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에 주의하세요
3월 14일은 더 이상 나에게 화이트데이가 아닌 폭행 당일로 기억될 것이다.
폭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본가는 건식과 습식 화장실로 나뉘어 샤워부스와 변기는 습식에 세면대는 건식에 있는 구조다.
평소에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샤워를 하는 나는 핸드폰을 갖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가 잤을 것이 분명한 남동생이 맞은 편의 남동생 방에서 '노래 끄라고' 외치는 게 들렸다. 솔직히 나는 그를 항상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날도 그랬다. 네가 게임 말고 도대체 하는 게 뭔데.
'시간이 몇 시인데 이제 좀 일어나지?' 노래 끄라고 악에 받쳐 소리 지르는 게 드라이기 소리를 넘어 들렸다.
이런 식으로 소리 지르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나는 그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출근이 더 중요했으니까.
거울로 185cm가 넘는 거구의 남동생이 성큼 다가오는 게 보였다.
'노래 끄라고 했다', '코뼈 다시 부러지고 싶냐'
그리고는 손목을 세게 붙잡아 결박했고 나는 세면대 구석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남동생은 노래를 끄지 않은 내가 먼저 폭력을 저지른 것이라며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했고,
출근해야 하니 손목을 놓으라는 나와 사과하라는 남동생과의 말씨름이 약 15분 간 이어졌다.
트위터에서는 어떤 분이 이 대목에서 남동생의 망상적인 혐오가 철저히 보인다고 언급하셨다.
맞다. 이전부터 남동생은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며 전형적인 반페미니즘적 행보를 보였고,
페미니스트인 나와는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이 말씨름 과정은 핸드폰으로 녹화해두었고, 추후 경찰서에서 증거로 넘겼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오른쪽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져 나갔고, 시리를 이용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어떻게든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나는 남동생에게 미안하다고 반복해서 사과했고, 풀려날 수 있었다.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핸드폰이 없었다.
남동생 방으로 가 내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물었고, '절대 안 줄 건데'라는 동생과 또 말씨름이 시작됐다.
내놓으라는 나와 말씨름을 하다가 나는 복도의 벽으로 밀쳐졌고, 다시 한번 손목이 세게 결박됐다.
이러다가 정말 출근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도 출근 생각밖에 없었던 나는 '일'이라는 게 도대체 나에게 무엇일까 싶다.
회사에 잘 보이고 싶은 나는 지각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다신 안 그럴게'라고 반복해서 말하다가 '애비걸고 다신 안 그럴게'라고 작은 반항을 저질렀다.
흥분한 동생은 나를 힘껏 밀쳐 바로 옆의 안방 침대에 눕혔고 내 위에 올라타 목을 졸랐다.
이때에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건으로부터 약 한 달 반이 지난 아직도 그 방 침대를 상상하면 목이 졸리는 기분이 든다.
남동생은 '너 같은 페미년은 이래서 죽어야 돼',
'지금 핸드폰 창 밖으로 던지면 아버지한테 사달라고 할 년이'와 같은 말을 했었다.
말을 하기 힘들 정도로 약 2분 간 목이 졸렸고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미안해'라고 힘겹게 말했다.
풀려난 나는 출근하려고 현관문 쪽으로 급하게 갔고,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 무릎 꿇고 빌었다.
핸드폰을 챙겨 드디어 나온 나는 '이러다가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출근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선다.
놀라 가팔라진 호흡이 가라앉지 않았다.
울먹이며 112에 전화했고, 출근하기 위해 탔던 버스에서 내려 발걸음을 돌려 지구대로 향했다.
지구대에 도착해서야 안전감을 느낀 나는 테이블에 앉아 담당 경찰관을 기다렸다.
'어떻게 신고하게 되셨어요?'
이 한 마디에 나는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살면서 남 앞에서 운 기억이 없는데 생애 최초로 남 앞에서 오열했다.
경찰관은 따뜻한 물을 가져다줬고, 사건을 자세하게 묻는 경찰관과 함께 진술서를 작성했다.
손이 너무나 떨렸다.
나는 목이 빨개진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목에 빨간 자국도 목 졸린 것 때문에 생긴 것인가요?'라는 물음에 인지하게 됐다. 경찰관은 벌게진 내 손목과 목을 사진으로 찍어 증거를 남겼다. 곧 여성청소년과(이하 여청과)에서 연락이 갈 거라는 말과 함께 나는 출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