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8년생의 내가 나를 인정해주는 연습.
sns 디톡스 시간을 가졌던 일 주일. 일상을 보내면서 떠오른 단어는 '인정'이었다. sns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인정이라는 목적이 잠재되어 있는데,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왕 하는거, 나를 드러내면 브랜딩이 될 수도 있고,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틀린' 것은 아니니까.
'인정에 목마르다'라는 표현은 다소 병리적으로 느끼지 때문에 피하고 싶지만 우리는, 아니, 나는 왜 인정에 목말라했을까? 어떤 영역에서 특히 인정받기를 원할까? 나에게는 많은 재정(이 있어봤으며 좋겠다), 외모(출산 이후로 외모 과시는 더 의미가 없어졌다), 집(이라봐야 은행이 도와줬는데) 보다도 학위나 커리어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다.
여러 상담 방송을 보면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을 묻곤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 학창시절은 시골 중학교, 그보다 약간 단위가 커진 읍 단위의 고등학교. 이렇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진다. 시골 중학교는 그저 탈출하고 싶었던 공간이었고, 기숙사 생활을 했던 고등학교는 대학만을 보고 3년을 갈아넣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당시에 누구 한 명의 어른이라도 '서울로 대학 안 가도 괜찮아! 인생 길어! 대학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단다." 한 마디만 해주었어도 그렇게나 목매 애쓰지 않았을텐데.
더 깊이 들어가보면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시골 컴플렉스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아빠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이사온 시골. '시골 아이들은 다 순수해'라는 말은 거짓임이 증명되었고 한 학년에 한 반이 있는 그 구조가 중학교 3학년까지 이어진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답답함을 넘어선 지옥이었다. 당시에도 어른을 탓했다. 이사온 아빠와 엄마부터 도시에 산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누군가의 말 한마디까지.(그 누군가보다 지금 내가 더 번화가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짜릿했던지. 나도 선한 사람은 아닌가보다).
인스타그램을 매일 할 때는 몰랐는데 쉬어가니 내가 어떤 글을 주로 올리는지 알 수 있었다. 바쁘게 산다, 출간 계약을 앞두고 있다, 언어치료 일정도 많다, 대학원 생활도 바쁘다 등등. 누가 들어도 숨막히도록 열심히 산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타인의 시선에서 나의 글을 본 적이 없었는데, 참 부지런히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누군가는 비난의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바쁘게 사는 것을 드러냄 = 멋짐 = 어린 시절의 여러 콤플렉스에 대한 보상' 이러한 틀이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정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내가 스스로 나를 인정해주었어야 하는데 외부에서 보상을 바라고 있었다. 책이 잘 팔려야, 성적이 잘 나와야, 누군가에게 바쁘고 멋지게 산다는 말을 들어야 내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가서 토닥여주고 싶다. 시골에 살아도 괜찮아, 서울로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아, 사람들이 널 멋지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나를 소개할 때 굳이 직업과 여러 배경정보를 넣지 않더라도 존재자체로 매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포장지는 나중에, 필요할 때 씌우면 되니까. 포장지의 모습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으니까.
글이라는 도구는 정말 신기하다. 3년 전만해도 이와 유사한 주제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때면 시골 살이를 무시했던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여전히 치솟아 올랐는데 오늘은 그 마음이 꽤나 많이 가라앉았다. 애써 증명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 자체로 소중하다. 내가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책을 냈든 내지 않았든, 학위를 받든 받지 않았든지 그 자체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나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직업이 아직 없더라도 충분히 가치있다고 응원해줄 수 있는 어른. 당장 내일의 일도 장담못하는데 어찌 앞날의 전망 직업을 예측하고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오늘, 지지와 사랑을 가득 담아주어야겠다.
* 88년생이 내가 고등학교 시절 가장 선망의 직업은 교사였다. 여자로서 1등 신붓감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니 '1등 신붓감'이라는 말엔 많은 어폐가 있는 듯하다. '1등', '신붓감'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