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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로 인생핥기 Mar 04. 2023

야채를 먹느냐 안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습관성 짜증의 폐해

모든 부모님들의 고민, 아기 밥 먹이기.

밥을 많이 먹어도 걱정, 적게 먹어도 걱정인데요.


우리 아이는 많이 안 먹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아하는 음식은 많이 먹고 싫어하는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문제는 좋아하는 음식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어제도 좋아하는 것만 잔뜩 먹고는 배부르다며 그만 먹겠다고 합니다.

보니 콩나물과 멸치는 거의 손에도 안 댔습니다.


사실 별거 아닌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쌓여온(?!) 서사 때문인지 짜증이 확 올라옵니다.


좋게 말해도 먹을까 말까인데 거기다 대고 정색을 하면서 “배부르든 말든 멸치랑 콩나물은 다 먹어.”라 말해버립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아빠가 짜증 내는 말투로 말했다며, 왜 그러느냐며, 배불러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며 말이죠.


그래도 안된다고, 제 딴에는 건조하고 단호하게(실제로는 짜증 나는 감정을 잔뜩 실어서) 다 먹으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아주 서럽게 울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뭔가 잘 못 되었구나, 아차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서럽냐며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돌아온 아이의 항변.


“아빠 밥 먹을 때 짜증 안 내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지금까지 잘 지키셨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짜증을 내셔요. 그게 너무 서러워서 그래요.”


사실 그동안 쌓였던 서사는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는데요. 그때마다 짜증을 잔뜩 내고는 우는 아이를 달래며 미안하다고, 짜증 안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을 했더랬죠.


그래도 나름 한동안 잘 지키며 짜증을 안 냈었는데요. 순간 정신 못 차리고 또다시 습관성 짜증이 올라왔나 봅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는 순간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OO아. 네 말이 맞다.

짜증 안내기로 했는데 OO이가 야채를 안 먹어서 아빠도 모르게 짜증이 났나 봐.

물론 그런 걸로 짜증 내면 안되는데.

사실 아빠가 짜증이 난 건, OO이가 야채를 안 먹으면 건강해지지 않으니까 야채는 다 먹자고 아빠랑 약속했는데 그게 잘 지켜지지 않았고, 그게 반복이 되었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아빠 마음대로 일이 잘 안 풀려서 그런 거 같아.

OO이도 야채를 안 먹은 부분에 있어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지만, 그렇다고 짜증낼만큼 큰 잘못도 아닌데.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사이가 건강한 건대.

아빠가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했네.

OO이 말대로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앞으로는 더욱 노력할게.

대신 OO 이는 반찬 먹을 때 야채를 먼저 먹으면 이런 일도 없을 테니 그렇게 하는 건 어떨까? “


아이도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콩나물과 멸치를 씩씩하게 먹습니다.


순간 일렁이는 기분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말로 잘 타이르자 말을 더 잘 듣는 아이의 모습에서 스토아학파(Stoicism)의 학자인 에픽테토스(Epictetus, 55~135)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철학자이자 노예였는데요.

에픽테토스가 노예에서 해방되기 이전 시절, 어떤 일로 화가 난 주인이 그의 팔을 비틀었다고 합니다.

이에 그는 주인에게, “주인님, 그렇게 제 팔을 비트신다면, 제 팔은 부러지고 말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더 화가 난 주인은 그의 팔을 세게 비틀었고, 그의 팔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에픽테토스 왈, “그것 보십시오. 제 팔이 부러지지 않았습니까.”

다른 전승으로는 다리를 부러뜨려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아무튼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감정이란 내 선택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인간다움은 이성이며, 이성에 따르는 삶이야 말로 인간다운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성이 아닌 감정에만 따르는 삶은 인간답지 못한 삶이라 했습니다.

이성을 지닌 사람은, 이 세상이 수많은 인과관계로 이뤄져 있고, 현재 내가 겪는 상황은 그 인과관계의

결과로써 이른바 “일어날 일이 일어난 일”이라는 태도를 지닐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나에게 어떤 시련과 고통이 찾아와도 결국에는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태도를 지닐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우리 아이의 반찬 투정에 대입해 본다면, 상황은 단순해집니다.

아이 입장에서 야채는 먹기 싫고 입이 짧기 때문에 그만 먹고 싶은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는 야채를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상황에서 감정적인 동요 대신, 이성적으로 아이를 잘 타이르고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필연론이 반드시 비관론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럼으로써 안 좋은 감정이 아이에게 전이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OO아.

계속 야채를 먹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게 될 것이야. 앞으로는 잘 먹자.

아빠도 감정적으로 OO 이를 대하지 않도록 노력할게. “ (야채 안 먹기만 해 봐!!)



오늘의 다짐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내 감정의 주인이 내가 되도록, 내 감정도 중요하지만 내 아이의 감정도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며 감정을 조절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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