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갈 수록 말을 아껴야 하는 이유
아직 마흔은 되지 않았지만, 마흔에 가까워지면서 '어른'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주변인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참 어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닮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반대의 모습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어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타인에게 어른답지 못한 누군가의 모습을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내가 느꼈던 참어른은 말을 아낀다. 20대 때는 잘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당시의 어르신(?)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말수가 많은 누군가의 말은 점점 힘을 잃었던 것 같다. "내가 경력이 ㅇㅇ년인데..", "내가 1년차 때는 말이지..." 처음에는 귀가 솔깃해져서 듣지만, 자신의 자랑이거나 훈계로 끝맺음이 난다. 그 사람의 말은 힘을 잃고 때로는 다음 모임 때 초대받지 못하기도 한다.
안타까우면서도 당연한 현실은, 1년차든 10년차든 어떤 직종이든 훈계와 조언만을 듣고자 시간을 내지는 않는다. 일 외에 시간을 내어 대화의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을 수 있다. 근로시간에 해당되지 않는 자리에서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피할 권리가 있기에, 피로도가 높아지는 말은 메시지조차 읽혀지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자리에서든, 우리는 듣고 싶은 말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듣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듣기'를 잘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직업상 모인 모임이든, 반 친구 엄마들 모임이든,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의 모임이든, 말을 아껴서 후회한 경험은 많지 않다. 중요한 자리일 수록, 신중하게 말하고, 더 많이 들어야한다.
듣기는 품위를 만들어줄 수 있다. 나의 자랑이 섞이 근황을 말하는 친구보다 나의 이야기를 묻고 들어주는 친구를 만나고 싶은 바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듣고, 타인에게 묻고, 반응해야 한다.
아이들의 그룹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도 듣기를 어려워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느랴 세 친구의 목소리가 겹쳐도 아이들은 전혀 이상해하지 않는다. 자신의 말이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말을 하는 그 순간에 집중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말이 섞인 상태로 시간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룹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듣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잘 듣고 있는가. sns는 일방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올리는 곳, 브런치도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쓰고 있는 곳이지만, 대화 상황은 청자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글 또한 독자를 고려한 글을 쓰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대화 상황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청자를 더욱 배려해야 한다.
세번째 책 출간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독자들의 바람을 잘 담은 책인가. 세 번째 책을 출간하고 독자분들을 뵐 기회가 있다면 더 많이 듣고 싶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나의 말만 전하지 않기를, 무엇보다 내 아이의 (때로는 시끄러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