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침체한 불교계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선승(禪僧)이자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한국의 다도(茶道)를 중흥시킨 다성(茶聖) 초의선사(艸衣禪師, 1786~1866). 그가 태어난 곳이 지금의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다. 이를 기념해 무안군이 초의선사 생가와 추모관, 기념전시관, 차 문화관 등을 세워 초의선사 탄생지를 꾸며 놓았다. 해마다 초의선사 탄생일(음력 4월 5일)을 전후로 이곳에서 초의선사 탄생 문화제가 열린다.
초의선사 탄생지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나지막한 산길을 오르면 호젓한 숲길 한쪽에 서 있는 한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화가의 이름을 따서 만든 무안군 오승우미술관이다. 오승우(1930~2023)가 누구인가. 남도 화단의 거장 오지호의 장남이다.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화업(畫業)을 물려받아 오승우, 오승윤 형제 모두 화가가 됐다. 오승우의 고향은 전남 화순군 동복면이다. 지금 그곳에 화순 오지호 생가(和順 吳之湖 生家)가 있다.
커다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오승우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 175점을 무안군에 기증했고, 이 기증품을 토대로 2011년 2월 무안군 오승우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오승우는 그렇게 자기 이름을 딴 미술관을 세상에 남겼다. 왜 고향 화순이 아닌 무안이었을까. 이유야 어떻든 초의선사 탄생지가 가깝고 고속도로에서도 멀지 않으니, 미술관 자리로는 가히 나쁘지 않다.
전시 공간은 1층과 2층으로 나뉜다. 1층 전시장은 정석대로 오승우의 작품을 보여주는 상설 전시 공간이다.
오승우는 조선대학교 예술과를 졸업한 1957년부터 1960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제6회부터 9회까지 네 번 내리 특선을 따내며 입지를 다진다. 이때 작품들은 불전과 사찰을 그린 것이었다. 청년 시절 외가의 영향으로 불교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오승우는 사찰을 돌며 건물과 불상을 그리는 데 몰입했다. 불심(佛心)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우리 문화의 뿌리와 정신을 탐구한 것이었다. 오승우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도 특유의 밝고 기운 넘치는 색채 감각으로 우리 문화의 기운과 뿌리를 표현했다.
국전에서 4회 연속 특선을 따낸 이후 오승우는 1960년대가 되자 자연의 구체적인 현실성에서 벗어나 환상의 세계로 기울어졌다. 오승우는 고전 연작 이후 비현실적인 환상 세계를 그리며 꽃과 소녀가 등장하는 요정 연작을 제작한다. 1960년대에 주로 그린 <꽃과 소녀> 연작에서 오승우는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 대비를 통해 기존의 사실적 화풍에서 벗어나 백색을 가미한 부드러운 색조로 조형적 변화를 꾀한다. 배경의 구체적 형상을 제거한 채 색채 효과에 집중해 특유의 환상적인 화면을 만들어냈다. 전시장 초입에서는 1960년대부터 1990년까지 오승우가 그린 정물화와 풍경화,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오승우는 1980년대 들어 전국의 명산을 그리는 <한국의 백산> 연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백두산을 비롯해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130여 곳을 직접 올라 사생하고 그 결과물을 큰 화폭의 유화로 완성해 갔다. 단순히 산을 그린 게 아니라 산으로 에워싸인 우리 국토의 내밀한 속살을 집념 어린 노력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렇게 그린 산 그림 가운데 100점을 골라 1995년 예술의전당에서 공개했다. 산 그림으로는 당시로선 최대 규모의 전시로 미술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 가운데 7점이 전시장에 걸렸다.
1990년대에 등장하는 오승우의 <동양의 원형> 연작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녹아 흐르는 색채의 기운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주로 사원과 궁전을 주요 소재로 한 이 연작은 거대한 중원의 문명과 찬란한 역사를 기록한 작업이었다. 오승우는 인도, 중국, 둔황, 일본, 태국,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몽골, 네팔, 티베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사찰과 고적을 답사하며 그곳의 정신과 기운을 담아내고자 했다. 훗날 오승우는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의 빛나는 문명의 정화를 추적해 가면서 동양의 문화가 서양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해 갔다고 피력한 바 있다. 연작 가운데 다섯 점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2000년대가 되자 오승우는 <십장생도>를 새롭게 시도한다. 십장생도 자체가 지닌 관념성으로 인해 공간의 원근은 무시되고, 장식적으로 기호화된 형상들이 화면을 지배한다. 이처럼 <십장생도>는 하나의 원형을 지닌 주제이지만, 오승우의 화면에서는 새로운 인식과 해석이라는 독특한 계승의 차원을 지니게 된다. 단순한 과거의 유물을 주제화한 게 아니라 주제 안에 내재한 가치 체계를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전시장에선 오승우의 십장생도 연작 가운데 8점을 볼 수 있다.
2층은 기획전 공간이다. 내가 미술관을 찾아갔을 땐 <기억이 나를 본다>는 제목 아래 한국의 금혜원, 김설아, 나현, 이세현, 임흥순 작가와 인도네시아 아리프 부디만과 마리얀토 작가를 초대해 2000년 이후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동시대 아카이브 미술 경향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2전시실, 3전시실, 영상실까지 세 공간에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1층과 2층을 틔운 공간이 있어서 층고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게 한 내부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1층 상설전은 오승우의 시기별 대표작이 없어서 허전했고, 꽤 볼만했던 2층 기획전은 관람객이 나 혼자여서 아쉬웠다. 사실 미술관에 머무는 내내 관람객은 나뿐이었다. 공간이나 내부 구조가 제법 괜찮으니, 좋은 전시로 관람객을 불러 모으는 게 관건이겠다. 밖으로 나오니 조용한 숲속에 자리한 미술관 외부 공간이 꽤 운치 있어서 선선한 바람이 불면 차 한 잔 놓고 담소를 나누기에 아주 좋다. 미술관 건물 앞에는 오승우의 아들 오상욱의 화강암 조각 <천축 가는 길>(2010)이 서 있다.