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참겠지만
나는 대체로 내가 ‘진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말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일기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건 내 직업의 특징 때문이었다. 사기업에 다닐 때는 홍보 마케터로서 제품과 서비스, 기업문화 등에 대한 생각을 기탄없이 말할 처지가 못 된다고 여겼다.
공무원인 지금, 내 행동 양식에 대한 굵직한 가이드는 법에 규정되어 있다. 여러 의무 중 국가공무원법 제63조, 지방공무원법 제55조는 ‘품위 유지의 의무’를 명시한다. 나는 이 ‘품위’라는 단어를 사례별로 해석하느니 스스로 언로를 차단하기로 했다. 과묵하고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딱히 애쓰지 않아도 지낼 만했다. 오히려 나처럼 일급 비밀요원 행세를 하지 않는 홍보 담당자나 공무원을 마주하면 신기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러다 수년 전 딱 한 번, 일급 비밀요원의 본분을 망각하고 페이스북에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악성민원에 심한 내상을 입은 후였다. 놀랍게도 다음 날 아침 노조 간부에게 내선번호로 전화가 왔다.
"듣기만 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간 될 때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요?"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던 찰나, 갑자기 나보다 더 당황해하는 간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뭐야 이거. ○○○ 주무관, 노조 가입 안 하셨네? 노조 아니었어요? 본인의 처우가 본인 힘만으로 나아지는 것 같아요? 우리 노조에서 열심히 세팅을 해주니까 간접적으로 누리는 게 많은건데...(블라블라)"
통화 도중에 메일 수신 알림창이 떴다. 노조 가입신청서였다. 수화기를 한쪽 어깨에 꽂은 채 보낸 모양이었다. 느닷없이 출현해 무슨 상조회사처럼 '가입 즉시 끝까지 함께 해주겠다'는데, 그 메일을 열자마자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아아,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구나. 내 입도 없고 내 입을 대신해줄 입도 없구나. 나는 검은 정장과 검은 선글라스와 검은 마스크의 착장으로 황급히 돌아갔다. 그렇게 다시 벙어리 3년...6년...9년...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자유롭고 솔직한 발언이 넘쳐났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만 썼다.
브런치에 글을 써볼까 하는 요즘. 눈에 띄는 매거진들은 하나같이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남에게 딱히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글로 다뤄도 될까 싶은 글감만이 내 안에서 모호한 형태로 똬리를 틀었다. 안 됨.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됨.
그러다 얼마 전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을 읽는데 이런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진정 스스로 사색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그 소재를 현실세계에서 찾아야 한다. (...)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소재는 활기가 넘치고 살아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사색의 공간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것이다." 답은 거기 있었다. 현.실.세.계.
일터는 일과 사람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생물처럼 펄떡거리는 공간이다. 공무원 10년 차. 외면하려 했지만, 내 업의 환경에서 펼쳐지는 소극과 촌극들이 점점 쌓여 가는 걸 느낀다. "이런저런 일을 해왔지만 이 일만큼 최악은 없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내 직업을 비하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건 감정적으로 매도하는 것일 뿐, 사실도 진실도 아니라는 점을 안다. 나는 그저 '세상은 요지경'이라든지 '천태만상' 정도의 메시지를, '본인의 입'으로 직접 발설하는 행위를 하고 싶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이상함이란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구나'하는 내 나름의 소소한 발견에 대해, 일종의 관찰기를 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써야 하는데. 뭔가 쓰고 싶은데.' 중얼거리면서, 정작 직접 체험한 일화들에는 입 꾹 닫고 있는 나를 본다.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기록을 생략하며 살고 싶지 않다.
혈기방장한 나이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뿐이었지만, 집도 절도 예전 같지 않으므로, 몸 담은 절을 떠나지 않은 채 궁시렁거리는 중이 되기로 했다. 어쨌거나, 당분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