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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경화 Mar 08. 2024

아일랜드식탁의 로망

내가 미쳤지 1


살면서 하지 말아야지 했던 Top3 중 하나가 집에 거주하면서 인테리어를 하는 거였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의 누수로 주방수리를 하다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경험이 있다.  


'살면서 집 수리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하며, 주변 사람들을 말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 뻔히 아는 개고생을 또 저질렀다. 










나에겐 아일랜드식탁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드라마나 예능에서 흔히 보던 기다랗고 넓은 아일랜드 식탁. 

허리 위까지 오는 식탁에 둘러 서서 함께 음식도 하고 

눈을 마주치며 높은 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이야기하며 식사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단 말이지.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선언을 했다. 

식탁 대산 아일랜드 식탁을 놓겠어. 





야심 차게 

인테리어 업체랑 도면을 그려가며 색을 고르고, 대리석을 고르고, 수납을 고민하며 만든 아일랜드식탁이 주방에 놓였다. 그 뿌듯함이란.... 


냉장고에서 야채를 꺼내 씻고 뒤로 돌아 아일랜드 식탁에서 칼질을 하고 소스를 만들고... 

함께 스테이크를 굽고 바로 뒤로 돌아 각자의 접시에 서빙을 해 주고. 

' 그래, 바로 이거지. 그래서 앞치마도 새로 샀잖아.' 


나이를 먹어도 나에게 꽂힌 어떤 허영심을 없애기는 힘들다. 





그런데 막상 아일랜드식탁이 주방 가운데 딱 놓이고 생활을 하다 보니 슬금슬금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


우선 무릎을 넣을 깊이가 나오질 않는다 

편안히 앉아 담소를 나누며 오래 식사할 여유가 없다. 자세가 너무 불편한 거다. 

후다닥 밥만 먹고 거실 소파로 가 앉거나, 아이들은 제 접시를 들고 거실 탁자로 가 버리기 일쑤였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거실 유리탁자에 식탁보를 덮고 바닥에 앉아 영화를 보며 식사를 했다. 


더군다나 손님이라도 오시게 되면 함께 둘러앉은 식사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해야 할 땐 사무실 테이블과 의자들을 차에 싣고 퇴근해서 거실에 세팅을 해야 했다.  그나마 쉽게 분해가 되는 이케아 테이블이니 망정이지..... 

그러다 보니 지인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하는 식사는 자꾸 미루게 되었다. 


네 식구 모두 아일랜드 식탁에 다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한 것이 얼마나 될까. 

식탁문화를 강조하던 우리 집이었는데, 삼 년 만에 근간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식탁은 점점 퇴근한 우리 식구들의 가방순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결심했어. 

아일랜드식탁을 치워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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