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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그릿 Oct 06. 2020

오래가는 사람들, 뭐가 다를까?

결국 끝까지 남아 있는 자가 강한 자다

어제 읽은 글에서 표현하기를, '글쓰기, 입덕은 있되 탈덕은 없다'라고 하더라. 그만큼 중독성 있는 글쓰기지만 정작 오래가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세간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자기표현 욕구의 크기에 비례하여 상존한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글쓰기가 손쉽게 이 두 욕구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글을 씀과 동시에 페북의 좋아요, 블로그의 공감, 브런치의 라이킷 등, 소위 '따봉'으로 피드백이 바로바로 돌아오는 시스템 덕에 한 번 입문한 '웹' 글쓰기로부터 '탈덕'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하던가, 근데 즐기는 자도 결국 오래가는 자를 이길 수 없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그냥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 자가 제일 강한 자다. 남과 경쟁하자는 게 아니고 그만큼 오래가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더불어 자기표현 욕구와 인정 욕구, 이 두 '갈망'이 커갈수록 '오래감'과의 괴리도 함께 커진다.



자기표현 욕구와 인정 욕구는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욕구가 같은 정도로 충족되는 일은 흔치 않다. 스스로를 원하는 만큼 표현해내는 것도 어렵고, 표현했다 한들 본인이 원하는 만큼 인정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욕구-충족 간 간극은 오래 가려는 끈질김을 누그러뜨린다. 한껏 의기양양 의욕 충만한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이거늘, 갈수록 표현의 어려움을 겪어 한 풀 꺾이고, 공들여 써놔도 별 반응이 없어 또 한 풀 더 그 마음이 꺾인다.



자기표현 욕구가 커갈수록 상대적으로 나는 점점 작아진다. 내가 가진 건 한정돼 있는데 자꾸자꾸 꺼내어 세상에 펼쳐 내 보이려 하니 미약한 나라는 존재는 갈수록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커가는 표현 욕구의 크기에 맞춰 나도 키워가야 할 텐데, 사람들은 보통 마음부터 앞서고 몸은 뒤따라가지 않던가. 조급한 마음은 조악한 글을 빚어낸다. 나를 키우는 일은 뒷전인 채,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내세우는 일에 더 열을 올린다.



마찬가지로 인정 욕구가 커질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져만 간다. 글쓰기로 나를 드러내고 돌아온 '따봉' 개수만큼 내 영향력의 사이즈를 가늠하며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다 여긴다. 조회 수, 따봉 수 같은 숫자에 내 가치를 연동하고 나면, 이전 글의 반응도가 내 역치가 되어버린다. 조금 더, 조금 더를 부르짖으며 나를 더 갈아넣든, 자극적이 되든,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다. '빠른 결과'를 찾는 성마름으로 초심이 얼룩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의 성장 없이 커가는 욕구만 따라잡으려다 생기는 흔한 부작용이다. 지금 내가 딱 그런 지경에 이른 듯하다. 평소 머릿속 잡상들을 정리해놓을 요량으로 지난 6월 블로그를 열었다. 닉네임이자 필명은 '지속'을 표방하고자 GRIT에 내 성을 붙여 '장그릿'이라 지었다. 완생을 꿈꾸며 성장하는 <미생> 주인공 장그래의 페르소나도 다소 담았다. 그렇게 시작한 블로그에 시시콜콜한 내 생각들을 적당히 꾸며 채워나갔다.



그 전까지의 글쓰기는 감정의 배설 위주로 쓰였던 반면, 블로그에 쓴 글들은 타인과의 소통 창구로 기능했다. 공감과 댓글이 늘어갔다. 구독자가 늘어났다. 조회 수도 늘어갔다. 즐거웠다. 신이 났다. 공감이 간다는 반응, 도움이 된다는 반응들이 가장 좋았다. 알람 없이도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3개월 간 꾸준히 글을 적고 출근했다.



글과 반응이 쌓일수록 앞서 적은 두 욕구가 점점 커져갔다. 욕심이 더해졌다. 블로그 세계의 터줏대감 '선수들' 못지않게 더 잘 쓰고 싶었고, 더 큰 인정을 바랐다. 어서 내 글이 금전적 가치로 빠르게 환원되기를 꿈꿨다. 호기롭게도 '블로그 글쓰기'를 주제로 전자책을 써서 팔았다. 그나마 감사하게도 내게 호기심을 가졌던 10명 정도 되는 분들이 구매해주셔서 참패는 면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호기심에 가까운 타인의 관심 정도를 영향력으로 착각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이었던 셈이다. 



빠른 결과를 바란 탓에 글쓰기에 '입덕'하던 당시의 순수했던 마음이 조금은 얼룩진 듯하다. 글감을 찾던 관점도 변질됐다.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고 구하던 섬세한 시선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오직 돈이 되는 글쓰기, 클릭을 부르는 글쓰기, 마케팅 글쓰기 등, 온통 돈돈돈. 변질된 마음은 돈 안 되는 글감들 모두를 쓸데없는 일상 잡소리로 치부했다. 일상 글은 또다시 혼자 적고 나만 보는 에버노트에 갇혔다. 소통에 나섰던 글쓰기는 다시 배설을 위한 끄적임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역시 한번 입덕한 글쓰기, 탈덕은 불가능하다는 서두의 진리를 되새겨본다. 어찌 됐건 시작한 이상 '오래가는 이'가 되려면, 나를 계속 키우든, 내 욕망부터 다스리든, 욕구와 현실 간 벌어진 틈새부터 메우는 게 급선무다. 빨리 가려다 한 번 엎어졌으니 이번엔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려는 마음으로 다시 기본으로.



일단은 '쓰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 원래도 그거 하나로 시작했으니 크게 달라진 것도 없지 않은가.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저변을 넓혀가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가며 끝까지 살아남는 것, 그게 진짜 성장이고 끈질기게 오래가는 사람들의 '한 끗'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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