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엄마'가 되어야만 상담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언어치료 현장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앳되어 보이는 외모'였다. 나 뿐만 아니라 상담 직종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초임 치료사 혹은 초임 상담사'의 고충일 것 같다. 일상적으로는 '동안'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유일한 직업 현장이 있다면 '상담'이 아닐까 생각된다(아. 지금은 동안이 아니기에. 글 시작부터 외모 잘난척이라 생각하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언어치료'라는 영역은 언어발달에 초점을 맞추어 상담을 진행할 수 있지만 대상자의 연령이 어린 경우는 언어, 인지, 신체발달 등이 모두 맞물려 상담이 진행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36개월 미만 아이들의 상담을 진행할 때는 언어발달 이외에 수면, 식습관, 가정에서 주로 하는 놀이, 좋아하는 장난감, 대소변 가리기 등의 질문이 오가지 않을 수가 없다.
글의 서두에서는 '앳되어 보이는 외모'로 핑계를 돌렸지만, 돌이켜보면 아이들의 발달을 '글'로 배웠던 것 같다. 아무리 발달과 관련된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아도, 마치 전공시험을 보기 전날처럼 발달을 외워서 머릿속에 넣기에 바빴지, 전체적인 흐름을 바라보는 여유와 경험이 부족했다.
온이(현재 28개월 된 딸 아이의 애칭)를 임신하고 지옥같은 입덧을 견디면서 친정 엄마와 그동안 나와 마주했던 어머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어치료'라는 학문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신념 하나로 임신 전까지 쉼 없이 달려왔었지만. 현장에 오는 아이들만큼의 연령까지 온이를 과연 잘 키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뱃속에서 16주도 채 되지 않은 태아를 품는 것도 이렇게나 하루하루가 너무나 힘이 드는데. 현장에서 뵈었던 어머님들은 이 긴긴 여정을 어떻게 견디셨던 걸까. 아이가 발달이 느리다는 것을 의심하고, 마주하게 되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초조함과 불안감으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셨을까.
내가 임신을 하고 입덧이 심해서 일을 정리하는 순간 느꼈던 그 감정을 현장에서 마주했던 부모님들도 숱하게 많이 느끼셨을텐데.
나의 상담은 돌이켜보면 굉장히 지식 전달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내가 나의 아이를 치료사에게 맡긴다면, 나는 내 아이의 현행 수준과 목표 그리고 가정에서 촉진해주어야 할 부분들이 궁금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낚시 놀이를 통해서 '잡다, 물고기 이름/색깔' 이런 어휘들을 배웠고요. 차례 지키기, 기다리기도 배울 수 있었어요. 지난 시간에는 기다리는게 조금 어려워보였는데. 오늘은 차례 지키기가 특히 잘 되었어요." "아. 이건 단순히 낚시 놀이를 진행한게 아니라 내포되어 있는 목표가 이렇게..." 혹시나, 나에 대한 실력이 의심받을 것 같기도 하고,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아동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의 자기 보호의 방법이기도 했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고 이 안에는..." '자기보호'라기보다는, 나의 치료 세션에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이 올까봐, (속된 말로) '실드(shield)'를 먼저 친 셈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아줌마 동료'가 많은 조직에서 근무하는 것 또한 쉽지가 않았다. 당연히 그 분들께는 가만히 앉아만 계셔도 '노련함'이 나오는 것 같았고, 나는 20대 중후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막내'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남자친구와 맞춘 커플링을 끼고 출근을 해도 '아이 엄마'가 가질 수 있는 경험은 따라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임신 직전에 오래 근무했던 기관이 특히 엄마 치료사분들이 많이 근무하시는 곳이었는데, 초기 상담 때의 낯선 분위기를 깰 수 있는 최고의 주제는 '서로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딸도 엘사 좋아하는데!" 이 한마디면 어머님의 거리감이 1.5배는 더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제삼자인 나에게도 보였으니까.
출산 이후, 상담이 매끄러워진 건 사실인 것 같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치료시간에 10분 이상 늦게 되는 경우에 요즘은 아이를 깨워서 준비하는 과정, 옷 입히는 과정, 신발 신는 과정, 자차가 아닌 경우 택시나 대중교통으로 오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그려진다.
