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삶은 예상을 벗어나곤 한다. 

다리를 다친 후 6개월을 꽉 채운, 지난 5월.

무릎을 다친 뒤로 계속 통증을 호소한 아이가 다니던 병원에서는 성장판 손상으로 X자 다리(외반 변형)가 되었다며 상급병원에 가보라고 의뢰서를 써주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심장이 뛰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미친 듯이 병원을 검색하고 예약을 해보지만, 빅5병원은 한 달 이상은 대기를 해야 한다. 급한마음에 살고 있는 지역에서 소아정형외과 전문의가 가장 많이 근무하는 2차 병원을 선택하여 예약하였지만, 역시 2주를 기다려야 한단다. 얌전한 편인 두 아이를 키웠기때문에 소아 골절 환자가 이렇게 많은 줄 전혀 알 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환자가 많은게아니라 소아정형외과 의사가 부족한 것이다.)



신체활동이 훨씬 더 많은 큰아들도 중학생이 되도록 골절 한번 된 적 없으니, 또래에 비해 얌전한 여자아이인 둘째가 성장판이 골절될 거라고는 믿고싶지 않았다. 






2주를 기다려 2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내 간절함과 달리, 소아정형외과 전문의에게 들은 소견은 사진과 같다. 우리 아이는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이미 성장판 골절의 후유증으로 허벅지 뼈가 자라지 않고 있었고(당시 1cm 이상 양쪽 허벅지 길이 차이 남), 그 영향으로 외반 변형이라는 X자 다리가 다친 다리에서만 나타나고 있었다.



"성장판 유합절제술(골교절제술), 성장판 고정술을 진행해야 하지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서울대 병원에 가보세요."



긴 설명이 오갔지만 결국 수술하기 너무 어려운 부위였고, 서울대병원에서도 수술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진료의뢰서를 받아들고 망연자실했다. 서울대병원은 이미 예약했지만, 5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하지 부동 성장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는 그대로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길 바라는 엄마,17년 공교육 교사, 심리상담사, 학습 코치의 관점에서 본 회복 일상을 시리즈로 발행합니다.    -힐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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