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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쳐라이즈 Oct 27. 2021

여전히 부족한 아빠

-서현 2052-2054일, 서아 278-280일

화요일은 아내가 늦게 오는 날이다. 현직들을 대상으로 수업이 있는 날이다 보니 밤 9시 반이 넘어서야 온다. 그럼 아침 9시부터 거의 밤 10시까지 나 혼자 아이 둘을 돌봐야 한다. 평소는 별문제 없었는데 어제 일이 터졌다. 


사실 밤 8시까지는 순조로웠다. 오후 3시쯤 서아 목욕을 시키고 서현이를 데리러 갔다. 3시 30분이 조금 넘어 서현이를 하원 시킨 뒤, 놀이터로 가서 놀았다. 5시쯤 집으로 돌아와 서현이를 목욕시켰다. 이후 밥을 차려서 먹였고 커다란 박스로 집을 만들어줬다. 그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서현이랑 재미있게 놀았다. 그러다 저녁 8시쯤 슬슬 잘 준비를 하려고 했다. 


남은 건 간식을 먹이고 첫째는 양치를, 둘째는 분유를 먹이는 일! 서현이는 양치를 하기 전에 간식으로 요구르트를 먹겠다고 했다. 어젯밤 마트에서 사 온 요구르트를. 자신이 깔 수 있다며 스스로 요구르트를 까서 먹으려 하기에 식탁에 앉아서 먹으라 하고 거실에 나와있는 장난감을 들고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오는 데 아이가 소리친다.


"아빠, 내가 닦을게."


하아. 거실은 내가 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그 30초도 안되는 짧은 사이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식탁에서 먹으란 소리를 듣고도 아이는 거실로 나와 요구르트를 뜯었고, 힘을 잘못 준 것인지 거실 전체에 요구르트가 묻어있었다. 수십 권 책들 사이사이에 요구르트가 묻어있었고, 건조기와 내 운동기기에도 묻어있었다. 둘째 머리카락과 자신의 몸에 묻은 것을 넘어 거실 매트 밑에까지 스며들고 있는 난장판. 왜 하필이면 어제 큰 요구르트를 사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이걸 이제 어떻게 수습하지 하는 혼란. 결국 소리쳤다.


"야!!!!!!!!!!!!!!!!!!!!!!!!!!!! 이게 뭐야!!!!!!!!!!!!!!!!!!!!!!!"


이제 와 글을 쓰며 어제 모습을 떠올려보니 서현이는 꽤나 당황해하고 있었다. 자신도 아빠가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해서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기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그 순간 내 눈에는 그게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에는 요구르트로 엉망진창이 된 집안만 보였고, 청소 후 다시 아이들을 목욕시켜야 한다는 허망함이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이는 곧 서현이에게 쏟아지는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졌다. 걸레질을 하면서 더 엉망을 만들고 있기에 뺏어서 빨래 통으로 집어던지고는 당장 화장실로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아이는 속상해하고 있었지만 화가 난 나는 그게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따져 물었지만 겁이 난 아이는 말하지 못했고 눈물을 참으려는 모습과 혼나는 상황에 웃는 방어기제까지 보이고 있었다. 여기서 나의 두 번째 잘못된 행동이 나왔다.


"임서현! 웃어? 아빠한테 혼나고 있는 데 웃어? 왜 웃어? 뭐가 재미있어? 아빠가 힘든 게 넌 좋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얘가 혼나면서 우울해했다 웃었다는 반복하고 있었기에 방어기제가 발동했다는 것을. 얘도 울지 않으려고 웃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망할 내 기분이었다. 감정이 솟구쳤기에 이성의 끈이 남아있질 않았다. 이성은 이성대로 머릿속에서 말하고 있었지만 입은 화를 내고 있었다. 나도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 사실 다 핑계다. 그냥 기분이 안 좋았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아직 마음 수양이 부족하다.


일단 서현이와 서아 둘을 화장실로 밀어놓고 혼자 청소를 하면서 감정을 다스렸다. 책을 하나하나 닦고, 건조기와 공기청정기를 닦았다. 매트를 들어 밑에 스며든 요구르트를 닦았지만 자꾸 요구르트 냄새가 났다. 결국 3번을 닦아내고 화장실로 가서 아이들 목욕을 시켰다.


둘째 서아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화장실에서도 웃으며 장난치고 있었다. 하지만 서현이는 자신이 잘못한 상황이었기에 그 말 많은 아이가 화장실 욕조에서 조용히 있었다. 그것도 내가 세 번을 청소하는 약 10분 정도를.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묵묵히 아이 둘을 다시 목욕시키고 머리를 말려줬다. 몸에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힌 뒤, 물 받은 것을 버리고 화장실을 정리했다. 이후 나도 씻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서현이 양치와 서아 분유 먹이기를 했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 예상보다 1시간 30분이 더 흐른 시간. 서현이를 불러 안아주며 이야기했다. 내가 크게 화낸 것은 잘못된 일임을 인정하고 감정이 앞서 그랬다며 용서를 구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제 나름 유해졌다고 생각했건만 여전히 욱하는 기질이 있다. 심리학 서적을 읽으며 나 자신을 많이 단련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인가 보다. 감정 다스리기는 정말 힘들다. 


사실 요구르트 흘린 것이야 다시 닦고 목욕시키면 그만인 것을. 누가 다친 것도 아니고, 크게 문제 될 것도 아닌 데 화를 냈다. 그것도 엄청나게 화를 냈으니. 변명하자면 아이 둘을 혼자 보면서 힘들었던 감정이 이제 아이들을 재우면 끝이라는 희망이 깨진 순간 치고 나온 것 같다. 


안다. 이 모든 것이 변명일 뿐이고 내가 잘못한 것이다. 그래서 기록하며 반성한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가 더 유해지기를.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잘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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