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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Jan 19. 2023

우리에겐 앞으로 몇번의 장면이 더 남아있을까

Photographs by Deanna Dikeman





그들 부부가 함께 지나온 삼십여 년의 생은 참으로 고단했으나, 삶이란 포기하지 않은 자들에게 화려하지는 않아도 종국에 쉴만한 터전 정도는 내어주었다. 처음에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던 사람은 남자의 어머니였다. 설에도 추석에도 남자는 연휴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저녁이 되어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고, 그래서 늘 다른 가족들이 모두 떠난 다음에야 남자의 가족이 가장 마지막으로 그 집을 나섰다. 모두가 한꺼번에 떠나버리면 그 집에 홀로 남겨질 어머니에게 한꺼번에 밀려들 외로움을 신경 쓰는 탓이었다.


남은 명절 음식과 과일들, 텃밭에서 딴 갖가지 채소들이 실린 짐 따위를 싣고 좌석에 앉고 나면 자동차의 창문을 끝까지 내린 후 갈게요, 추운데 들어가세요, 건강하세요, 전화 자주 드릴게요 하며 시동을 걸고 천천히 멀어져 갔다. 늘 조수석 바로 뒷자리에 앉던 나는 자동차 뒷 유리창에 가로로 그어진 주황색 열선 너머로 점이 되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그녀 역시 자동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혹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동안 같은 자리에서 손을 흔들다가 합장을 하고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런 명절의 풍경은 늘 비슷하게 반복됐지만 해가 갈수록 그녀의 몸은 점점 더 작아졌고 머리는 완전히 하얗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의 흔드는 손을 본 것은 작은 요양병원의 병실이었다. 검은콩 두유 선물세트를 사들고 20여분 남짓 곁에 앉아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다가 손녀 금방 또 올게요, 건강하세요.하고 나설 때 글썽거리던 눈동자를 본 것도 같다.


부재를 받아들이는 방법으로는 처음엔 슬픔도 있었으나 시간은 남겨진 사람들로 하여금 순리나 이치 같은 것으로 윤색되게 만들었다. 남겨진 집은 부부의 작은 쉴 곳이 되었다. 묵은 이불들과 먼지가 쌓여 거의 작동을 멈춘 14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버려졌고 텃밭에는 새로 심은 작물들이 싹을 틔웠다. 부부는 고단하고 성실했던 5일의 삶을 보상받는 주말 별장이자 훗날 몸이 작아지고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되는 날에 머물게 될 집으로 여기며 오래된 시골집 구석구석을 차차 닦고 가꿔나갔다.


명절이면 나는 이제 남편과 함께 그 집으로 간다. 들뜬 맘으로 흙이 묻은 고무장화를 신고 밭에서 상추와 고추를 따고 있던 여자가 차에서 내린 우리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고, 한잔 걸친 얼굴로 기분 좋게 상기된 남자가 이렇게 다같이 모이는 날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겠냐며 자주 오라는 말과 함께 고기를 구워

주는 풍경 안에서 서너 번의 명절이 지난다. 우리는 남은 명절 음식과 과일들, 텃밭에서 딴 갖가지 채소들이 실린 짐을 싣는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창문을 끝까지 내린다. 엄마 추운데 얼른 들어가, 전화할게요 하며 인사를 건네고 시동을 건다. 조수석 백미러에는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손을 흔드는 남자와 여자가 서있고 그들은 점이 되어간다.


우리에겐 앞으로 몇 번의 장면이 더 남아있을까.


*

2020.03.04. 뉴요커(The New Yorker)에 실린 포토그래퍼 Deanna Dikeman 의 사진에 관한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관련 기사링크를 첨부합니다.


https://www.newyorker.com/culture/photo-booth/a-photographers-parents-wave-fare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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