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04)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
근대기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수장가 간송 전형필에겐 위창 오세창이라는 뛰어난 스승이 있었다. 그 시대의 큰 어른이었던 위창 선생은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한 업적을 두루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 역대 화가들의 작품을 엄선해 묶은 화첩 《근역화휘 槿域畵彙》를 펴낸 일이다. 제목의 근역(槿域)은 우리나라, 화(畵)는 그림, 휘(彙)는 모았다는 뜻이다.
《근역화휘》는 간송미술관에 3종, 서울대박물관에 1종이 전한다. 서울대박물관 소장본은 위창 선생이 근대기 수장가 박영철에게 만들어준 것으로 천․지․인 3권으로 이뤄졌다. 서울대박물관이 대표 소장품으로 꼽는 귀한 유물이다. 서울대박물관이 2022년 10월 1일부터 2023년 1월 31일까지 연 기획특별전 <붓을 물들이다: 근역화휘와 조선의 화가들>에서 주요 수록작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간송미술관 소장본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근역화휘》를 ‘오세창의 서화 감식이 남긴 한국 회화사의 백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간송미술관 소장본의 범접할 수 없는 수준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근역화휘》는 3종이다. 7권으로 꾸며진 것, 현대첩(現代帖)이란 부제가 적힌 한 권짜리, 천․지․인 3권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 중 1916년에 완성된 7권짜리가 시기적으로 가장 앞설 뿐 아니라, 수록 작품도 244점으로 가장 많고, 무엇보다 당시 위창 선생이 수집한 귀한 그림을 대부분 수록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간송미술관이 실로 오랜만에 여는 가을 전시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에서 마침내 《근역화휘》에서 수록된 귀한 그림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중에서도 그동안 사진 도판으로만 봐온 공민왕과 안견의 그림이야말로 이 전시를 봐야 할 이유 자체라 해도 전혀 모자람 없는 한국 미술사의 보물 중의 보물이다.
고려 31대 왕 공민왕의 그림으로 전하는 작품이다. 공민왕은 웬만한 화가 못지않게 그림 솜씨가 뛰어났던지 문헌에 <천산대렵도>, <노국대장공주진>, <석가출산상>, <아방궁도> 등을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오늘날 공민왕의 그림으로 전하는 것은 <천산대렵도>의 잔편(殘片)으로 알려진 그림과 간송미술관에 전하는 <양도> 두 점이다. 세로 15.7cm, 가로 22cm에 불과한 <양도> 또한 더 큰 그림의 부분일 가능성이 크다. 도록의 설명문을 읽어보자.
“양반들이 상반된 자세를 통해 대비와 조화를 꾀한 유기적인 화면 구성과 정교한 필치는 원대 문인화가 조맹부의 <이양부>를 연상시킬 만큼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조맹부가 고려말 문예계에 미친 영향을 감안할 때, 양자 사이의 연관성을 우연의 일치로 볼 수만은 없을 듯하다.
터럭 한 올 한 올 그 질검까지 묘사된 정교한 필치가 직업적인 전문화가의 솜씨로 여겨질 정도로 능숙하다.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에서 공민왕에 대해, ‘아방궁의 인물을 그렸는데, 그 크기가 파리머리만큼 작았다. 그런데도 갓․적삼․띠․신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 정묘하기가 짝이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정교한 필치가 공민왕의 장기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고매한 품격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공민왕 그림에 대한 세평을 두루 만족시키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아니 조선 미술사 최초의 거장으로 꼽히는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 ?~?)의 그림으로 전하는 작품이다. 제목은 ‘도롱이에 삿갓 쓰고 홀로 낚시하다’라는 뜻이다. 일본 덴리대학이 소장한 불멸의 작품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로 유명하다. 안견의 작품으로 전하는 것이 더러 있지만, 인물화 자체가 거의 없어서 더 귀한 그림이다. 세로 10cm, 가로 14.5cm로 위에서 본 공민왕의 그림보다도 더 작다. 역시 더 큰 그림으로 부분으로 여겨진다. 도록의 설명문을 옮겨온다.
“어깨는 덮는 커다란 갓을 쓰고 도롱이를 입은 채 오른손을 낚싯대를 쥐고 왼손은 턱에 괴어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옷자락은 거칠게 묘사하였으나 얼굴과 손의 표현은 세밀하다. 얇은 눈과 두꺼운 코에 양 볼이 볼록하고 손의 묘사도 섬세하다. 인물 뒤편으로 묘사된 강안의 토파와 바위 등은 인물의 의복 표현과 같이 굵은 선으로 거친 자취를 남기며 일정한 폭으로 표현되었고 갈대 몇 그루가 함께 그려졌다. 거친 주변 표현에 비해 표정까지 정밀하게 묘사하여 상념에 잠긴 인상을 드러낸 인물의 묘사가 유난히 돋보인다.”
이 밖에도 홍득구의 <어초문답>, 윤두서의 <수탐포어>, 강희언의 <세한청상>, 김득신의 <어옹취수>, 박창규의 낙화 <조춘우경>, 엄치욱의 <백악산>, 정학교의 <괴석>, 이한복의 <성재수간>, 홍세섭의 <진금상축>, 안중식의 <탑원도소회> 등 도판으로만 봐온 귀한 그림들을 직접 만나는 즐거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안구가 절로 정화된다. 그림 보는 즐거움이 이다지도 큰 줄을 예서 알겠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처음 보는 조선 시대 여성 화가의 그림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사임당 신 씨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서과투서 西瓜偸鼠>와 <진과문향 眞瓜聞香>은 본관이 월성인 김 씨 여성의 작품이다. 서과(西瓜)는 수박, 투서(偸鼠)는 도둑쥐, 진과(眞瓜)는 참외, 문향(聞香)은 향을 맡는다는 뜻이다. 오세창이 역대 화가 인명록 『근역서화징』에 수록한 <김씨포도첩발>에 “경주 사람으로 강희맹의 10대손 며느리와 강인환의 어머니다. 영조 49년 계사년 6월에 어머니 월성 김씨가 그 아들 인환에게 그려주었다.”라고 했으니 당대에 여류 화가로 꽤 이름을 얻었음을 짐작게 한다. 소재로 보나 필치로 보나 사임당의 화풍이 역력하다. 기량이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소박하고 정겨워 사랑스럽다. 도록의 설명문은 다음과 같다.
“<서과투서>는 수박을 훔쳐 먹는 들쥐를 그렸는데, 수박을 파먹다 흠칫 놀라 주변을 살피는 주의 모습이 상당히 사실적이어서, 그저 여기로 취미 삼아 그리던 솜씨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반면 몰골로 대담하게 그려낸 수박과 넝쿨은 소탈하면서도 시원스런 느낌을 주어, 쥐의 모습과 대별된다. 다만 상단에 그려진 나비는 다른 경물에 비해 크기도 너무 크고, 묘사도 영성해 사족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장식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초충도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참외와 벌들을 어울려 그린 <진과문향> 역시 <서과투서>와 같이 몰골 기법을 쓰고 있는데, 푸른 담채가 주는 담백하고 삽상한 맛이 일품이다.”
1층 전시장에 있는 정명공주의 글씨도 가히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