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뇌 수술을 앞둔 가족의 보호자 기록.
독자보다 창작자가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디서나 손쉽게 글과 사진을 올리면서 나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글쓰기가 이렇게 쉬운 존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면 글과 친해지게 된 각자의 사연이 있다. 글쓰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떠한 특별한 계기로 인해 일상이 된 스토리를 모임 안에서 접할 수 있다. 누군가는 육아의 고달픔을, 누군가는 사회 생활의 힘겨움을, 누군가는 아픔을 이겨낸 과정을 글에 담으면서 글쓰기를 가까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에게 글쓰기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취미이기도 했지만, 아이를 출산한 이후에 더 '생활화' 된 도구였다. 도구라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생각된다. 때로는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육아하는 과정에서의 외로움과 괴리감,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감을 채워주는 도구였다. 이 도구 또한 누군가는 취미 생활이, 누군가는 육퇴 후 신랑과의 치맥이 될 수 있지만 나에게는 글쓰기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글쓰기는 깊이 깊이 들어가는 통로가 좁았다. 글 안에 무언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왜 그러한 감정이 느껴지는지 독자에게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했다. 보는 눈을 의식하지 않는 글은 일기장 외에는 없다지만, 거기에서 더 포장지를 덮어왔다. 독자에게도 그 포장지가 느껴졌기에 미지근한 글이 대부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깊은 이야기
첫 책의 출간 준비를 하던 2022년은 나에게 가족의 영역에 있어서는 매우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시기였다. 나아지리라 생각했던 신랑의 뇌전증은 더욱 빈도가 잦아졌고, 점점 커가는 아이를 혼자 감당하기에 불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가끔 아이의 당시 모습을 보면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5살 아이인데, 아이의 예쁨을 내 감정 안에는 담아내지 못했다.
당시에 썼던 책은 자녀교육서로, 그림책 육아에 대한 내용이었다. 책을 쓰는 순간만큼은 신랑의 아픔도, 대학원 휴학에 대한 답답함도, 앞으로의 내 일에 대한 불안감도 잊을 수 있었다. 첫 책이었기에 더욱 열정을 쏟았고, 원고를 쓰는 순간만큼은 그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자동차 세차장에서 차가 씻기듯이, 나의 모든 좋지 않은 감정들이 씻겨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러한 기분으로 책을 쓰는 것이 맞을까? 이 고민을 한동안 해온 적이 있다. 작가에게는 좋은 시간인데, 독자에게는 책이 잘 읽혀지지 않거나 혹은 팔리지 않는다면, 이기적인 책쓰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이 들었다. 글은 독자를 행복하게 하거나, 독자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독자와의 암묵적인 소통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이러한 염려가 행복한 고민임을 알고 있다. 책을 쓸 수 있음에, 많지는 않더라도 소수의 독자와 소통할 수 있음에, 책이라는 도구로 연결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책 안에서 나를 아프게 했던 단어가 전혀 드러나지 않더라도, 독자와의 연결을 통해 그 단어와 만나기도 한다는 신기한 경험을 해보았으니까.
지금은 신랑의 수술이 잘 되어서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하나의 주제로 잡고 싶었지만 신랑의 아픔에 대한 글을 쓰기에 나는 당시에 신랑에게 다정하지 않은 보호자였다. 누군가의 완치에 대한 글이 희망으로 전해질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더한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글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또 하나의 굴곡을 만난다면 그때도 나는 글쓰기라는 도피처를 선택할 것 같다. 사람에게 이야기하는듯 하지만 결국 자기 치유로 이끌어주는 최고의 통로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글은 힘이 있어서 나와 결이 맞는 사람에게 반드시 전해지게 되어있다. 실제 친구, 동료, 선배에게 고민을 이야기한다면 공감은 해줄 수 있지만 나의 힘듦만 쏟아내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그 외에도 글쓰기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학원 복학 이후, 세 번째 책까지 출간하는 과정 가운데 글에 대한 주제를 찾고 있었다. 자녀교육서 이외에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떤 목적을 정해두지 않고 쓰다보면 표지판이 보이리라 기대한다. 에세이는 유명 작가님들이 쓰는 분류라 말하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