아이와 거의 1년 정도 문화센터 수업을 다녔었는데, 수업 시간에 딱 맞추어서 주 1회씩 수업을 들으러 간다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나만 준비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르고, 가방의 무게 또한 싱글 시절보다는 2배는 더 늘어나게 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계절이 좋은 때는 산책하는 재미라도 있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폭염과 한파주의보가 기승을 부리는 날은 아이와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을 이기는 게 쉽지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리 '치료'라는 간절함이 있더라도 그러한 환경을 이겨내고 치료실까지 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일지. 이제는 눈에 그릴 수 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영유아에 대한 발달을 조금 더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 점이다. 이전에는 "아이가 밤에 잠을 잘 안자요. 어쩌죠?" 질문을 받으면 육아서를 찾아보거나 그래도 가입은 해두었던 맘 카페에 검색을 해보았겠지만. 온이를 양육하면서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되면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의 흐름을 묻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어린이집에 혹시 다니고 있나요? 낮잠은 몇 번 자나요? 대소변은 가리고 있나요? 낮에 에너지를 풀 곳이 있나요?".
하지만, 엄마가 된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치료사로서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된다. 온이와 치료실에 방문하는 아이들의 발달 양상이 다를 수도 있는 거고, 말이 트이는 시기가 다를 수도 있는 거니까. 모든 엄마 치료사가 가장 부모상담을 잘 해낸다면 아동 언어발달에 있어서 박사과정까지 공부하시고 이름을 날리신 분들은 모두 '엄마'여야만 하는데 그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 언어치료사, 엄마 상담사로서 '내 마음'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아이가 돌 이전에는 육체적인 피로를 감당하는 게 가장 큰 과제인 것 같다. 그런데 감정이 생기고, 그 감정과 마주하고, 감정이 언어와 연결되는 것을 마주하는 시기가 오면, 아이 또한 굉장한 혼란을 겪게 된다. 이때에 엄마의 마음이 지치고 아이를 받아들일 공간이 줄어든다면 내 아이도,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양분이 흘러갈 수 없을 것이다.
임상 현장 안에서, 자녀가 없는 치료사, 혹은 상담가가 줄 수 있는 장점 또한 많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애정과 에너지를 줄 수 있고 아이들을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새롭고 반짝이는 치료 방법들을 고안해낼 수도 있다. 다만, '엄마'가 된 이후에 '상담'의 깊이가 변한 것은, 나에게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결혼도, 출산 경험, 육아 경험도 없는데, 아동, 발달 관련 상담을 그래도 조금은 더 매끄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가졌던 방법은,
하나, 대상자에게 최대한의 애정을 가득 쏟기. '관심' 갖기였다. 마치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듯이. 이 부분은 일부러 노력을 해서 되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아이의 컨디션이 어떠했는지,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외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내 아이에게 이러한 세밀한 관심을 보여준다면 거절할 부모님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둘, 발달 관련 영상 찾아보기. 한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언어발달 관련 영상은 주로 외국 아이들 영상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콘텐츠가 얼마나 많은지! 그 유명한 '슈퍼맨이 돌아왔다'만 보더라도 각 개월 수에 맞는 아이들의 언어발달, 신체적인 발달, 놀이를 살펴볼 수 있다. 나의 경우는 ebs 부모 60분을 많이 보았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 어플만 잘 찾아보아도 기질별 아이들 육아 방법, 고민해결에 대한 팁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셋, 맘 카페 활용하기. 맘 카페에서 언어발달에 대한 질문을 주시는 글에 답을 달거나 불확실한 것들은 내가 알아보기도 하고 주변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맘 카페는 여성만 가입이 가능한 곳도 있어서, 각 치료 영역별 전문가 카페를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 그림책은 온이가 18개월이 되기 전에 만나게 된 그림책이다. 앞부분은 우리 엄마가 대단한 화가라며, 엄마가 화장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뒷 장을 넘길수록 특히 일을 잠시 쉬고 있는 엄마에게는 잊히지 못할 그림과 문장이 보인다. '사장이 될 수도 있었고..하지만 우리 엄마가 되었죠.'
'엄마'로서의 가장 큰 공감대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과정이 아닐까. 20대는 적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많았으니까.
온이에게도,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여러 아이들, 부모님들께도. 무엇보다 '마음이 건강한' 엄마, 그리고 언어치료사였으면 좋겠다. '포기'를 아까워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