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자영업 사용법
자영업 폐업률이 사상 최악이라고 한다. 자영업자들은 넘쳐나는 유사업종과의 경쟁, 침체된 경기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예능에서는 대세였던 요리 방송을 지나 외식업 창업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연예인들이 일시적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실제 영세 자영업자들을 방송에 등장시킨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으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하 <골목식당>)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골목식당>에는 실제 자영업자들이 등장한다. 골목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백종원에게 매출을 올리기 위한 조언을 받아 상권을 살리게 만드는 것이 <골목식당>의 취지이다. 하지만 <골목식당>은 그보다는 시청자들의 이목을 잡아끌기 위해 자영업을 '이용'한 측면이 강하다. 자영업과 상인들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영업을 소재로 삼았다. 이 글에서는 <골목식당>이 자영업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살펴보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미다스의 손 백종원, 그의 황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골목식당>은 죽어가는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백종원이 매출이 좋지 않은 골목의 식당들을 찾아가 문제점을 진단해주고, 솔루션을 제공해준다. 과연 <골목식당>은 진정으로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일까? 다음의 이유들로 인해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백종원이라는 존재의 아이러니이다.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의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다. 이미 수많은 외식업 브랜드를 성공시킨 그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군림한다. 그의 취향은 대중을 대변하는 것이 되며, 그의 말이 곧 법이고 해결책이다. 하지만 작은 상권을 살리겠다고 나서는 백종원은 현실에서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영세업자들을 폐업하게 만들기도 한다. 많은 방송에 출연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것도 그의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수많은 방송에 출연하며 ‘신뢰할 수 있는 요리 전문가’ 이미지를 쌓았고, 최근 꾸준히 성행하고 있는 일명 백종원 레시피는 그의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요즘 ‘백종원 거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카페, 중국요리점, 고깃집, 포차 등 그가 하지 않는 사업을 찾기가 힘들어 몇 발자국만 내딛으면 어디에서나 그의 가게가 보이는 거리를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백종원 가맹점들은 싼 가격과 백종원이라는 스타 효과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가격 경쟁과 인지도에서 밀린 주변 상권들은 자연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골목식당>은 부적격한 상인들을 출연시켜 상권의 실패에 대한 비난을 상인들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 <골목식당>에 출연하는 소상인들의 대부분은 식당을 하기에 자격이 없다. 식당을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위생 관념은 찾아볼 수 없고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며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자존심을 챙기기에 바쁘다. 자영업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진지하지 못하고 장난스럽다. 정말 골목상권을 부흥시키기 위한 취지의 프로그램이라면 절실하고 준비된 상인들을 섭외하는 것이 맞다. 음식은 흠 잡을 데 없지만 경영이나 마케팅과 같은 식당 운영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만을 백종원에게 조언을 받아야 이상적이다. 분명 찾아보면 백종원 같은 전문가의 한마디 조언이 절실한 준비된 상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준비되지 않은 상인들을 매번 캐스팅한다. 음식에 대한 매우 기본적인 것까지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따르게 되고, 자연히 시청자들은 상인들에게 등을 돌린다. 방송이 끝나면 상인들에 대한 악플에 가까운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진다. 간혹 제대로 된 상인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자극적인 것에 집중하는 대중의 특성상 화제성은 준비가 안 된 상인들이 독차지한다. 이는 애초 <골목식당>이 추구했던 방송의 취지가 잘 실현되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
문제 식당이 백종원으로 인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백종원의 영웅화에 기여한다. 이미 대중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백종원과 상인들의 갈등은 시청자로 하여금 주인공인 영세상인이 아니라 백종원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든다. 따라서 갈등을 일으키던 식당이 후에 장사가 잘되면 ‘골목상권이 부활해서 다행이다’가 아닌 ‘저 집은 장사가 잘될 자격이 없는데 백종원이 살려준 것이다’라는 식의 인식이 싹트게 된다. <골목식당>을 보고 있으면 실질적으로 주목받는 쪽은 상인들과 골목 상권이 아니라 ‘문제 있는 식당까지 성공시키고 마는 미다스의 손’ 백종원이다. 결국, 이 프로그램으로 장기적인 이익을 얻는 쪽은 <골목식당>과 백종원이라고 할 수 있다. 상인들이 더 자극적인 모습으로 나올수록 <골목식당>은 더 흥행할 것이며 백종원은 이로 인한 스타 효과로 자신의 사업에 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예능을 예능으로만 볼 수 없기에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예능을 예능으로만 보고 웃어넘길 수 없는 것일까. TV 프로그램은 단지 네모난 상자 안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것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구성하는 한 미디어의 내용은 완전히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제작진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자신의 가치관을 프로그램에 투영하게 된다. 그리고 TV는 매우 강력한 매체여서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제작진이 투영한 가치관은 TV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
<신서유기>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강식당>은 연예인 출연진이 제주도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대한 내용이다. 식당의 메인 메뉴인 왕돈가스의 가격을 정하는 과정에서 논쟁이 벌어졌었다. 이벤트성으로 하는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만큼 가격을 높이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측과 현재 시장의 시세에 맞춘 가격으로 해야 한다는 이수근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이 다른 왕돈가스의 가격과 강식당의 가격을 비교하게 될 수 있으니 너무 싸면 곤란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방송을 만드는 제작진이 가져야 하는 태도이다. 방송이 전파를 타게 되면 제작진이 프로그램에 투영하려 한 의도들이 은연중에 시청자들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제작진은 자신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프로그램으로 인해 대변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이제 방송은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예능을 마냥 유쾌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이다. 시청률이나 화제성 외에도 방송이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