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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쳐라이즈 Oct 24. 2022

소풍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소풍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멈춘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요즘,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소풍이 그렇다. 그동안 코로나 전염을 우려해 외부 활동이 거의 끊겼다. 학교나 어린이집의 경우, 소풍은커녕 외부강사의 출입도 제한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다행인 건 이제 조금씩 외부 활동이 진행된다는 거다. 서아야 아직 어려서 소풍을 못 가지만 서현이의 경우 소풍을 가기 시작했다. 


소풍을 위해 준비물 목록을 보고 짐을 싸는데 서현이가 참 좋아한다. 모르는 사람이 서현이를 봐도도 꽤나 흥분한 상태라는 것을 눈치챌 정도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과자를 도시락통에 넣을 때도, 1인용 돗자리를 사 와서 펴보는 연습을 할 때도 즐거워한다. 

밥을 어린이집으로 돌아와 먹게 돼 수월해졌다.


학생으로서의 '소풍' = 가슴 설레는 그 이름 '소풍'


돌이켜보니 소풍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엄마가 무엇을 도시락에 싸 줄지 기대감에 부풀어 잠을 깼다. 뭐, 열에 아홉은 내가 좋아하는 유부초밥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소풍 전 날 마트에서 과자를 고르던 일은 말할 필요도 없고...


사실, 그 시절 소풍이란 게 특이할 것도 없었다. IMF 시절을 전후로 시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나였기에 거창한 소풍을 가본 적도 없다. 게다가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보령에서 자랐기에 매번 소풍 장소는 무창포 해수욕장 아니면 대천 해수욕장이었다. 그것도 걸어서 가는 소풍이라 1-2시간은 행군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그 시절 나는 그게 뭐가 좋은지 걸어가는 길에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장난치고, 먹을 것을 까먹었다. 얼마나 먹으며 갔는지 오는 길엔 거의 대부분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돌아왔어도 집에 가방 하나 쑥 던져두곤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러 가거나, 강가로 물놀이하러 뛰쳐나간 걸 보면 지금과 달리 체력은 좋았나 보다.



직업인으로서의 '소풍' = "..."


이렇게 좋았던 소풍은 교사가 되면서 싫어졌다. 일단 소풍을 가기까지 신경 쓸 일이 참 많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현장점검을 가서 코스를 둘러보고 밥 먹을 장소, 위험요소 등을 파악하고 위급 시 도움을 요청할 장소를 물색해 둬야 한다. 게다가 부장이라도 맡은 상태라면 학부모들로부터 의견도 수렴하고 각종 문서를 작성해야 하며, 행정실과 의논해 체험비를 걷고 독촉해야 한다. 매번 늦게 내거나 못내는 경우도 있어서 대책도 세워둬야 한다.


이렇게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었다고 해서 소풍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소풍날이면 굉장히 들떠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랬듯, 아이들도 들뜨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더 예민해진다. 들뜬 아이들 옆에는 언제나 '사고'라는 놈이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에 안전을 기하기 위해 각종 잔소리와 준비된 시나리오를 이야기하지만 변수는 항상 발생한다. 출발 전에 화장실 다녀오라고 해도 꼭 "가자!"를 외치면 화장실에 가는 애가 있고, 출발 시간이 돼도 등교하지 않아 집에 확인 전화하도록 하는 아이도 있다. 소풍 때면 아파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애도 있고, 잘 따라오라는 말을 무시하고 다른 반 아이들과 장난치다가 무리에서 이탈하는 아이도 있다. 그뿐인가? 버스에서 과자 쏟는 건 일상이고, 다른 애들과 핸드폰으로 장난치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떨어뜨려 액정이 깨지는 경우도 봤다. 단단히 일러둔 버스 좌석도 깜빡해서 물어보는 애도 있고, 멀미해서 토하는 애는 버스별로 한 명씩 있어 아예 봉투를 들고 버스에 타게 만든다.(그리고 한 명이 토함과 동시에 시작되는 릴레이...) 그밖에 고속도로에서 소변을 보고 싶다며 차를 멈춰달라는 아이, 대변이 급하다며 멀었냐고 재촉하는 아이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는 아이, 자기 혼자 신나서 노래 부르는 아이 등,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다. 이렇게 힘든 소풍을 끝내고 돌아와서도 할 일이 많고 잘해봤자 본전이기에 썩 좋아하진 않는다.



학부모로서의 '소풍' = 학부모 경연 대회


이제 곧 현실이 될 학부모로서의 '소풍'은 다소 두렵다. SNS 활동을 거의 안 하고 입주민 카페만 활동하는 데, 소풍 때가 되면 요리 경연 대회가 펼쳐진다. 주제는 도시락!

혹시 몰라 대부분 모자이크 처리


이런 도시락 글이 수없이 올라왔던 소풍 시기! 동네 주민들의 솜씨가 너무 뛰어났다.


진짜 정성이... 한 번도 저런 걸 시도해 본 적 없는 나이기에 걱정이 앞선다. 과연 내년에 서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을 때 나도 해줄 수 있을까? 직업 특성상 아이들이 소풍에서 도시락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해주고는 싶지만 영 자신이 없다. 세상에는 소위 말하는 '금손'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뭐 아직은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해야지.


아이의 소풍을 보면서 잠시 생각이 많아졌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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