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같이 이 세계로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 세계로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어느 곳에서 태어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고 다만 늘 잠재되어 있다가 저마다의 운에 의해 각기 다른 구멍에서 태어나고 또 태어날 뿐이었다. 잠재된 곳에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연결되어 있다기보다 우리는 사람을 삼켜 죽일 수도 있을 만큼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이기도 했고, 일부는 설원의 적막 속에 꼼꼼하고도 딱딱하게 갇힌 채로 영원처럼 존재하기도 했다. 또 우리는 어느 곳으로든 흘러가거나 쏟아져 내릴 수 있었다. 그 어느 곳으로든. 그래서 언제나 낙하할 것에 대비했다. 때로 무자비한 폭우가 되기도 했으며 분수대에 안에 갇혀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설계된 세계에 진입한 무리 중 아늑하고 평화로운 티테이블에 오를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 개의 혀에 닿아 개의 장기 안에 기거하게 되거나, 일부는 오줌으로 갈겨진다. 그 개의 찰박거리는 물그릇 옆으로 튀어버린 무리는 어느샌가 흔적 없이 증발되기도 한다. 증발의 경험. 태양의 광선을 따라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순간은 수만 번의 전생을 겪었음에도 늘 아득하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렇다.
몇 번째 생이었을까, 1989년에 나는 여자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끝으로 증발했었다. 피부는 아직 앳된 듯했으나 여자의 표정과 눈빛은 오래된 우물 같았다. 여자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그녀의 등에 업힌 아기도 울고 있었다. 여자의 눈물샘을 지나기 전에 나는 이제 막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가 먹지 않고 모두 남긴 차가운 쌀죽이었다. 그보다도 전에 나는 물컵 안에 담겨 그녀가 늘 분주히 움직이는 부엌 한편에 놓여있었다. 가을에 남편을 잃은 여자는 그해 첫눈이 내리는 것을 부엌으로 난 창 앞에 서서 하염없이 하염없이 쳐다보며 조용히 울곤 했다. 그 집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함께 살고 있었다. 찬을 만들고, 식사를 내고, 빨래를 하고, 아기를 돌보면서도 여자는 떨어진 섬 같았다. 여자의 눈물샘에는 언제나 그렁하게 채워진 눈물들이 가득했는데, 대부분은 바깥으로 흐르지도 못하고 자꾸만 몸 안으로 삼켜지곤 했다. 흐르거나 삼켜지기 직전에 그렁그렁하게 눈물 맺히는 곳을 사람들은 눈물 언덕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날 여자의 눈물 언덕에서 바깥에 습기가 많은 함박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콧잔등에, 앞머리와 어깨에 함박눈이 한두 송이씩 내려앉아 물이 되자 나는 그녀의 눈물 언덕에서 볼로 흘러내리고 말았다. 어떻게 사람의 눈으로부터 그렇게 뜨겁게 미끄러져 내려 흐를 수 있었는지.
나는 다시 이 세상으로 회귀할 때 눈이 되어 내려앉는 것이 가장 고결하리라는 꿈을 갖는다.
가능한 천천히 공기를 부유하며 낙하하는 눈의 결정으로.
이름 없는 사진을 전달받고 사진을 바탕으로 씁니다.
사진 | 2019년 9월 15일 혜진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