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경화 Mar 13. 2024

즐겁게 일하다 갑니다.

누구나 삶을 담는 말그릇이 있다.  

사람의 생각들은 삶에 녹아 있고, 대부분 말로 드러난다. 




드디어 일정의 첫 번째 단추, 주방가구 철거. 


아랫집과 관리사무실에는 전 날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 


 "실례하겠습니다." 하며 아침 일찌감치 아저씨 두 분이 오셨다. 

아빠가 계셨으면.... 그래도 우리 아빠보다는 젊으시겠구나 싶은 연세 지긋한 분들이시다.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지금도 목수 일을 하고 계셨을 거다. 궂은일을 하시는 연세 지긋한 분들을 보면 아빠같이 짠하고 고맙다. 


식사하셨어요? 하고 물으니 "먹었지요, 우린 안 먹으면 못해요." 하며 웃으신다. 

맞아, 아빠도 그랬다. 밥심이라고. 


이미 짐을 다 빼버린 말끔한 싱크대 위에 우두커니 있는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잔씩 내려 드리고 머신을 정리했다. 


"걱정 말고 일 보세요. 사모님은 하실 게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찬찬히 할게요."

거실 테이블에 열려있는 노트북과 사무실에서 걸려오는 전화.... 내가 바빠 보였나 보다. 




쉬운 일 아니었어?


싱크대 철거는 두 시간 정도면 끝나는 쉬운 일인 줄 알았다. 

수납장 번쩍 들어내고, 싱크대 볼 들어내고 대리석 들어내고 나머지 수납들도 번쩍 들어내면 끝나는 일인 줄 알았다. 


문을 하나하나 경첩을 다 돌려 떼어 낸다. 각 수납장의 벽들도 다 분리한다. 사용되었던 긴 패널은 적당한 사이즈로 자른다. 싱크대 대리석 또한 망치로 두들겨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낸다. 수전을 분해해서 다시 사용할 분실 되지 않도록 협조를 구하신다. 아일랜드식탁은 서랍 하나하나를 레일까지 모두 분해한다. 


가만 보니 이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철거라는 일은 섬세한 일이었다. 




티키타카



한 분은 선배고 다른 한 분은 후배신가 보다. 두 분의 주거니 받거니 티키타카가 재밌다. 

후배님은 선배님께 일의 순서를 지시받고 묻는다. 후배님의 실수에는 "이 사람아... "하고 끝이다. 장비가 더 필요하면 후배님이 심부름을 가신다. 나름 위계질서... ㅎㅎ

지난 주말 딸이 다녀간 이야기며, 엊그제 만난 친구 이야기며 흥겹게 대화를 나눈다. 

정겹다.


아침 일찍 시작한 일이 저녁 어스름이 되어 마무리가 되었다.  






즐겁게 일하다 갑니다. 


요즘은 도배 조수도 30만 원 일당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철거 비용은 25만 원이다. 두 분이 오셨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 일, 손 많이 가고 궂은일에 감사하기도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식사하시라고 만 원짜리 몇 장을 건네는데, 손사래를 치신다. "우리 돈 다 받고 일해요. 이제 집에 가서 밥 먹으면 돼요."


"너무너무 수고하셨어요." 허리를 숙여 인사하니 "즐겁게 일하다 갑니다" 하신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멋지게 산다는 건 어쩌면 즐겁게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해야 할 일을 즐겁게 해 내시는 두 분이 존경스럽다.  멋있다. 


그즈음의 나는 피곤에 찌들어 온통 지쳐 짜증 투성이었다.  해야 할 일 앞에서 마음이 화가 나 있었다.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처음의 마음을 기억해 내었다. 경력단절 8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의 그 기쁨과 잘 해내려고 했던 그 마음을. 


그래, 나도 기쁘게 일하자. 




멋지게 산다는 건 어쩌면 즐겁게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writer. hi_days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