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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야 Dec 25. 2023

크리스마스 단상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어쩐지 약간의 빚을 진 느낌이다.


나와 가까운 이들 중에는 유독 독실한 기독교인이 많았다. 이들은 내 크고 작은 어려움에 성심으로 귀 기울이고 정성껏 기도해주었다. 나는 그들이 내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 부단히 애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독교인들과의 일화는 많지만, 고3으로 넘어갈 무렵의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삶의 의욕을 잃고 책상에 엎드려 울기만 하는 내게, 어려운 형편임에도 고급 성경책을 선물한 친구가 있었다. 등교하자마자 QT를 하는 신실한 친구였다.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 하얀 얼굴에 깡마른 몸, 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하루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해 따라 나섰다. 성남시의 어느 비탈길에 다 쓰러져가는 집들 사이로 개척교회가 있었다. 교회에 들어서니 팔이 없는 사람, 뇌성마비를 앓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 밖의 사람들은 얼핏 봐도 행색이 초라했다. 그들은 목사님의 설교가 끝난 후 기도 시간에 경건한 음악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울부짖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친구에게 기도할 줄 모른다고 속삭이자, 친구는 그냥 눈 감고 원하는 바를 떠올리라 했다. 낯선 하나님께 속마음을 밝히는 건 무리였다.


어쨌거나 나는 궁극에는 기독교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나와 그들의 관계가 오래 지속 가능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제3자'를 최상의 존재로 여길 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우정을 느꼈는데, 친구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했다. 나는 친구에게 보답하고 싶은데, 친구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 봉사하자고 했다. 뭐랄까, 그 사랑의 각도랄까 하는 것이 내게는 영 휘어져 보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그들의 간곡한 바람대로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불교를 마음의 거처로 삼고 있지만, 나와 인연이 닿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받은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것을 신의 사랑이라 말하든, 내가 거기서 인간의 사랑을 느꼈든, 그저 나와 어느 시절 무언가를 나누려 했다는 실감 만으로 충분히 고마운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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