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각오를 해서일까.
미리 각오를 해서일까. 지나온 겨울도 전년도보다는 덜 추웠던 것만 같고 미친 폭염이 예상된다 했던 올해 여름도 못 견디게 무더웠던 날보다는 그저 여름다운 견딜 만큼의 더위만 머물다 간 것으로 기억된다. 절기에 맞추어 눈치껏 꼬리를 빼는 여름이 조금 야속하기까지 하다. 집 가까이에 있는 인왕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른 아침과 밤에 코끝과 살결에 닿을 때마다 가을을 좀처럼 의심할 수 없다.
남편과 곧잘 오늘의 우리나 가까운 미래에 대해 얘기하며 걷는다. 때때로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나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었는데, 죽음의 실체에 대해 이따금씩 오래간 생각해온 사람과 함께 살면서 나 역시 종종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죽고 싶음’이 아니라 ‘죽음’ 자체에 대해. 내 기억과 사유, 감각 같은 것이 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추게 되는 일에 대해. 크고 작게 그렸던 꿈, 자존을 위해 분투하며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날들, 핏줄과 함께 겪은 명암의 시간들, 실패와 성취, 전혀 다른 감정이나 세계를 처음 마주하던 순간.
이 모든 생을 뒤로하고 나도 나를 기억할 수 없는, 존재 이전으로 회귀하는 일에 대해. 그것은 언젠가 닥쳐올 일이지만 사실에 대해 좀처럼 막연함이 거두어지지 않는 걸 보면 순리를 깨고 불현듯 찾아드는 죽음에 대해서 만큼은 나는 아직 소문을 대하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아직 먼발치에 선 죽음이 오늘의 나를 들여다보는 장면을 상상한다. 아직 너는 내 주변을 배회할 수 조차 없겠지. 너는 내게 속삭인다. 찬란하고 불빛 환한 오늘 너의 하루에 가능한 더 가까이 다가가라고.
이름 없는 사진을 전달받고 사진을 바탕으로 씁니다.
사진 | 2019년 8월 21일 태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