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May 31. 2024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태어난 불교유산

석기자미술관(58) 불교중앙박물관 기획전 <수보회향(修補廻向)>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람이 늙으면 아프듯, 유물도 늙으면 아프다. 피부색이 변하고, 좀먹고, 벗겨지고, 찢어지고, 멍든다. 의학이 발전해 인간의 수명을 늘린 것처럼, 과학의 발전은 상처 입은 유물의 치료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누군가 돌보고 가꿔야 하는 것은 사람이든 유물이든 같다.     


국가나 지자체가 지정한 문화유산은 비교적 체계적인 돌봄을 받는다. 하지만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교중앙박물관이 국가유산청과 함께 2014년부터 전국 사찰에 있는 성보박물관의 안정적인 운영 환경 조성과 문화유산 보존관리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해왔다. 치료가 시급한 비지정 문화유산의 수보(修補, 보존처리)가 대표적이다. 불교중앙박물관 기획전 <수보회향(修補廻向)>은 상처를 씻고 다시 태어난 불교 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자리다.     


일찍이 불교의 여러 경전과 문헌에서 오래되고 상처 입은 불교 문화유산 성보(聖寶)를 수보(修補)하는 공덕을 강조했다. 조선 후기 정관파 승려 무경 자수(無竟子秀)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무경집(無竟集)』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제 이렇게 훼손되고 상처 입은 것을 보니 어찌 남보다 더욱 애통해하며 용감하게 보수하지 않겠는가. 원컨대 여러 군자(君子)는 각자의 형편에 따라 베풀어 금신(金身)을 수보하기를… 여러 군자의 복록(福祿)도 한이 없을 것이니 힘쓸지어다.”     


<용주사 탁의>, 조선 후기, 비단, 화성 용주사(용주사효행박물관)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된다. 1부 <가치의 재발견>에서는 오랫동안 그 진가가 드러나지 않은 채 묻혀 있다가 수보를 통해 숨은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나 빛을 발하게 된 유산들을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용주사 탁의(龍珠寺 卓衣)>가 대표적이다. 용포(龍袍)를 만들려고 비단 옷감을 잘라낸 것으로, 수 놓은 무늬가 무척 고급스럽다. 더 볼 것도 없이 임금의 것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현륭원(顯隆園)의 원찰인 화성 용주사(龍珠寺)에 내려준 것으로 추정한다. 용주사효행박물관에 두 점이 있다.     


<송광사 불조전 오십삼불도(구불도, 칠불도)>, 1725년, 삼베에 채색, 순천 송광사 불조전(송광사성보박물관)


     

순천 송광사 불조전(佛祖殿)에는 일곱 폭으로 나뉘어 그려진 <오십삼불도>가 전한다. 말 그대로 쉰세 분의 부처를 그려 불당 내부를 둘렀다. 각 폭에 그려진 부처가 일곱이면 칠불도(七佛圖), 아홉이면 구불도(九佛圖)다. 이번에 수보를 마친 그림 두 점이 나란히 전시장에 걸렸다.


<송광사 응진당 석가모니후불도>, 1724년, 비단에 채색, 순천 송광사 응진당(송광사성보박물관), 보물



조선 후기의 화승(畵僧) 의겸(義謙)은 당대 최고의 화가 승려로 다양한 불사(佛事)에 참여해 불교미술사에서 손꼽히는 명작을 두루 남겼다. 의겸이 1724년과 1725년 두 해 동안 송광사를 위해 제작한 불화 7점 가운데 한 점이 국보, 두 점이 보물로 지정됐을 정도. 송광사 전각마다 의겸의 그림이 봉안된 것인데, 그중 응진당(應眞堂)에 건 <석가모니후불도>가 수보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송광사에 있는 의겸의 불화 가운데 가장 먼저 그려졌다.     


<천은사 팔상전 영산회상도>, 1715년, 비단에 채색, 구례 천은사 팔상전(직지성보박물관)


(좌) 파계사 치성광불도 초본 (우) <파계사 치성광불도>, 1717년경, 비단에 채색, 대구 파계사
<방장유산시첩>, 17세기, 종이에 먹, 불교중앙박물관



2부 <진면목으로의 회복>에서는 특히 세월에 취약한 그림과 책 등이 수보를 통해 얼마나 나아졌는지 보여준다. 이중에서 <천은사 팔상전 영산회상도>, <파계사 치성광불도>, <방장유산시첩>은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됐다. <용주사 감로도>는 수보 전후 사진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롭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색채를 보여준다.     


<용주사 감로도>, 1790년, 비단에 채색, 화성 용주사(용주사효행박물관)



3부 <진단하고 예방하다>에서는 문화유산 수보와 더불어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시품 가운데 부처님 한 분이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수덕사 소조불좌상>이다. 수덕사 대웅전을 지키는 부처님이다.     


<수덕사 소조불좌상>, 16세기, 흙, 예산 수덕사 대웅전(수덕사근역성보관),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언제부터인가 나는 불상을 만나면 부처님 얼굴을 자세하게 뜯어본다. 인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 있는가 하면 지극히 인간적인 얼굴도 있기 때문이다. 근엄하게 표현된 부처님의 얼굴보다는 인간적인 매력을 품은 얼굴에 더 끌리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 부처님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큰데, 동그란 얼굴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선한 웃음을 띤 표정도 좋다. 옆 얼굴을 보면 느낌이 또 다르다. 수덕사 대웅전에서 다시 뵙기를…   

  


전시 정보

제목: <수보회향(修補廻向), 다시 태어난 성보>

기간: 2024년 6월 30()까지

장소불교중앙박물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조계사)

문의: 02-2011-196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