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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y 27. 2024

붓질의 맛이 살아 있는 김동욱의 회화

석기자미술관(57) 예술적 시각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 침잠과 역동


꽤 긴 제목이 붙은 선화랑의 봄 기획전은 풍경화만을 모은 전시다. 공성훈 국대호 김건일 김동욱 송지연 윤정선 이만나 이상원 정영주 정영미 등 화가 10명의 작품 35점을 1, 2, 3층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비교적 큰 작품 위주로 공간을 시원시원하게 연출했다. ‘비매’라고 적힌 작품이 많은 걸 보면 화랑 소장품 중심으로 전시를 꾸민 것 같다.     


김동욱 <비 내리는 거리>, 2017, 97×200cm, 캔버스에 유채

   

김동욱 <비 내리는 거리>, 2017, 130.3×162.2cm, 캔버스에 유채

    

이번 전시에서 내가 주목한 작가는 김동욱이다. 1층에 <비 내리는 거리>라는 같은 제목의 작품 두 점이 걸렸다. 비 내리는 도시의 밤거리를 지나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셔터 속도를 일부러 느리게 해서 찍은 사진을 보는 듯하고, 비에 젖은 거리에 비친 도시의 밝은 불빛과 사람들이 길게 만들어낸 어두운 그림자가 화면 위에서 교차한다. 다양한 색을 조합한 솜씨도 좋고, 붓질을 그대로 살려 회화 본연의 맛이 느껴진다.     


김동욱 <노을진 한강다리>, 2013, 60×162.2cm, 캔버스에 유채


 3층 전시장에 걸린 <노을진 한강다리>도 좋다. 원경과 근경, 하늘과 물을 별다른 색의 변화 없이 표현했는데도 역시나 붓 맛이 일품이다. 대개 해 질 녘 풍경화를 보면 해를 잘 보이는 위치에 놓는 경우가 많은데, 김동욱 작가는 다리 철제 구조물 사이로 살짝 보이게 해를 그려 넣고 교각을 따라 노란색으로 화면에 포인트를 줬다. 저 시점에서 본 한강다리가 작가에게는 인공구조물 이상의 무엇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이제 작가의 말을 들어볼 차례다. 고맙게도 화랑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제법 긴 작가노트가 실렸기에 그대로 옮겨온다.


언젠가 여행 중에 스쳐 지나간 어느 도시의 사람들혹은 매일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친숙한 사람들 사이엔 낭만과 자유적막과 고독이 함께 공존해 있는 듯하다화려해 보이는 현대인의 삶 이면에는 자본주의의 부산물인 도시의 환락과 점점 더 치열해지는 고독이 내재되어 있다그들에겐 도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도 있지만때로는 세련된 카페의 그윽한 원두 냄새와 함께 낭만적인 도시의 풍경을 즐기기도 한다 


    


화려함 이면의 서정성치열함 이면의 여유적막과 소외 이면의 낭만과 희망...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홀로 생활하면서, ‘나는 늘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관찰자의 마음으로 서울의 도시를 바라보면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적막과 고독이 보이며 때론 낭만과 자유가 함께 공존해 있는 듯 했다. 초기 작업의 도시 풍경에서는 멀리서 바라보며 전체의 모습을 담으려 했다면지금은 나 또한 그들과 같은 도시인으로서 겪는 일상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다조금 더 심층으로 들어가 개개인의 심리를 바라보고그 마음을 투영해 그림으로 표현해 본다.

      

나의 작업은 현대인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고독과 외로움낭만소외감과 교감나르시시즘일탈 같은 소재에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을 잇댄다구상과 추상의 표현의 경계를 짓지 않고 자유롭고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상우리에게 남는 것은 감정이 서린 기억이다

일상순간순간 스치는 인파들은 기억의 파편들로 남는다.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재구성된 것이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대상을 흘리고 깨트리는 붓터치는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시간을 이으며 인물들의 동작에 역동성 부여하는 효과이기도 하다그로써 재현으로서의 구상이 지닌 결여를 넘어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그림 속의 시간과 공간에 보다 밀착되며 몰입하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서울의 명문대 출신 작가들 사이에서 김동욱 작가만 홀로 예외다. 작가 이력을 보니 국내에서 대학을 나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예술아카데미를 수료했다고 돼 있다. 왜 그림이 탄탄한지 알겠다.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예술은 성적이나 학력순이 아니라는 점.     


[작품 크레딧]

1. <비 내리는 거리>, 2017, 97×200cm, 캔버스에 유채

2. <비 내리는 거리>, 2017, 130.3×162.2cm, 캔버스에 유채

3. <노을진 한강다리>, 2013, 60×162.2cm, 캔버스에 유채     


전시 정보

제목<예술적 시각으로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침잠과 역동>

기간: 2024년 6월 18()까지

장소선화랑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58)

문의: 02-734-0458, sungalle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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