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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으로 Jul 23. 2024

엄마, 한 달 동안 연락 안 해서 미안해

엄마가 그리우면 부활동산에 갑니다.

 꿈속이다.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엄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아! 엄마는 이제 올 수 없지.’ 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먹먹하다. 큰 소리를 내어 울고 싶은데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꿈이 깨자 마음껏 소리 내어 울었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후 집에 오면 엄마는 거의 마실을 가고 없었다. 나는 가방을 벗어던지고 골목마다 엄마를 찾아다녔다. 엄마의 친구들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시끌벅적한 목소리들과 웃음이 뒤섞여 화음을 이룬다. 들어가 보면 서너 명이 옹기종기 모여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나 고구마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깔깔대며 웃는 엄마의 목소리는 참 좋았다. 무릎을 베고 누워있으면 그 시간들이 포근했다.


 가끔은 이 골목 저 골목 찾아다녀도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는 너털너털  집으로 돌아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엄마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자리였다. 하루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았던 모양이다. 그대로 고꾸라져 크게 다친 기억이 있다. 엄마는 내가 사춘기 때 말을 안 들으면 옥상에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친 게 분명하다며 한숨을 쉬셨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을 때면 이제 15분 거리에 있는 부활동산으로 간다. 3년 전에 교회에서 나포에 땅을 매입하고 그곳에 수목장을 만들었다. 사시사철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곳이다. 동산의 남쪽에는 망해산이 웅장하게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맞은편에는 금강이 유유히 흐른다. 엄마는 7번째 수목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우리 교회는 특별한 날마다 부활동산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날은 사순절(부활절 40일 전) 마지막 예배였다. 40일간의 새벽기도가 끝나 마치 축제장 같은 분위기였다. 새벽예배 후 그동안 서로 수고했다며 덕담도 나눴다. 끝나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콩떡을 받았다. 노르스름한 게 참 먹음직스러웠다. 떡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엄마가 떠올랐다. 사순절 끝나고 받은 떡이라서 상장처럼 뿌듯했고 빨리 가져다 드리고 싶었다.


 한달음에 친정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부모님은 주무시고 계셨다. 새벽이라 깨우기도 그래서 식탁 위에 예쁘게 놓고 나왔다. 당연히 엄마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뿌듯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 이 떡 뭐야?”

엄마는 서릿발처럼 목소리가 날카롭게 서있었다.

“ 오늘 부활동산에서 새벽예배 드렸잖아. 사순절 마지막 날이라고 교회에서 주었지.”

엄마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지만 화가 났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거 제사 지낼 때 쓰는 떡 종류야. 정말 기분이 나쁘네.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나왔는데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왜 여기다 갖다 놓고 갔어?”

 “엄마는 무슨 괴상망측한 소리야. 교회에서 준 떡이 불길하다니.”

 미신을 믿듯 구분하고 신경 쓰는 엄마가 종교인답게 느껴지지 않아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머리에서 식은땀이 났다. 따끈따끈한 떡이 식을세라 기쁜 마음에 가지고 온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게 서운했다.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유별나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미친 거 아니냐며 하소연을 해댔다. 당시에는 나의 호의를 몰라주는 엄마가 너무 미워서 한 달 동안 연락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엄마가 얼마나 무섭고 소름이 끼쳤을지 조금 알 거 같다. 당시 식욕이 떨어져 많이 드시지 못했고 여기저기 병원을 다니며 검사란 검사를 다 받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면 건강염려증 환자처럼 대하니 아빠와 단둘 이만 알고 있었다. 엄마는 참 외로웠겠다. 자식이 3명인데 그 누구 하나 살갑지 못했다. 그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2년 뒤에 엄마는 부활동산에 묻혔다. 엄마는 느낌으로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불길하고 싫었을까. 가끔 내가 그 떡을 드려서 엄마가 갑작스레 천국으로 가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때 그 떡을 가져다주지 않았으면 엄마가 나쁜 기운을 느끼지 않았을 거고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텐데. 따스한 공감 한 번 해주지 못하고 매몰차게 대한 내 자신이 밉다.


 얼마 전에 지인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나와 함께 있으면 좋은 에너지가 느껴져 힘을 얻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듣자 그냥 울고 싶었다. 엄마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꾀병이라며 한 귀로 흘렸고 쇼핑가자고 할 때마다 바쁜 척을 하며 피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수다 떨며 커피는 잘도 마시면서 엄마와는 한 시간 있는 것도 봉사하는 마음으로 했다. 이런 내가 누구에게 긍정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엄마에게는 곁을 내주지 않고 차가웠는데.


 엄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러 부활동산에 갔다.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꽃말이 화해, 용서인 핑크 거베라 한 묶음을 샀다. 두툼한 꽃잎과 선명한 색이 아름답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활짝 핀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부활동산의 산기슭에 도착하자마자 목청껏 ‘엄마’하고 불러본다. 동산 뒤에 펼쳐있는 망해산이 따스한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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