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미디어 세상에 들어갈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의 모습을 떠올려볼까요? 잠이 덜 깬 눈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며 스마트폰을 찾고 시간을 확인합니다. 아직 일어날 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면 고민에 빠지지요. '잠을 더 잘까? 잠시나마 보고 싶었던 영상을 볼까? sns에 새벽에 (혹시나) 댓글이 달리지는 않았을까?' 30분 뒤, 아직 몸의 피로는 썩 가시시 않았는데 스트리밍은 30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 오늘도 스마트폰의 유혹, 도파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시작했네요.
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세계가 있다면 바로 이 스마트폰의 세계입니다. 최대한 늦게 가르쳐주고 싶은데 세상은 점점 더 아이를 미디어와 연결될 수 있도록 고리를 만들어가는 듯 보입니다. (디지털 교과서 이슈는 반대하는 마음이 매우 강력하지만 여기서 어필하지는 않겠습니다. 글이 다소 사나워질 수 있어요). 아이는 다행히 책을 좋아합니다. 이 모습을 상상하며 그동안 책을 읽어주고 책장을 가득 채운게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요. 바람대로 잘 커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뿌듯함도 앞섭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제는 아이가 책을 스스로 읽는 모습을 보면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아기띠를 하고 동네 서점을 다니던 추억부터 말이지요. 아무리 의지가 강했다지만 저도 참 대단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배송하면 다음 날 문 앞에 책이 와있을 텐데, 그 무거운 그림책을 굳이 서점에 가서 구매하곤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후회는 없습니다. 참 신기한 책육아의 세계에요.
한때는 신랑의 눈치를 보며 그림책을 구매한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아이와 도서관 메이트가 되었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생각이 들면서도 아이가 언제까지 아빠와 도서관 가는 것을 즐길까 미래를 그려봅니다. 염려는 잠시 내려놓아도 되는데 성격은 변하지 않네요.
돌아보면 책육아는 이렇게 추억으로 가득 채워져있습니다. '아이가 한글을 빨리 습득했다, 공부를 또래보다 잘 한다, 말을 논리적으로 잘 한다' 이러한 결과는 그저 결과에 속합니다. 7살 아이가 지금 스스로 그림책을 읽는 모습이 어쩌면 '똘똘하다'는 인상을 잠시 줄 수도 있지만 1년만 지나도 그런 인상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무언가를 잘 하지 않기에 책을 읽는 것을 포기하거나 더 잘하기 위해 스파르타식 독서가 필요하겠지요. 5년, 10년, 15년 후에 아이는 어떤 추억을 가지고 책을 읽을까요?
sns를 통해 책육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요즘 세대를 비난하거나 판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화려한 릴스나 깨끗하고 단정한 도서관과 같은 거실서재가 아니라 좌절감을 겪는 양육자가 있을까 노파심을 숨길 수는 없네요. 아이가 기억하는 것은 엄마, 아빠, 아이와의 추억입니다. 책, 한 권 다 그 자리에서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이는 책에 흥미를 붙인다면 스스로 한 권, 두 권, 읽어갈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이번 방학 때 해야 할 일은 책을 n 권 읽기 미션 수행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책과 얽혀있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세요. 그 고리를 만들어주는 거지요.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언젠가는 눈이 부시도록 그리워질 이 순간을 종이책의 구수한 냄새와 함께 담아봅니다. 담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